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지만 실제 그렇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작게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소속되어 있는 조직이나 또는 직장에서 핵심 인물이 아닌 들러리로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일부는 조용히 자신이 가져갈 수 있는 일부의 권익에만 만족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중심이 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한다. 내가 원하는 바와 조직이나 친구들이 원하는 바가 상충하면서 도출되는 결과물의 인정 범위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대가는 대부분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평가해주는 곳은 쉽게 찾기 힘든 게 요즘의 방식인 듯한다. 섣불리 내어주는 곳은 많이 없을뿐더러 사람들 간의 경쟁은 자신의 역영을 조금도 내어주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인, 일종의 욕심이 번져서 그럴 수도 있다. 결국 겉으로는 아닌 척하더라도 모두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대부분 말하고 행동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류들은 일부 부유층이 상속에 의한 황태자의 모습으로 성공이라는 포장을 하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했다. 조그만 실수를 성공의 자양분으로 삼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에 수년간을 철저히 준비한 결과가 결국 경제적, 명성의 성공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시작은 대부분 미약하기만 하다. 자신이 준비한 일생의 그림만큼이나 착착 진행되는 사람이 드문 게 요즘 세상 아닐까. 그래서 필요한 게 인내심이고 꾸준함이고, 또 끊임없는 노력이 아닐까. 그 속에서 성공의 길이 조금이 뚜렷해지면서 결국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수준의 삶으로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행사에서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유명가수를 꼭 배치하게 된다. 그 뒤에는 이름 없는 무명가수를 배치하면서 경제적이고 알찬 행사를 기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무명가수는 앞에서 행사 분위기를 띄우고, 그다음으로 유명가수가 누구나 아는 노래를 부르며 행사 열기를 고조시킨다. 그래야 일정 내내 관객을 자리에 붙잡아두어 이석이 없는 매끄러운 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수 안성준은 처음부터 성공한 가수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 수많은 무명가수 중에서도 그는 한정된 팬층만이 존재하는 트로트계에서도 무명가수였다고 한다. 한 번은 행사 대기실에서 자신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자신보다 늦게 무대에 오르기도 되어 있던 인기가수는 일정에 문제가 생겨 예정보다 일찍 노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유명가수는 무명가수인 안성준에 앞서 인기 있는 노래를 몇 곡 부르고 바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 무대에 오른 안성준은 앞에 가수가 떠나자 우르르 모두 일어나 자리를 뜨는 관객들의 뒤통수를 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닌척하지만 가슴 아픈 마음을 흥겨운 노래로 승화해야만 했던 그의 허탈함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까지 남겼다. 결국 자신이 계속 가수를 해야 하는지에 관한 깊은 고민까지 해야만 했다.
무명의 설움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자신의 열정을 녹여내는 무대가 있더라도 그것을 바라봐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것. 그게 무명이자 설움보다 더 아픈 자신과의 싸움이다. 음악, 스포츠와 같은 대부분의 예체능은 과정을 조명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유명한지, 성공한 사람인지, 아니면 금메달을 딴 스타인지의 여부가 더욱 중요하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나에게도 많은 허탈함을 느껴야만 하는 무명작가라서 더욱 공감이 간다. 이미 유명한 사람이 책을 쓰면 그 책은 적절한 검증과정이 없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게 우리의 출판문화시장의 실제 모습이다. 글로 승부한다고 하기에는 우리가 성공한 사람을 바라보는 게 어쩌면 성공했기 때문에 인정하는 것과도 다른 점이 없다.
사회가 아무리 과정을 중요시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결과의 성공에 뒤 따라가는 일종의 빠순이 빠돌이라고 말해도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성공 한자의 희열을 대리만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그게 아니다. 그래서 계속 성공이라는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게 아닐까. 그렇게 지속되는 자기 체화를 통해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게 우리라면, 삶의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까.
자신이 만들어놓은 삶 속에서 주인공이 되느냐, 아니면 누군가가 바라보는 구조 속에서 주인공이 되느냐의 문제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 주변에 보면 궁지에 몰린 청춘의 궐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팍팍한 일상 중에 자신만의 삶을 찾아 나서는 청춘의 여정은 세상의 따가운 시선만큼이나 고통스러울 수 있다. 다만, 주인공이 되느냐의 문제에서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느냐, 외부 시선에 대한 주인공이 되느냐의 문제는 꼭 짚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