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알약

by 한상권

알약 하나 먹기에도 벅차 보이는 아내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쓰디쓴 약이라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약이 여러 개가 되니 한꺼번에 삼키지 못해서 그렇다고. 작은 약봉지를 뜯어서 알약들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약 하나를 입에 넣어 물과 함께 삼키는 모습이 가엽 다기보다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프면 꼭 먹어야 하는 약이지만 그게 꼭 쓴 맛이 난다는 게 참 신기하다.


몸에 좋은 약일 수록 쓰다는 말은 사실 근거 있는 이야기 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내가 먹어본 약은 그저 전부 쓴맛이었으니, 그런 속설은 어느 정도 일리 있는 것 같다. 건강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최고의 방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아플 때에는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가능하면 약을 먹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면역력에 기대어 아픔을 이겨내기도 하는데, 그것 참 쉽지 않은 방법이 아닐 텐데, 신기하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저 좋은 사람만이 내 주변에 존재하면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운이 샘솟게 해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함께 있기만 해도 기운이 빠지고 어두운 분위기가 순식간에 번지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일순간 아픔을 겪기도 한다. 사소한 일로 인해 자신의 말이 옳다 틀리다를 반복하며 다툼으로 번지기도 하고,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일방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과 발생하는 관계의 아픔.


오랜만에 아내의 일손을 돕기 위해 얼갈이 겉절이를 담가봤다. 동네 마트에서 산 얼갈이를 깨끗이 씻고 적당한 크기를 썰다고 하던 찰나에 내 외쪽 검지 손가락을 살짝 베었다. 살짝 벌어진 상처는 별이 없는 듯 하얗게 질려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피가 홍수처럼 밀고 나왔다. 당황한 나머지 얼른 휴지로 피를 닦고 연고를 바른 후 밴드를 붙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나는 무심코 연고를 찾게 되었고,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밴드를 바라봤다.


상처가 나면 어떻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곧바로 행동하게 된다. 상처가 덧나지 않고 아픔을 줄리고 빠른 회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그렇게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왜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달래기 위한 방법은 곧바로 나오지 않는 걸까. 이미 수많은 아픔 속에서 나를 위한 회복의 방법을 알고 있을 테지만, 사실 특별한 방법을 아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런 아픔도 약이 필요하다. 상처를 회복시켜줄 그런 무언가가 필요하다. 건강하고 슬기로운 사람의 자연 회복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모두가 그렇지 않으니까. 약 처방으로 빠른 회복을 통해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그런 조치는 서두를 수도록 좋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회복할 수 있을까. 쉽게 찾을 수는 없지만, 결국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라는 이름의 병은 사람에게서 회복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상처를 덧나지 않게 하는 유일한 치료제가 될 수 있다.


우선, 상처받은 나는 그게 병이 될지 아니면 곧장 잊어버리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일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아 내 일상생활을 방해한다거나, 사람과의 일이 생각나 밤잠을 설친다면 그것만 한 병은 없는 것 같다. 가능하면 노트에 그 사람과 무엇으로 인해 발생한 아픔인지 적으면 좋겠다.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마음을 몸 밖으로 끄집어내어 내 눈으로 확인하고, 관련된 사람의 이름을 적어본다. 그렇게 내 아픔의 수위는 표면적으로 나타나게 되고, 치유를 위한 알약을 찾아볼 수 있다.


용기를 가지고 노트에 적힌 사람과 대화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조용한 커피숍에서 노트에 적혀 있던 내면의 상처를 이제는 입 밖으로 내보내며 이야기를 이어가 보면 어떨까. 물론 상대 역시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겠지만, 만약에 대화의 시도조차 쉽지 않을 정도의 덧난 상처라면 굳이 만남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대신에 혼자 이 아픔을 해결하려고만 하지 않으면 좋겠다.


20220224_070528.jpg paris_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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