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살이가 안겨준, 어쩌면 가장 귀한 선물
대보름을 맞아 아주 오랜만에 바깥에서 몸을 부렸다. 새봄맞이 첫 일감은 바로, 장 담그기!
먼저 지하수 콸콸 퍼 올려 이 봄, 메주를 짠~하게 품어줄 소금물을 만든다. 장 담그기에서 메주 띄우기 못지않게 중하고도 중한 일. 이 소금물이 어그러지면 아무리 잘 뜬 메주도 신맛 나는 된장으로 바뀔 뿐. 그동안 장 담글 소금물 맞출 때면 무척이나 겁도 나고 걱정도 되곤 했는데. 웬일인지 이번엔 떨리지 않는다. 물 양도, 소금 양도 가늠하는 내 손과 마음이 느긋하고 편안하다. 장 만드는 일이 어느덧 조금씩 손에 스미기라도 했는지.
큰 대야 가득 지하수를 담고는 분홍빛 바가지로 소금을 퍼서 물에 붓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맛볼 거 없이 달걀을 띄워 간을 맞춘다. 장 담글 소금물 맞출 때 진리로 통하는 이야기, “달걀이 ‘오백 원’짜리 크기만큼 떠오를 때까지 소금을 넣고 또 넣기!”
그렇게 한 시간에 걸쳐 모두 열다섯 번 넘게 소금 바가지를 퍼 나르며 소금물을 만들었다. 달걀 한 개로는 뭔가 미심쩍어 두 알을 넣으니 오백 원짜리 딱 그만큼 사이좋게 떠오른다. 대보름날이라 그런가, 둥실 떠오른 달걀이 꼭 보름달처럼 곱다. 어떻게 보면 달걀부침처럼도 보이고.
소금을 더 넣고 싶은 열망이 슬며시 일지만, 물끄러미 내민 달걀 고개를 보고 또 보면서 이제 됐다고, 믿자고, 손도 마음도 추스른다. 그래도 얼마나 짠지 슬쩍 궁금하네. 손끝에 살짝 묻혀 입에 넣으니, “아, 짜! 퇘퇘!” 바닷물보다도 더 짜다. 입은 짜지만 기분만큼은 참 달디 달다.
소금물 만든 다음 날, 아침부터 바삐 움직인다. 장 담글 항아리 씻고 저 높은 곳에 매달아둔 메주 내려 씻고. 날이 맑고 따스해서 기분도 참 좋다. 정말이지 장 담그기 딱 좋은 날이야!
깨끗이 씻은 메주가 잘 말랐다. 이젠 소금물과 만나야 할 차례. 항아리에 메주를 차곡차곡 넣고 하루 동안 묵은 소금물을 베 헝겊에 걸러 메주 위로 붓는다.
차랑 차라랑~♬
"차랑 차라랑, 찰랑 차라라랑~" 소금물이 메주를 보듬고 항아리랑 만나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처럼 귀도 간질이고 마음도 간질인다. 맑고 고운 소리에 푹 젖는다.
자, 소금물 다 부었으니 숯이랑 고추랑 대추를 넣어야지. 숯은 참나무 때서 만들어 두었고, 고추는 지난해 텃밭이 낳은 태양초가 있고, 대추는 장터에서 미리 사두었고. 메주랑 소금물이랑 만나기 전에 해님께 먼저 맡긴다. 미리 햇볕에 쪼인 요 세 가지를 하나하나 항아리에 띄운다. 메주 잘 보살펴 달라고 빌면서.
마지막으로 장 항아리 뚜껑 덮고 두 손 모아 빈다. ‘장 잘 익게 도와 주소서.’
이렇게 장을 담갔다. 어느덧 다섯 번째. 산골살이가 안겨준, 어쩌면 가장 귀한 선물, 장 담그기. 참으로 뿌듯하고 흐뭇하고 기쁘고 행복하다.
메주도, 소금도, 고추도, 숯도, 대추도, 항아리도. 그리고 하늘님, 바람님, 눈님, 해님, 별님, 비님도. 곁가지로 나도 옆지기도. 모든 것들이, 모두가 참으로 장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