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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Feb 15. 2023

하코자키 사진관

추억이 깊을수록 지금까지의 시간이 아름다웠다는 증거다. 내 머릿속 저장고에 남겨진 다양한 추억은 내가 지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 꺼내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해주기도 한다. 그런 게 바로 추억이라고. "여러분은 어떤 추억을 쌓아가고 있나요?" 가족과의 즐거웠던 시간, 연인과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과연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런 게 바로 추억이고 또 하루의 벽돌을 쌓아 올리는 힘의 원천이다.


'하코다테'는 일본의 북부에 있는 홋카이도와 혼슈를 잇는 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도시는 길게 늘어져 있는 반도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양 면이 바다와 붙어 있다. '참 특이한 도시야' 가끔 생각해 볼 때마다 일본은 넓어서 그런지 참 재미있는 도시와 볼거리가 많다는 생각 한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내가 자주 말하는 하코다테에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그런데 왜 이렇게 생생하게 이 도시의 형태와 볼거리 그리고 먹을거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또 왜 이렇게 익숙한 이름인지, 참 신기해.


그렇게 재미있게도 익숙하고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하코다테'와 비슷한 지역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이번에는 일본 남쪽에 위치한 큐슈의 주요 도시인 '후쿠오카'의 '하코자키'로 향했다. "혹시 후쿠오카에 가본 적 있으세요?" 나는 여러분께 물어보고 싶고 또 그곳에 대해서 말해주고 싶다. 아무튼, 후쿠오카 중심부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하코다테'라는 지역이 있다. 후쿠오카시 하코다테구 라고 하면 되겠네.


하코자키를 설명하자면 일본 어느 도시처럼 대단히 특별히 다른 곳은 아니라 설명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곳에는 먼 옛날 일본왕(공식 명칭은 '천황'이다.)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신궁이 있다. 뭐 그냥 우리의 눈으로 본다면 그저 옛 건물이 많은 절 정도의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도 천황을 모시고 있으니 나름 국보급 문화제가 많이 있는 그곳. 신궁 바로 앞에 보면 '하코자키 사진관'이 있다.



하코자키 사진관은 옛날 서양식 벽돌로 천장이 높고 목조로 된 큰 문이 멋들어지게 잘 어울리는 곳이다. '딸랑 딸랑' 나무틀에 유리로 된 큰 문을 밀고 들어가면 현관의 카페트를 지나 또 다른 큰 문을 밀면 넓은 나무 바닥의 거실에 둥근 테이블이 보이고, 그 옆으로 길게 늘어진 복도 끝에는 뒷마당 화단이 환하게 보이는 널찍한 스튜디오가 있다. 스튜디오 옆으로 올려져 있는 나무 계단 위로 올라가면 사진을 찍기 위한 준비를 위한 분장실과 침실이 있다. 나는 그 사진관의 모습이 마치 100년 전으로 나를 대려다 놓은 것처럼 시간여행을 선사했다.


아내와 리아 그리고 외갓집 식구들과 가족사진을 위해 우리는 하코자키 사진관에 모였다. 재미있는 것은 사진관의 사진작가이자 사장님, 그리고 보조를 맞추는 아내분은 내 장모님의 유치원, 초, 중, 고 시절 동창이라는 거. 아니, 초등학교도 아니고 중학교도 아니고, 청소년기 모두를 함께 보낸 친구들이라니, 참 기분이 묘했다. 장모님은 사진관에 들어오자마자 한시도 입을 가만히 두지를 못하는 게 내가 다 기분이 좋더라. "우리 아이들이니까 사진 예쁘게 찍어줘. 부탁할게." 장모님은 이런 비슷한 말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코자키 사진관은 사실 내 아내가 아기였을 때에도 친정식구 사진을 맡아 찍어왔던 포근한 곳이었다. 아내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도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그 게 집안 곳곳에 붙여져 있다고. 아내도 이곳에서 아기사진과 성인식 사진과 같은 중요한 행사 때마다 이곳에서 그 기록을 남겼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내 가족의 인생이 전부 이곳에 모여 있구나.", "이제는 우리의 아기를 데리고 이곳에서 추억을 남기는구나." 3대가 찾아온 하코자키 사진관, 소설이라도 쓰면 참 재미있는 소재가 될 것만 같았다.


지금 내가 SNS와 인터넷 곳곳에 사용하는 대부분의 프로필 사진은 바로 하코자키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평범해 보이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남다른 분위기의 내가 여기서 남겨준 사진으로 보면 또 다른 차분함이 느껴진다. 뭐라고 해야 할까, 신기하고 왠지 진짜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게 마음에 든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장모님이 동창인 작가님에게 "우리 아들 멋있게 찍어줘야 해."라고 부탁을 해줘서 그런 걸까. 우리 가족의 추억이 모두 모여 있는 사진관 그리고 제 사진이니 예쁘게 봐주면 좋겠다.



추억이라는 게 사실 별게 아니다. 다시 기억해보고 싶고, 또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게 추억이라고. 옛 기억을 나누는 게 바로 추억이고 생각의 찌든 때를 벗겨내기에는 또 사진만 한 게 없나 보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먹든, 어디를 가든 사진을 찍는 게 아니겠어. 지금의 행복한 시간을 꼭 남겨서 미래의 시간으로 가지고 가겠다는 결연한 행동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진이고 추억이다.


오랜만에 먼지 쌓인 앨범을 열어봤다. 지금이야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서 그렇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진은 출력되어 있어야 사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았나. 앨범 안에는 당시 유행한 옷차림의 어른과 아이는 웃고 있다. 뭐 대부분 사진이 그냥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정 자세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웃는 사진도 여럿 있어서 다행이다. 요즘은 무엇을 해도 자연스러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사진 속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앨범의 끝 부문을 넘기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진에는 아버지가 없다. 왜 그럴까. 잠시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한순간에 눈물이 핑 돌게 했다. 아버지는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느라 정작 자신은 그 사진 속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런 게 바로 아버지의 모습이었나 싶어 잠시 생각하다 눈물이 쏠렸다.


아내와 리아와 함께 오랜만에 찾은 처갓집 그리고 하코자키 사진관에서 우리는 또 다른 가족 모임을 가졌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곳에서 '찰칵' 소리와 함께 추억을 남겼고, 어머니 아버지도 눈을 감지 않기 위해 애쓰며 시간을 봉인했다. 그리고 나는 아내 가족의 추억이 모두 남겨진 이곳 사진관에서 또 다른 가족의 추억을 남긴다. 리아는 좋겠다. 너를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는 이곳에서 함께 하는 거니까. 그래서 너가 조금 더 커서, 아니 어른이 되어서 이곳에 오면 너의 추억을 더듬어 보면 좋겠어.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라는 가장의 모습은 늘 조용하고 구부정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느라 자신의 모습을 남기지 못한 시간이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시간이 남겨진다면 좋겠다. 그래도 함께 한 그 장소는 사진과 함께 추억 저장고에 잘 킵해두었다. "그런 건가?" 늘 자신은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조연을 평생 말없이 해온 아버지들, 나도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가다보다. 추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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