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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Mar 04. 2018

대보름맞이 장 담근 날, 참 장한 날

산골살이가 안겨준, 어쩌면 가장 귀한 선물 

대보름을 맞아 아주 오랜만에 바깥에서 몸을 부렸다. 새봄맞이 첫 일감은 바로, 장 담그기!  


먼저 지하수 콸콸 퍼 올려 이 봄, 메주를 짠~하게 품어줄 소금물을 만든다. 장 담그기에서 메주 띄우기 못지않게 중하고도 중한 일. 이 소금물이 어그러지면 아무리 잘 뜬 메주도 신맛 나는 된장으로 바뀔 뿐. 그동안 장 담글 소금물 맞출 때면 무척이나 겁도 나고 걱정도 되곤 했는데. 웬일인지 이번엔 떨리지 않는다. 물 양도, 소금 양도 가늠하는 내 손과 마음이 느긋하고 편안하다. 장 만드는 일이 어느덧 조금씩 손에 스미기라도 했는지. 


"떠올라라, 떠올라라, 딱 오백 원짜리 그만큼만!" 소금물과 만난 달걀이 떠오르는 생생한 모습!


큰 대야 가득 지하수를 담고는 분홍빛 바가지로 소금을 퍼서 물에 붓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맛볼 거 없이 달걀을 띄워 간을 맞춘다. 장 담글 소금물 맞출 때 진리로 통하는 이야기, “달걀이 ‘오백 원’짜리 크기만큼 떠오를 때까지 소금을 넣고 또 넣기!” 


분홍빛 바가지로 열다섯 번 넘게 소금을 펐다. 20킬로그램 소금 거의 다 썼음!


그렇게 한 시간에 걸쳐 모두 열다섯 번 넘게 소금 바가지를 퍼 나르며 소금물을 만들었다. 달걀 한 개로는 뭔가 미심쩍어 두 알을 넣으니 오백 원짜리 딱 그만큼 사이좋게 떠오른다.  대보름날이라 그런가, 둥실 떠오른 달걀이 꼭 보름달처럼 곱다. 어떻게 보면 달걀부침처럼도 보이고.  


오백 원짜리 딱 만큼 소금물 위로 빼꼼 고개 내민 달걀 두 알. 보름달처럼도 보이고 달걀부침처럼도 보인다.


소금을 더 넣고 싶은 열망이 슬며시 일지만, 물끄러미 내민 달걀 고개를 보고 또 보면서 이제 됐다고, 믿자고, 손도 마음도 추스른다. 그래도 얼마나 짠지 슬쩍 궁금하네. 손끝에 살짝 묻혀 입에 넣으니, “아, 짜! 퇘퇘!” 바닷물보다도 더 짜다. 입은 짜지만 기분만큼은 참 달디 달다.

 

소금물 만든 다음 날, 아침부터 바삐 움직인다. 장 담글 항아리 씻고 저 높은 곳에 매달아둔 메주 내려 씻고. 날이 맑고 따스해서 기분도 참 좋다. 정말이지 장 담그기 딱 좋은 날이야!  


항아리도 씻고 메주도 씻어 해님께 먼저 맡긴다. 해님 기운까지 스며 더 잘 익을 거야~


깨끗이 씻은 메주가 잘 말랐다. 이젠 소금물과 만나야 할 차례. 항아리에 메주를 차곡차곡 넣고 하루 동안 묵은 소금물을 베 헝겊에 걸러 메주 위로 붓는다. 


차랑 차라랑~♬


"차랑 차라랑, 찰랑 차라라랑~" 소금물이 메주를 보듬고 항아리랑 만나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처럼 귀도 간질이고 마음도 간질인다. 맑고 고운 소리에 푹 젖는다.


참나무 때서 손수 만든 숯, 지난해 텃밭이 안겨준 태양초, 그리고 장터 대추도 항아리에 들기 전 해님 기운 먼저 마신다.


자, 소금물 다 부었으니 숯이랑 고추랑 대추를 넣어야지. 숯은 참나무 때서 만들어 두었고, 고추는 지난해 텃밭이 낳은 태양초가 있고, 대추는 장터에서 미리 사두었고. 메주랑 소금물이랑 만나기 전에 해님께 먼저 맡긴다. 미리 햇볕에 쪼인 요 세 가지를 하나하나 항아리에 띄운다. 메주 잘 보살펴 달라고 빌면서. 


이렇게 장을 담갔다! 어느덧 다섯 번째.


마지막으로 장 항아리 뚜껑 덮고 두 손 모아 빈다. ‘장 잘 익게 도와 주소서.’ 


이렇게 장을 담갔다. 어느덧 다섯 번째. 산골살이가 안겨준, 어쩌면 가장 귀한 선물, 장 담그기. 참으로 뿌듯하고 흐뭇하고 기쁘고 행복하다. 


메주도, 소금도, 고추도, 숯도, 대추도, 항아리도. 그리고 하늘님, 바람님, 눈님, 해님, 별님, 비님도. 곁가지로 나도 옆지기도. 모든 것들이, 모두가 참으로 장한 날이다!  


높은 곳에서 눈과  시린 겨울 이겨낸 메주들, 참 장하다. 메주를 보듬어 준 눈도, 바람도, 해님도, 별님도, 달님도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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