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문제를 풀다 보면 많이 틀리는 부분이 바로 '잘 알고 있다'라는 곳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틀리면 아픈 마음보다는 황당하고 자책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잘 알 고 있지만 또 잘 틀리는 게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니 신기하기만 하다. 그만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영역에서는 내 생각의 움직임이 짧아지고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러나 잘 알고 보면 실수가 아니고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알고는 있지만 그 끝이 짧거나 반 밖에 알지 못해 발생하는 원천적으로 잘 못 알고 있는 지식의 부족인 경우.
모든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잘 알거나 또는 잘 될 것만 같았던 사건이 결국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무서운 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실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실수는 당시에 알지 못하고 한참이 지나야 알 수 있으니 애초에 충분한 검토를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물론 잘못된 지식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학습은 당연하지만, 매번 그럴 수 없는 게 알고 있다는 착각의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인간의 심리이자 누구나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실수의 영역은 내심 불안함을 키워간다.
어쩌면 안정을 찾으려는 인간의 이기적인 심리에서 발단이 된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즉, '잘 될 거야' 또는 '이건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야'처럼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속한다는 결론을 미리 내리면서 자신의 자신감을 믿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감이 사고의 한계를 차단하면서 다양한 방향에서 검토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게 머릿속에 저장된 단어만을 끄집어 내게 된다. 단순하게 '이거다'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게 되는 게 실수의 원인이 된다.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알고 있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다만, 무언가 알고 있더라도 한 번, 두 번, 세 번을 더 생각해본다면 그 알고 있는 지식과 정답은 윤택해지고 보다 더 분명한 정답을 도출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자만하고 있느냐의 문제의식에서 나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이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서 맞는지 틀리는지의 구분보다는 두뇌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면서 다양한 사고를 한다면 실수의 가능성은 줄어들지 않을까.
스포츠 세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가,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을 때 아니었나. 별 볼일 없다며 무시하는 우수한 선수는 그 방심하는 틈에 상대는 최선의 결과로 승리를 뒤집는 걸 우리는 종종 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세계랭킹이 높고, 객관적인 전력이 높은 선수는 자신이 경기에서 질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자신이 승리할 거라고 믿으면서 상대 전력 파악에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랭킹이 낮은 상대는 수많은 연구를 하면서 지더라도 의미 있는 패배를 위해 사력을 다한다. 이때 예상을 깨는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닐까.
공자는 "아는 걸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게 참된 앎"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자신의 솔직한 심정과 짧은 지식을 온전히 나타내기랄 정말 쉽지가 않다. 모두가 그렇지만 조그만 포장이라도 할 수 있으면 하고자 하는 게 우리의 마음. 그래서 더욱 찾게 되는 게 진실된 사람이 아닐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의 이치는 길고도 복잡하기 그지없다. 그런 세상에서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게 어느 정도의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그리고 존중받아 마땅한 가치를 지닌 대중이 공유할 만한 지식이 될는지는 알 수 없다.
승패를 결정짓는 엣지에서 다루는 지식은 조금 더 심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는 곳에서, 또는 객관적으로 가능성이 높을 것만 같은 승패의 세계에서 결과가 나쁘게 나온다. 이제는 알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모든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의 정답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물론,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문제를 위해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는 안 되겠지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문제의 사안을 분명하게 읽어 내려가고 그 의도와 답안을 스쳐 지나가지 않으면 실수는 줄어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