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몇 명 읽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지속해서 글을 쓰고 또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저 내 일생과 생가 생각하는 영역의 확장을 고민하고 그 고민이 한데 모여 여러 사람과 공감하기 위하는 것, 그거 하나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과 쉽게 나누는 게 쉽지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어려우면서도 쉬울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소통이 가능한 공감되는 이야기는 그 의도와 형태가 무엇이 되었건 간에 사람의 호응을 얻게 된다. 내 이야기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공감의 형성은 무한대라고 말할 수 있다. 내 이야기로 다른 사람을 보듬어주는 것만큼 아름다운 게 어디에 있을까.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그런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다. 비록 사람의 모든 마음을 헤아려 보일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는 거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책을 쓰기 전 나는 글을 잘 쓰고, 어문규정을 정확하게 지킬 수 있을 때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만의 글이 아니라면 그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이해 가능해야 하고 그런 기준은 어법이라는 틀이 있기 때문이다. 맞춤법의 영역을 배우지 못하고 또 공부하지 않은 나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일 수 있었다. 한글 파일에 빼곡히 글을 쓰면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얼마나 많이 틀려 있던지 온통 빨간 밑줄로 도배가 되어 있곤 했다. 그런 글을 보면서 속마음은 소심해지고 글의 영역에서는 내 자리가 없는 듯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루 한 편의 글을 쓰는 게 목표였지만, 그전에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닌 지 고민했다. 어문법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일종의 포기 선언과도 같았다. 중학교 교제를 사서 다시 읽어볼까 아니면 고등학교 국어책을 사서 다시 읽어봐야 할까.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기초 체력이 필요하 듯 글을 쓰고 책을 내려면 글을 쓸 수 있는 기본적인 규칙을 키워야 한다는 시스템적 압박이었다. 글이 글다워야 사람들에게 잘 읽힐 테고 또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나는 수없이 고민하고 한 끝에 공부 없이 그냥 글을 쓰기로 했다. 문제의 핵심은 글의 내용이지 글을 구성하는 표기된 글자의 오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생각이 글이 되고, 글이 책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부터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고 소통 가능한지를 구분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생각이란 그동안 겪어오면서 느꼈던 정화되어 있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충분히 사색한 고민과 사고의 결과일 수 있다. 그 결과가 생각으로 정리되고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만 있다면 이미 글과 책이 되기에 충분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이해하기 쉽고 정확한 표현을 사용해서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사실이다. 뒤죽박죽 섞여있는 글의 맥락뿐만이 아니라 외래어, 출처가 불분명한 의성어와 의태어가 과도하게 사용된다면 그 글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대중의 영역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분명하다면 어느 정도 사회는 인정할 수 있다. 요즘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는 '에세이' 책들만 봐도 그렇다. 어문규정에 어긋나더라도 대부분 작가의 평소 말하는 습관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소통에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
내 글도 그렇다. 다소 표현력을 앞세우다 보니 어문규정에 어긋나기도 하고, 부드럽지 않은 내용의 전개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조금 더 사람의 마음을 담은 살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다. 사건의 발달, 전개, 정리처럼 글의 전개가 부드럽지 않더라도 내 사색의 결과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수만 있다면 나는 내 글쓰기를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가끔은 내가 알고 있는 세상에 갇혀서 잘난 척이 될 수 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뒤돌아 보면서 이야기에 마음을 담아보려고 한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이유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