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를 알면 잘파가 보인다
MZ세대를 넘어 잘파세대까지 직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요즘, MZ세대에 대해 논해야 하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MZ세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직 내 대다수를 차지해 조직의 흥망성쇠를 가르는 MZ세대와의 갈등을 정확히 바라보고, 함께 공존할 방법을 찾으며, MZ세대를 넘어 잘파세대와 함께 할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할 시점이다.
A사의 40대 B부장은 뭐라고 말만 하면 ‘라떼’로 지적 받아 마음이 고단하다. 반면에 20대 후반인 C대리는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더라도 ‘MZ세대라서 그렇다’며 평가절하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존중의 대상이 된다. 이미 우리 사회는 MZ세대와 관련해, 선배 세대가 바뀌어야 함을 함축하는 보편타당한 세대 변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말 그대로 세대 차이를 공존의 개념이 아닌 MZ세대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받아줘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보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왜 다시 MZ세대인가
많은 사람이 1990년대와 2000년대생의 사회 진출을 두고 다양한 의견과 대비책을 제시하지만, 간접경험에 지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누구나 ‘90년대생은 이렇다’ ‘2000년대생은 이렇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기성세대나 X세대가 MZ세대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기업 내에 어떤 유형의 갈등이 존재하고, 또 어떠한 해결 방식을 채택했는지를 말하는 데 한계가 있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MZ세대를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미디어와 전문가들이 MZ세대에 대한 정보를 풀어 놓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잘못된 정보로 인해 사회적 편견을 격화하고 고정관념을 초래했다.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 역시 MZ세대는 무엇을 해도 인정받을 수 있고, 반대로 X세대는 오히려 ‘라떼’나 ‘꼰대’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잘못된 사회현상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곳에서 세대 간의 갈등이 줄어들지 않고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다.
MZ는 회식을 싫어할까
대표적인 세대 간 갈등은 기성세대 그리고 80년대 초반생을 포함한 X세대와 MZ세대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은 MZ세대 이외는 X세대로 통일해 살펴보자. 1990년대에 성인이 된 X세대는 ‘뭐라고 정의할 용어가 없다’라는 뜻에서 X라는 알파벳이 붙여졌다. 그들은 관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뜻대로 행동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MZ세대에게 ‘버릇없다’ ‘개인주의가 심하고 이기적이다’ ‘협동심과 인내심이 없다’라고 다그친다. 역으로 MZ세대는 X세대를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소위 ‘꼰대’라며 비하한다. 이는 ‘우리’가 중심이던 전반적인 사회의 흐름이 ‘나’ 또는 ‘개인’으로 바뀌면서 생긴 생각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모든 세대를 통틀어 편견만 낳았다. MZ세대는 무엇을 해도 MZ적 사고라는 선입견으로 조건 없는 이해를 바라지만, 실제로 MZ세대는 자신이 MZ세대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X세대는 이미 직장 내에서 관리자 직위로 올라선지 오래다. 그들은 과거에 파묻혀 지내는 라떼적 사고를 지닌 꼰대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많지만, 알고 보면 다양한 경험에 서 나온 사실적 가치인 경우가 많다.
MZ세대는 왠지 모르게 조직에 충성하지 않을 것 같고, 정당성을 가장한 요구만 지속할 거라고 느껴진다. 반면에 온종일 격무에 시달리다가 저녁에 나누는 소주한 잔으로 하루를 이겨내던 시절을 겪은 X세대는 “회식합시다!”라고 말 한 번 꺼내기도 힘들어한다. 엄밀히 말하면 퇴근 후 일정은 개인화가 강한 MZ세대에게는 ‘내 시간을 빼앗는 행위’ 정도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MZ세대는 회식을 기피하고, 직장 내에서 주어진 최소한의 업무만 한다고 하지만, 사실 합리적이고 합당하다면 그들도 수긍한다.
편견은 세대의 공존을 가로막는 원인
D사의 홍보팀 E팀장은 평소 책을 즐겨 읽었다. 주말이면 강남 교보문고에서 책 냄새를 맡으며 삶의 활력을 찾았다. 실제로 책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의 창이며, 자신이 원한다면 평생 접하기 힘든 유명 작가와 편하게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이날 E팀장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선물을 위해 책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제목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였다. 그러고는 최근 떨어진 자존감으로 힘들어하는 여성 후배 직원인 F씨에게 책을 선물했다. 며칠 후 퇴근하기 직전 E팀장의 아웃룩에는 감사팀의 이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였다. 피신고인은 E팀장이었고, 신고인은 F씨였다. 그가 선물한 책의 제목이 화근이었다. 책의 내용과는 다르게, F씨는 그동안 떨어진 자존감으로 고생하는 자신을 약올리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E팀장이 보기에 자신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으면 이런 책을 나에게 선물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는 주장이 더해졌다.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어떠한 행위가 부적절하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다. 다만, 일방향이더라도 선의가 담긴 진정성이 있거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반론할 사람 역시 없다.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책을 선물하고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당한 E팀장은 며칠을 침대에 앓아누워 있어야만 했다. 요즘 MZ세대들이 무섭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이 정도일 줄을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MZ세대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람이 그런 건지 구분해야 한다. 의식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양 태를 보면 의아하기보다는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당연한 결과지만, 이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 불성립으로 결정이 났다. 다만, 후속 조치는 정반대로 이어졌다. 인사팀은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해 MZ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교육을 강화했는데, 정말 F직원이 MZ세대라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그보다는 개인의 성향에 문제가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개인의 사고력을 늘려주는 인문이나 자기계발 교육이면 어땠을까. 젊은 직원이 조직 내에서 문제를 야기했을 때 ‘MZ세대라서 그렇다’는 선입견은 잘못된 경영정책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피해는 오롯이 직원에게 돌아간다.
