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게 보인다.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꿈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그런 역동성은 꿈을 이루는 데 한 발짝씩 다가서게 만든다. 그래서 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삶은 천차만별이 된다. 다만 꿈을 꾸고만 있는지 아니면 꿈을 좇아 움직이고 있는지에 따라서 사람의 아름다움의 농도는 달라지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면 내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이 무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무언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게 분명히 있었을 텐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 걸까.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파릇파릇했던 고사리 손으로 써냈던 장래 희망이 과연 꿈이었다면 그래도 꿈을 몇 번 가져본 것 같기는 하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회사원이 되고 싶었던 꿈이 있기는 했다. 정말 어린 시절 가졌던 장래 희망이 회사원이었다니, 무언가 되고 싶었던 게 분명하지 않았던 게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나는 성인이 되었고, 나름의 위치에서 자리를 잡은 직장인이 되어 있다. 내적으로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성장을 한 것 같지만 영적인 성장은 아직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차분하고 상황을 접하는 시각과 행동 양식은 어쩌면 철없던 어린 시절과도 똑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토라지고, 상처받는 솜사탕 같은 마음은 아직 단단하게 여물지 못한 것 같다. 이제는 상황을 헤아려 차분하고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할 때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한때 꿈이 무엇인지,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이 두 개를 놔두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실 꿈이라는 것은 미래에 되고 싶은 직업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꿈이라는 것은 자존감을 가지고 어떤 생각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보통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전 세계를 여행하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책을 쓰는 게 꿈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처럼 꿈이라는 것은 '무엇을 했을 때' '내가 어떤 상황이 될 거야'라는 심리적 평가표가 작동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행복은 우리가 가지는 가장 큰 꿈일지도 모른다.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났을 테고, 행복하기 위해서 옷을 입고 출근길을 향하는 것이고, 행복하기 위해서 사랑하게 된다. 모든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행복하냐에 따라서 삶의 가치는 하늘과 땅 수준이 된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는 많은 부자들이 가지지 못하는 행복감을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 가정에게서 느끼기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 돈을 움직여 취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일상에서의 즐거움은 행복감으로 이어진다. 그 거 하나만으로도 평범한 하루라도 결코 사소하게 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매일 똑같은 시간의 반복이라고 할 지라도,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조금 더 집중해서 관심을 가지고 사소함을 없애는 하루는 알차게 지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만족감이라는 또 다른 행복의 요소를 가지게 해 준다. 어려서 꿈꿔 왔던 게 무엇인지 모를지언정 내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움직임은 꿈 못지않은 행복을 향한 갈망이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