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작은 사랑 뿌리고만 싶다....’
지난해 가을에 심은 도라지 씨가
올여름 도라지 꽃을 활짝 피웠다.
하얀빛, 보랏빛 꽃은
참 단아하게 고왔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꽃처럼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도라지 꽃은 다시금
도라지 씨를 품었다.
돌고 도는 도라지 인생,
아니 도생.
참깨처럼 들깨처럼
작디작은 검은 씨를
고이 거두어 땅에 뿌렸다.
이제 곧 추위가 몰아칠 텐데
땅속에서 잘 버텨 낼 수 있을지
안쓰럽고 애잔하다.
그동안 늘 그래 왔듯이
도라지는 분명 잘 해내겠지.
도라지 씨가 많지 않고
심을 밭도 넓지 않으니
일은 금세 끝이 난다.
고만치 땅에서 몸 부렸다고
노래 하나 자꾸만 입에서
흐르고 흐른다.
이른바 산골혜원네 텃밭 노동요.
“여전히 내게는 모자란
날 보는 너의 그 눈빛이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알 수 없던 그대~♪”
도라지 씨를 땅에 뿌린 거랑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노래랑
당최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쯤
나도 잘 알지만 어쩌랴,
잠시나마 씨 뿌린 뒤
입에서 저절로 흐르는 것을.
집에 들어와서도
자꾸 떠오르는 이 노래를
멈추지 못하고
그만 기타를 잡는다.
오랜만에 불러 보는 이 노래가
오랜만에 잡는 기타처럼
참 많이 좋았다.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를 부르고 나서
가만히 마음에 손을 얹었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지만
보고 싶다고 만나고 싶다고
차마 전하지 못하겠는,
도라지 꽃처럼 순수하게 고왔던
‘그대의 얼굴과 그대의 이름과
지나간 내 정든 날'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노랫말처럼
‘기다림을 믿는 대신 무뎌짐을 바라는’
내 마음이 조금은 서글펐지만.
그리고 또....
일렁이는 생각들, 바람들.
보잘것없는 내 하나도
이 세상에 작은 사랑
보태고만 싶다,
뿌리고만 싶다,
그러고만 싶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을 휘감던
이 마음 저 마음을 그러안으며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노래를
늦은 밤 다시금 마음에 품어 본다.
땅에 뿌린 도라지 씨를
마음에 고이 품었듯이.
“언제나 세월은 그렇게 작은 잊음을 만들지만
정들은 그대의 그늘을 떠남은 지금 얘긴걸
사랑한다고 말하진 않았지 이젠 후회하지만
그대 뒤늦은 말 그 고백을 등 뒤로~
그대의 얼굴과 그대의 이름과
그대의 얘기와 지나간 내 정든 날
사랑은 그렇게 이뤄진 듯해도
이제 와 남는 건 날 기다릴 이별뿐
바람이 불 때마다 느껴질 우리의 거리만큼
난 기다림을 믿는 대신 무뎌짐을 바라겠지
가려진 그대의 슬픔을 보던 날
이 세상 끝까지 약속한 내 어린 마음
사랑은 그렇게 이뤄진 듯해도
이제와 남는 건 날 기다릴 이별뿐~♪”
_오태호 작사, 작곡/ 이승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