MZ세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착각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작용은 사회성을 기본으로 하기때문에 MZ세대와 사회성의 인과관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성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생활양식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회성이라 함은 사회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발전해 나가는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언어, 공감 능력, 생활습관을 기본으로 한다. 특히 윤리적으로 접근하는 상황에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관한 능력치를 말하기도 한다. 이는 모든 기업이 사회화가 잘 되어있는 직원을 채용하길 원하는 이유다. 이러한 사회성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에 관해서 늘 고민하고 연구하는 게 채용이자 인사관리다.
X세대들은 흔히 MZ세대는 사회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상공간에서의 활동을 더 편안해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초개인화 MZ세대’와 ‘초조직화 X세대’ 간의 중심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세대가 변화하며 개인의 성과를 위해선 꼭 정해진 툴을 이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 문서를 보더라도 다양한 면을 강조하고자 하는 툴이 늘어나는 추세다. 말보다는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설명하고, 자신들의 대화는 메신저 내에서 부장 몰래 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코로나19 시대 MZ세대의 사회성 발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의 사회성은 X세대보다도 높게 나왔다. 국민 5,271명에게 생활태도, 행동양식 등의 사회성을 측정한 결과다.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MZ세대가 사회성이 높다는 결과에는 아마 많은 이들이 의아함을 느낄 것이다. 보통 사회성이 낮아 사회생활을 잘못할 거라고 평가받았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잘못된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에서 중역을 차지하고 있는 X세대의 라떼 기질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은 사회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으로 MZ세대를 보기 때문이다. 이제는 생각의 차이를 조금씩 좁혀 나가야 한다. 변화에는 내외부의 저항이 따르겠지만, 시간을 갖고 오래 보면 된다. 늘 ‘나’를 중심으로 ‘자신이 옳고 상대의 말은 틀리다’라고 믿는 세상이라도 ‘너’를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세대를 초월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너’와 ‘나’의 존재를 인정해 나가는 과정은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가치가 될 수 있다.
세대의 공존이 시작되는 지점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인정할 때 단순히 출생연도에 따르거나, 그 성장과 시대적 배경의 차이점으로 사회성을 결정짓거나, 조직 내 영향의 정도를 측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세대의 특징을 단순한 키워드로 요약할 경우 사람들은 그것에만 몰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비슷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회적 흐름이 존재하더라도 세대를 바라보는 정보의 기준은 늘 유연해야 한다. 세대를 나누어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일은 바람직하겠지만, 이것이 다양한 세대를 몇 개의 카테고리에 가두는 편견으로 이어지면 곤란하다.
MZ세대와 X세대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조직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발전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개인은 각자의 사고를 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영역을 중시하고 이를 지키려고 한다는 습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게 어느 세대이건 간에 쉬운 일이 아니듯,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 역시 작지는 않다.
MZ세대는 없고 MZ세대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개인화적 사고를 관철하려는 이기주의자가 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종종 사회가 정의한 키워드 뒤에 숨어버린다.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이 키워드를 활용하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에 ‘MZ세대는 원래 이렇다’라는 편견에 쌓인 라떼들 역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MZ세대를 활용하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관행이나 K-직장문화 자체를 문제가 많아 무조건적으로 고쳐야 하는 혁신의 대상으로만 여겨서는 곤란하다. 물론 예전 기억에 매몰되거나, 3세대 괴롭힘과 같은 가해성 행위를 하는 상사가 바뀌어야 하는 건 맞다. 다만, MZ세대가 바뀌어야 할 것 역시 적지 않다. 오랜시간 이뤄놓은 성과와 그 속에서 만들어진 K-직장문화 역시 우리 사회를 지켜온 자산일 수 있기 때문이다. MZ세대는 개인에게 손해가 발생한다고 생각될 때 자신의 입장에서만 옳고 그름을 따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들 또한 한발 물러서서 다른 세대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