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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Mar 30. 2020

기나긴 쫄보의 역사

실속 없어 보이는 실패 마일리지의 적립과정

2012년 6월 30일 토요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컵 종별검도대회. 선봉과 중견, 주장으로 구성된 여자부 3인조 단체전에 출전한 우리 팀은 1회전에서 탈락했다.


선봉이던 나는 1:2로, 중견과 주장이었던 언니들은 2:0으로 지고 말았다. 영상으로 찍은 결과 세 명의 시합시간은 4분 40초. 규정 상의 시합시간이 3분임을 감안했을 때 1.5인 정도의 러닝타임에 불과했다. 도장에서 연습하던 만큼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어째서 영상 속의 나는 발바닥에 접착제를 붙인 사람처럼 하체가 꿈쩍도 안하는거야?! 검도한 지 7년 차였지만 번번히 찾아오는 긴장감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영 떠오르지 않았다.


이 긴장감이란 불치병(?)에는 몇 가지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먼저 급격히 안 좋아지는 시력. 시야는 좁아지고 눈앞이 하얘진다. 검도에서는 일안이족삼담사력(一眼二足三膽四力)이라 하여 상대를 살피는 눈(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데, 긴장감이 시합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마비시키는 셈이다. 두 번째 증상은 얼어버린 발놀림. 눈 다음으로 중요한 발(足)까지 쓸모없어진다. 쪼그라든 마음에 호흡까지 가빠지면 죽도를 휘두를 기운까지 훅 빠져버린다. 스트레스로 근육이 급격히 수축하며 생기는 목과 허리의 통증은 그저 거들 뿐.


신체능력이 떨어지면 자연스레 상대에게 돌진하는 담대한 마음(膽)까지 쪼그라든다. 그렇게 되면 상대에게 모든 실점을 허락하는 것과 같다. “모든 득점부위가 비었으니 마음에 드는 부분으로 골라 치셔도 됩니다” 라며 갖다 대주는 느낌이랄까. 그 순간에는 상대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인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허술하고 뻣뻣한 자세로 공격해 들어가는 나를, 상대방은 놓치지 않고 빈틈을 공략한다. 힘껏 죽도로 내려치는 타격소리. 상대가 두 번의 득점을 먼저 성공시키면 시합 종료. 땀 범벅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퇴장, 시합장 바깥에서 머리에 쓴 호면을 벗고 눈물 콧물을 쏟은 적이 여럿이다. 다 큰 성인여성의 체면이고 뭐고, 긴장감에 아무것도 못 하고 물러나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다.


 “오늘 출전한 다른 도장 여자부 보셨나요? 독하고 사나운 언니들 참 많죠? 상미씨는 그 언니들에 비해 너무 여리고 착해서 좀 아쉬워요. 좀 더 강하게 맞서주세요 ^^” 내 시합을 관전한 한 남자선배는 도장 밴드에 이런 글을 올리기도 했다. 착해서보다는 쫄아서였던 것 같지만. 아무튼 스스로 느끼기에 더 강하게 맞선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새삼스럽지만 검도는 격투기다. 진검을 들며 겨룬 끝에 죽거나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는 싸움 말이다. 스포츠화된 현대의 죽도경기에서 피 흘리는 일이 없지만 ‘지면 죽는다'는 감각은 왠지 본능처럼 올라온다.


특히 시합 때 서로 죽도를 뽑아드는 순간 상대의 노련함이 보이면 그 중압감이 훨씬 커진다. 이런 두려움은 연습 때도 느껴서 누가 내 심장을 움켜잡고 뒤로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대련 도중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여러 번이다(선배: 무슨 일이야? / 나: 쫄려서요).


처음에는 잔뜩 긴장한 나를 책하는 말이 떠올랐다. "나보다 못 하는 상대에게도 졌네. 좀더 제대로 했어야지." "평소 야근 때문에 수련시간이 부족해서 그런거야." "절대 실패할 수 없을 때까지 공격연습을 해내야 해." 구글에 ‘검도’ ‘긴장감’이란 키워드를 검색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비슷한 상황을 극복했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시합 들어가기 전 굳은 다리를 풀어보려 제 자리에서 방방 뛰기도 해봤다. 하지만 다그침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좀더 마음을 다독이고 싶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시합에 나가는데, 그 성실한 나의 애씀을 자신만큼은 알아줘야지 않겠나. 앱을 다운받아 명상 콘텐츠를 듣기도 했다. 긴장감에 허리 통증이 찾아오면 검도 시합장에서 갑자기 종목을 요가로 바꿔 허리 스트레칭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겁에 질린 나를 위한 당근이었다.


이것저것 시도하던 중 잘 맞았던 방법은 아이돌 노래 들으며 가사 흥얼거리기. 매우 기능적 이유로 아이돌 노래를 듣기 시작했는데 입덕한 건 예상 밖이었지만 최애도 생기고 마음도 풀어져서 좋았다. 가사를 흥얼거리며 시합장 바깥에서 기본 동작을 하는 내 모습이 좀 우스웠을지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회가 되는데로 시합을 계속 나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와 함께 나갈 수 있으면 단체전으로, 같이 나갈 사람이 없다면 개인전으로 나갔다.


"시도한 만큼 배우는 거야. 져도 괜찮아." 오랜 시간 나의 패배를 지켜봐준 선배들의 격려 속에서 계속 잘 지는 나날의 연속. 그래도 어느 시점부터 ‘지는 나'에게 점점 관대해져갔다. 만약 검도시합이 회사 일이라면 어땠을까? 7년 넘게 성과를 못 내 모습은 절대 성립할 수 없다. 권고사직이면 모를까. 성과 없이 노력만 관철했던 그 비효율의 나날을 뭐라 설명할지 모르겠다.


실속 없어 보이는 실패 마일리지의 적립과정. 그 끝에 차츰 '시합하는 나'에게 변화가 생긴 건 굴욕의 서울컵대회 단체전이 끝나고 5년 후의 일이다. 누군가 내게 했다던 그 말. “걔 시합 못 하잖아"란 말에 반박할 때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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