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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Oct 04. 2020

밥 대신 밤 먹고, 케이크 대신 밤잼 먹고

산밤으로 건강하게 살찌는 가을~

가까운 산에 올라

밤을 주워서 씻고는 햇볕에 말린다.

며칠 그렇게 두면 밤맛이

조금 더 달콤해진다. 


적당히 마른 밤을 찐다.

밤 가위로 반 가른 다음

숟가락으로 밤 속을 

하나하나 파낸다.


구수하게 노란 밤 속을

공기에 수북이 담아서

한 끼쯤은 밥 대신 먹는다.

간식으로만 먹기엔 

담백하게 달콤하고 고소한 밤이 

내 입에 들어올 수 있도록 

정성껏 움직인 그 모든 노동이 

무척 귀하게만 느껴져서.


숟가락으로 삶은 밤 속을 하나하나 파내는 기나긴 노동, 참 단조롭고도 지겨운 일이다.


밥으로, 참으로 다 먹기엔

주워 온 밤이 좀 넉넉하니

잼을 만든다. 


삶은 밤 속을 믹서에 갈아선

설탕과 함께 오래오래 저으며 

끓이고 또 끓이는 것.


식빵 같은 게 없어서

잼만 그냥 입에 담아 본다.


“맛있다, 밤케이크 같은 느낌이랄까? 달콤하고 듬직한 맛이야. 단 거, 그니까 케이크 같은 거 땡길 때 한 숟갈씩 퍼먹으면 그런대로 입도 마음도 달랠 수 있을 것 같아. 보탠 거 없이 받아먹기만 해서 무척 무척 미안한데, 그래도 잘 먹을게. 고마워~^^ 참! 밤이 숙취에도 좋고 몸에도 좋고 암튼 여러 모로 좋다니까 산밤 줍는 것부터 여태까지 열심히 일한 당신도 꼭꼭 많이 먹어.^^”


삶은 밤 속을 믹서에 갈아선 설탕과 함께 오래오래 저으며 끓이고 또 끓이면 밤잼 완성.
잼으로만 먹기엔 아까울 만큼 밤잼 그 자체로 참 담백하고도 듬직한 맛이 난다.


밤과 이어진 그 긴한 노동들을

잼 만들 때 잠시 거든 것 말곤

손 하나 제대로 보태지 않은 

염치없는 마누라는

(진짜로 하기 싫은 일은 

참말로 안 하고야 마는 게으른 고집쟁이ㅠㅜ)

염치없게 몇 마디 건네고는

밥 대신 밤을 먹고 케이크 대신 밤잼을 먹는다. 

것두 아주 맛나게. 


입에 좋은 음식이

몸에도 좋기를 바라면서

밤의 효능을 찾아보다가, 

‘부작용’이 있다기에 슬쩍 엿보니

칼로리가 높아 ‘살찔 수 있다’는 거였다.

굉장한 부작용이라도 있을까 봐

미리 겁먹었다가는 피식, 웃음이 나더라니.^^


제철음식 먹고 찐 살은

왠지 ‘좋은 살’이 될 듯도 해선,

밤만큼은 있을 때 맘껏 먹어 보련다.


밥 대신 밤 속 한 공기를 밥으로 먹는다. 한 끼는 먹을 만한데 두 끼 연이어는 입에 물려서 좀 어렵더라.


아, 근데! 

밤으로 끼니를 대신해 보았더니만

아무래도 밥보단 빨리 배고파지더라.

또 조금은 질리기도 해서 

두 끼까진 연이어 못 먹겠더라.


밤을 밥으로 먹는 건

두어 번 한 것으로

그만 그치게 될 것 같다.


주울 밤도 이제 곧 사라질 테고,

다람쥐 먹을 양식도 남겨야 하니

밤이 그리울 땐 밤잼 한 숟갈로

밤 덕분에 행복했던 이 가을을 

떠올리면 되겠지.

‘먹는 밤’만 보면 무조건하고 떠오르는 

노래 몇 가락 흥얼거리면서. 


가을에만 만날 수 있는 귀한 산골짜기 밤. 날 추워지면 참 그리워질 것 같다.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네 모습 떠올리기 싫어~ 싫어! 희미한 전등불 밑에서 내 모습 초라한 것 같아, 싫어~♪”


“이 밤이 지나면 우린 또다시 헤어져야 하는데, 아무런 말없이 이대로 그댈 떠나보내야만 하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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