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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Oct 19. 2020

무언가를 ‘심는다’는 것

혹여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할지라도  

마늘을 심습니다.

땅속 깊이 박아야

추운 겨울을 덜 탄다고

마을 아주머니가 그랬습니다.


그 말씀 따라

있는 힘껏 흙을 눌러서

동그란 구덩이를 만들어

마늘을 심습니다. 


추위를 조금이라도 덜 탈 수 있도록, 땅속 깊이 마늘을 심습니다.


올여름 거둔 마늘,

참 작기만 해서 

장아찌 한번 만들곤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 마늘을 땅에 박듯이 심는데

씨를 흩뿌릴 때랑 느낌이 좀 다릅니다.

정성을 들인 만큼 

왠지 꼭 잘 자랄 것만 같습니다.


참 소박한 규모지만

어느덧 7년째 마늘농사를 짓습니다.


마늘 한 접 심으면

한 접 조금 넘게 나오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보다 더 적을 때도 많았고요.

(마늘농사 제대로 짓는 분들이 들으면

혀를 엄청 끌끌 차실 거예요.)


어느덧 7년째 마늘농사를 짓지만 때마다 크기는 작고 양은 적고 늘 그렇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꼭 농사를 일컫는 말만은 아니지만

이 말이 들어맞지 않는 때도 

있다는 걸, 생각보다 자주 있다는 걸 

마늘을 심고 거두면서

겪고 느낍니다. 


수확이 어이없을 만큼이나 적어 

속상한 적도 많았지만

그럴 때면 헝클어진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농사든 삶이든 그 무엇이든

무언가를 ‘심는다’는 것,

그 자체로 참 소중한 것 같다고요.

혹여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하더라도요.  


노력한 만큼 힘을 기울인 만큼 무언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온 순간과 느낌들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다면, 
무언가를 심은 보람은 그것으로부터 차근차근 채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만 싶어요.


마늘을 심을 수 있어서, 마늘이 자라는 걸  기다릴 수 있어서 그저 좋습니다.


7년째 한결같이 마늘을 심으면서

산골에 심은 지 7년이 넘어가는

제 삶을 돌아봅니다.


복잡한 것 다 빼고요,

마늘을 심을 수 있어서

그저 좋습니다.

마늘이 자라는 걸

기다릴 수 있어서 

그 또한 좋습니다.


이 마음,

주욱 간직하고 싶은 바람을

제 마음에 살금살금 심어 봅니다.

혹여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할지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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