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본질

부상과 죽음을 경험하며

by 이민

실패란 낱낱이 지워지는 것이다.

막을 넘어선 극의 엔딩이고 밤의 도래가 아닌 무의 세계로 들어감이다. 많은 이들이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라던가 마땅히 겪어야 할 절차 따위로 치부하지만 실상은 좀 더 막막하다.


1.jpg 2014년 춘계대회 (출처 : 본인)


나는 19살부터 10년간 미식축구에 도전했다. 강한 남자가 되고 싶다는 순수한 일념 하나. 그래서 가장 어려워 보이는 미식축구를 선택했다. 완력을 다투고 땅을 구르고 상대를 뛰어넘는 미식축구는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을 뿜어냈기 때문에.


미식축구는 치열한 만큼 필드 위에서 명암이 뚜렷하게 갈린다. 선수들은 각자 공격과 수비로 맞붙으며 격한 충돌과 함께 강한 자는 나아가고 약한 자는 쓰러진다. 매 작전 이겨내는 강한 선수가 많을 수록 더 많은 야드를 쟁취한다. 따라서 한 경기 수십번의 성공과 실패가 존재하는 스포츠라 할 수 있다.


비록 작은 작전에서 패배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경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어찌어찌 경기를 이어가다 보면 역전승이나 본인의 존재가치를 다시 입증해내기도 한다. 따라서 넓게 본다면 한 번의 패배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2.jpg 정강이 골절 (출처 : 본인)


그에 반해 나는 되돌릴 수 없는 실패를 두 번 겪었다. 중상을 입어 필드에서 치워졌던 경험이다. 10년 전엔 우측 정강이가 골절되었고, 2년 전엔 목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사실 정강이 골절부터 내겐 무리한 부상이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활에 상당한 노력이 들지만 재기에만 성공한다면 실패를 만회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과거의 나를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과 고집이라고 봐야겠지.


그러나 신체가 마비될 수 있는 디스크 파열에 다가서자 더 이상 도전 같은 건 생각할 수 없었다. 이는 미식축구에 도전하던 내게 내려진 사형선고였다. 마치 횟집 도마에서 목이 잘리는 생선, 연소를 끝내 바람에 흩어져 사라지는 재와 같이 말이다.


실패는 상상보다 좀 더 가혹하다. 가장 먼저, 이루고자 하는 꿈과 이상이 사라진다. 따라서 뭔가를 가슴 타오르며 할 수도 없어진다. 더불어 노력하고 투쟁하고 감수하던 나의 과거는 후회가 된다.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는 기분은 끔찍하다.


무가 되는 되는 것.

중단이 아닌 정지하는 것.

형체가 없어지는 것.


201506241757082190_e.jpg 화장터 (출처 : 파이낸셜 뉴스)


비슷한 예로 죽음이 떠오른다. 수사관 생활동안 많은 사망자를 봐왔다. 자살, 살해, 사고.. 어떤 사연이 있든 그들은 공통된 결말을 마주한다. 생명이 아닌 사물이 되는 것. 한 개인이 얼마나 참된 삶을 살아왔든 상관없이 사물화 된 신체를 두고 사람들은 더 이상 기대와 믿음을 걸지 않는다. 차이는 있겠지만 경험상 기억과 시선에서 아주 빠르게 지워진다.


달에 한 번씩은 갔던 병원 응급실, 그 속에서 사건 대상자와 실랑이를 하고 있다 보면 알지 못하는 생사가 오간다. 그것을 처음 인지한 뒤로 가끔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섬뜩하다. 오늘도 누군가가 공허로 돌아가는구나 하고 말이다. 이처럼 실패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삶은 굉장히 단순해진다. 모든 과정은 어찌 보면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지켜내는가 그러지 못해 사라지는가.


복잡한 세상 속 명료한 기준


굳이 겪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을까? 그랬다면 좀 더 나는 밝은 사람으로 남았을까?

의미 없는 질문이지만 그럼에도 어쩌다 한 번씩 기억에서 잊힐 때쯤 나는 자문한다.


77c4693abefea2f78abf13bd885e4573.jpg 아이벡스 염소 (출처 : BBC)


겹겹이 쌓이는 실패를 반복하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좀 더 살아있음을 느낀다. 다소 변태같지만 실제로 피부로 와닿게 느끼고 있다. 실패를 반복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것과 살아있지만 언제든 다시 실패할 수 있다는 양 극점. 매일이 사실은 한정된 도전이라는 자각. 최선의 집중과 노력을 하는 것 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과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겸허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사실.


부상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부상 후유증으로 무릎이 시려 헬스와 런닝 운동을 더했고 효과를 보고있다. 새로운 대학 수업을 듣고있다. 심리학과에 관심이 생겨 사이버 대학과 편입 준비 중에 있다. 주식과 블록체인 투자에 나섰다. 투자 수익을 통해 내가 얼마나 세상을 잘 읽고 감수 할 수 있는지 겨루는 건 고되지만 짜릿하다.


24년수익.JPG 2024년 주식 수익 (출처 : 본인)


실패 속에서 다시금 나를 발견한다. 무엇을 잘하는지 알기위해선 무엇을 못하는지도 알아야한다.


성공하지 못했기에 도전을 이어나간다. 실패했기에 다시 응전했다. 살아있는 한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이며 어쩌면 그것이 삶의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따라서 삶은 영원한 시도이며 시도이기에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내가 정한 실패의 본질이며 실패가 나에게 남겨둔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