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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ul 16. 2023

말하는 사람이 된 순간

에세이 작가들의 팟캐스트에 출연하다 


“으아악 어떡해. 진짜 저 어쩌죠?”


녹음실 문을 연 내 입에서 짧은 비명이 새어나왔다. 



1년 넘게 참여하는 글쓰기 모임이 있다. 이름하여 에세이 클럽. 글쓰는 여성들이 모여 각자가 쓴 에세이를 공유하거나 독서모임을 하기도 한다. 그날은 이들 중 몇몇과 팟캐스트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에 모였다. 사방의 벽으로 둘러쌓인 좁은 공간. 처음 보니 낯설어 더 대단한 뭔가로 느껴지는 마이크. 으악, 으악. 이를 어쩐담. 새어나오는 목소리 톤이 낮아서 그렇지 분명 마음 속으로 한껏 겁이 났다. 다른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한 적이 몇 번 있지만 그건 발표자료가 있었는걸. 아니면 발표 스크립트를 한 가득 써놓고 가서 힐끗 힐끗 볼 수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이런 팟캐스트에서는 대본 없이 그때그때 생각나는 주제에 대해 말을 꺼내야겠지. 내게 그런 순발력이 있었던가. 자신이 없었다. 



나를 뺀 두 에세이 작가, 다혜와 민정은 스튜디오에 있는 게 편해보였다. 마이크를 앞에 두고 앉은 자세에서부터 느껴지는 안정감. “마이크에 더 가까이 대고 말을 해야 해요.” “커피 마실 때도 소리 안 들어가게 조심.” 두 사람 다 팟캐스트 진행경험이 있어서인지 방송을 녹음하며 지켜야 할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짧은 몇 마디 말로 방송 준비가 착착 이뤄졌다. “이게 선수들의 대화일까?”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커피를 홀짝이기만 했다. 



이날 팟캐스트의 주제는 ‘창작자로 살아남기'. 에세이 작가이자 프리랜서 외주 노동자, 혹은 에세이 작가이자 자영업자로 살아가는 서로가 모여 ‘계속 창작하며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감안해야 할지' 같이 이야기해보는 자리다. 프리랜서 2년차이자 골골 대며 에세이 원고를 마감 중인 나의 생존에 대해서도 같이 대화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창작자의 생존이라.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에게 자기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는 시도는 퍽 낯설다. 혼자의 경험 속에서 건져올린 시행착오가 누군가에게도 의미 있을지, ‘이게 힘들어요' 하고 말하면 사람들이 동의해줄지. 가지런히 정리해본 적 없는 고민에 대해 말을 꺼내야 한다. 요는,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나조차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소, 인트로할 때 이 스크립트 읽으면 되요.” 민정이 건내준 스크립트를 살펴봤다. 정해진 멘트는 이것 뿐이구나. 목소리를 가다듬고 방송의 오프닝 멘트를 읽었다. “한 여자가 자기 삶에 대해서 진실을 말한다면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 평소의 낮은 목소리를 생각하면, 왠지 이 멘트를 할 때의 나는 목소리 톤이 좀 높았던 듯하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평온하고 별일 없는 삶이 누군가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이상함으로, 혹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상하다고 간신히 확신해가는 속앓음의 과정이겠지. 녹음이 시작됐다. 



방송을 기획한 민정이 몇몇 질문을 던졌다. 평소의 내가 종종 생각하던 부분인데 나열하자면 이렇다.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환경에서 어떻게 창작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작품의 제작 말고 유통방식도 창작자가 고민해야 할까요?”


“자기 홍보와 셀프 브랜딩, 요즘 창작자들에게 필수일까요?”



창작자들은 글이나 그림을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에 올린다. 플랫폼은 그에 대한 어떤 보상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창작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결과물을 어느 곳에든 올려서 사람들이 많이 보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와중에 나를 다른 창작자와 어떻게 달라 보이게 할까. 오직 유일한 나로서 독자가 찾게 하려면 나를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야 하나. 이런 것들이 창작자가 고민해야 하는 브랜딩의 영역이다. 



진행자인 민정이 높은 톤으로 말을 꺼냈다. “글을 올리면 악플이 그렇게 달리는데, 이런 과정에서 창작자가 오랫동안 소모되도 아무런 보상이 없는거죠.” “인스타툰도 마찬가지잖아요. 연재를 통해 돈이 돌아오지 않죠.” 여기에 응하는 아이돌 덕후 다혜의 말에 세 명 전원이 꺄하하 웃었다. “그런 게 꼭 아이돌 연습생 같거든요. 신선한 창작물을 무상으로 만들어내는데, 좋아서 만든다는 사실로 무료로 내놓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거 같아요.” 빠르게 말이 오가는 두 사람. 이 대본도 순서도 정해진 게 없는 녹음의 현장에서 언제 말을 꺼내볼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내 속에서도 말이 떠올랐다. 랩을 하듯 경쾌한 분위기로 말을 잇는 두 사람 사이에 거북이처럼 느리고 낮은 톤의 내 말이 시작됐다. 



“창작은 창작대로 하고 돈은 다른 걸로 벌라고 할 수도 있죠. 근데 창작도 저희의 시간과 몸, 마음을 쓰는 일이잖아요. 창작을 하다가 힘에 부쳐서 멈췄을 때 고민 끝에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아, 보상이 없구나.”



나도 뭔가 떠오르는 말들이 있었다. 그것도 생각보다 많이. 



팟캐스트 녹음을 하는 내내 내가 뭔가를 말하면 옆의 두 사람이 ‘아 맞아요’ 이러며 맞장구를 쳐줬다. 그러면 나는 그 기운에 이끌리듯 떠오르는 말들을 하나둘 꺼내어나갔다. 창작에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 이상할까, 취미 이상의 노력을 부어서 고꾸라지듯 뭔가를 만들어내는 마음을 털어놔도 이해받을 수 있을까. 한켠에 불안하게 놓아두었던 내 마음의 목소리는 민정과 다혜 앞에서 입 밖으로 나왔다. 이곳이라면 말을 꺼내기에 안전하다는 느낌.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또렷해지는 말 소리. 함께 하는 사람들에 이끌려 자기 말과 감정에 확신을 갖는 감각이 꽤나 강렬했다. 



“이소 팟캐스트 녹음 처음 하는 거 맞아요? 진짜 잘 했어요!”



녹음이 끝나고 내게 돌아온 다혜와 민정의 칭찬. 그 말은 이제까지 들었던 ‘너 말 잘 못해'라는 식의 말과 사뭇 달랐다. 직장 상사에게 업무를 보고할 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표현하려 할 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말로 꺼내지 못했던 순간들. 그런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야 쓰는 사람이지'라고 어떤 틀을 정해둬온 이전의 상황을 돌아봤다. 그런 나였어서 말 못 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말 못 하는 사람으로 계속 살 줄 알았는데.



‘진짜 잘 했어요.’ 



소가 입속의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칭찬의 말을 마음으로 곱씹었다. 안전한 사람들 안에서 내 목소리를 털어놨을 때 인정 받는 일, 그 상황을 함께 화내고 슬퍼하는 일. 부정적인 에너지를 유머와 섞어내어 말해본 시간. 그에 대한 묘한 쾌감. 나에게 말하는 사람이 되는 기회가 좀 늘어나도 괜찮을지 몰라. 나의 생각과 말을 스스로 확신하고 누군가와 공유하는 순간이.



출연했던 에세이클럽 팟캐스트 모음


창작자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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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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