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Oct 23. 2020

도라지 꽃이 품은 씨앗

‘이 세상에 작은 사랑 뿌리고만 싶다....’

지난해 가을에 심은 도라지 씨가 

올여름 도라지 꽃을 활짝 피웠다. 

하얀빛, 보랏빛 꽃은

참 단아하게 고왔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꽃처럼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도라지 꽃은 다시금 

도라지 씨를 품었다.

돌고 도는 도라지 인생,

아니 도생. 


한여름에 피어난 하얀빛, 보랏빛 도라지 꽃은  참 단아하게 고왔다.


참깨처럼 들깨처럼

작디작은 검은 씨를

고이 거두어 땅에 뿌렸다.


이제 곧 추위가 몰아칠 텐데

땅속에서 잘 버텨 낼 수 있을지

안쓰럽고 애잔하다.

그동안 늘 그래 왔듯이

도라지는 분명 잘 해내겠지.


참깨처럼 들깨처럼  작고도 검은 씨를  고이 거두어 땅에 뿌렸다.


도라지 씨가 많지 않고

심을 밭도 넓지 않으니

일은 금세 끝이 난다. 

고만치 땅에서 몸 부렸다고

노래 하나 자꾸만 입에서

흐르고 흐른다. 

이른바 산골혜원네 텃밭 노동요.   


“여전히 내게는 모자란 

날 보는 너의 그 눈빛이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알 수 없던 그대~♪”


도라지 씨를 땅에 뿌린 거랑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노래랑

당최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쯤

나도 잘 알지만 어쩌랴,

잠시나마 씨 뿌린 뒤

입에서 저절로 흐르는 것을.


도라지 씨를 땅에 뿌리면서 텃밭 노동요가 입에서 흐르고 흐른다.


집에 들어와서도 

자꾸 떠오르는 이 노래를 

멈추지 못하고 

그만 기타를 잡는다. 

오랜만에 불러 보는 이 노래가

오랜만에 잡는 기타처럼 

참 많이 좋았다.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를 부르고 나서 

가만히 마음에 손을 얹었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지만

보고 싶다고 만나고 싶다고

차마 전하지 못하겠는, 

도라지 꽃처럼 순수하게 고왔던 

‘그대의 얼굴과 그대의 이름과

지나간 내 정든 날'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노랫말처럼 

‘기다림을 믿는 대신 무뎌짐을 바라는’

내 마음이 조금은 서글펐지만.  


그리고 또.... 

일렁이는 생각들, 바람들. 


보잘것없는 내 하나도

이 세상에 작은 사랑 

보태고만 싶다,

뿌리고만 싶다, 

그러고만 싶다....


도라지 꽃처럼 순수하게 고왔던 '그대의 얼굴과 그대의 이름과  지나간 내 정든 날'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을 휘감던

이 마음 저 마음을 그러안으며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노래를

늦은 밤 다시금 마음에 품어 본다.

땅에 뿌린 도라지 씨를

마음에 고이 품었듯이.


“언제나 세월은 그렇게 작은 잊음을 만들지만
정들은 그대의 그늘을 떠남은 지금 얘긴걸
사랑한다고 말하진 않았지 이젠 후회하지만
그대 뒤늦은 말 그 고백을 등 뒤로~

그대의 얼굴과 그대의 이름과
그대의 얘기와 지나간 내 정든 날
사랑은 그렇게 이뤄진 듯해도
이제 와 남는 건 날 기다릴 이별뿐

바람이 불 때마다 느껴질 우리의 거리만큼
난 기다림을 믿는 대신 무뎌짐을 바라겠지

가려진 그대의 슬픔을 보던 날
이 세상 끝까지 약속한 내 어린 마음
사랑은 그렇게 이뤄진 듯해도
 이제와 남는 건 날 기다릴 이별뿐~♪”
_오태호 작사, 작곡/ 이승환 노래  
작가의 이전글 무언가를 ‘심는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