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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Mar 10. 2018

정말, 봄이, 오긴 왔구나!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가는 달래, 냉이랑 묵나물이 어우러진 산골밥상

겨울 나고 처음으로 빨래를 해님께 맡겼다! 그동안은 날이 추워 집 안에서 말렸는데, 그러다 거의 다 마른 빨래를 시린 겨울 햇볕이나마 잠시 맛보인 뒤에 들여놓곤 했지.


새봄을 맞아 처음으로 빨래를 해님께 맡긴다. 참, 잘 마르는구나.

오늘은 아침부터 해가 쨍쨍, 하늘은 푹 뛰어들고 싶을 만큼 맑고 푸르다. 바로 널어도 잘 마르겠지 싶어 세탁기에서 건진 빨래들을 마당에 너는데 감개가 무량하다. 정말, 봄이, 오긴 왔구나!  


따스한 햇볕 아래 빨래들이 참 잘도 마른다. 요즘 복잡다단한 세상 이야기 덕분에 축축하고 끈적였던 내 마음도 뽀송뽀송해진다. 오랜만에 해님 만난 빨래들도 행복해하는 것만 같아.  



햇볕이 아늑하게 내리쬐니 겨우내 눈길 한번 제대로 닿지 않던 메마른 텃밭에 절로 발길이 쏠린다. 저 앞에 푸른빛이 살랑거린다. 시금치다! 지난해 가을에 씨로 심은 시금치가 추운 겨울 딛고 싹을 틔웠구나. 아이, 이뻐라. 아아유, 기특해라.   

작고 힘없이 보이는 마늘 싹도(왼쪽), 시금치도(가운데), 양파 싹도(오른쪽), 봄 기운 받아 곧 씩씩하게 자랄 거야!

텃밭 저 끝에 마늘 싹, 양파 싹도 보인다. 겨우내 많이 힘들었는지 작고 가늘게 솟아있는 요 싹들. 다른 집 마늘밭, 양파밭은 멀리서 봐도 푸릇푸릇하던데 우리 밭은 가까이 가야만 싹이 보인다. 그것도 간신히. 비닐도 씌우지 않고, 왕겨도 조금만 덮어서 그런 걸까. 하지만 난 마늘과 양파를 믿어. 지금은 저리 힘없이 보여도 곧, 금세 파릇하게 일어날 거야.


자, 어디 또 뭐 없을까. 온통 흙빛투성이 텃밭. 푸른 때깔 찾아 이리 저리 휘젓고 다니니, 마침내 보인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봄냉이님들! 아흑,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는지…. 


이야! 사무치게 그리던 봄냉이다!

땅에 바짝 붙어 있는 냉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막 설렌다. 아직은 많이 작은 냉이들, 조금 지나면 그 향긋한 내음을 입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마음껏 만날 수 있겠지. 냉이 캘 그날을 손꼽으며, 텃밭을 살살 걸어 나온다. 곧 있으면 요 텃밭 곳곳을 뻔질나게 드나들겠지. 오랜만에 김매기하려면 분명 힘들 텐데, 왜 이렇게 호미 쥘 그날이 기다려질까?


새봄 첫 손님 덕분에 묵나물과 봄나물이 한자리에

점심밥 먹고 나서 같이 사는 남자가 불쑥 던진 말.

“오늘 저녁 ㅇㅇ가 오는데 몇 시에 올지 모르겠네.”

“어? 정말? 왜 미리 말 안 했어! 반찬 하나도 없는데 어떡해….”

“어? 말한 줄 알았는데 안 했던가?”

“그게 오늘인 줄은 몰랐지~” 


고이 모셔둔 박나물, 가지나물(왼쪽), 머위나물, 취나물(오른쪽) 후다닥 꺼내서 삶고 데치고 볶고~ 나물 네 가지 완성!
취나물, 가지나물, 아주까리나물, 머위나물 그리고 박나물까지 묵나물 모음. 손님들 입과 내 마음을 늘 행복하게 해주었지. 


나도 옆지기도 잘 아는 그분. 한 미식가로 통하시는 그분. 얼른 머리 굴려 바로 할 수 있는 반찬을 찾는데, 빤하지 뭐. 이 산골에서 시장 안 가고 바로 할 수 있는 건. 잘됐다. 정월대보름 때 나물 못 먹은 게 좀 섭섭했는데 이참에, 간만에 나도 나물 맛 좀 보자꾸나!


고이 모셔둔 취나물, 가지나물, 박나물, 머위나물 후다닥 꺼내서 삶고 데치고 볶고.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얼추 걸리네. 역시 나물반찬은 손이 많이 간다니까. 그래도 다른 때보단 빠르게 해냈음!  


봄을 알리는 전령사, 산골 작은 텃밭이 낳은 달래랑 냉이.
겨우내 사무치게 그리웠던 달래장이랑 냉이된장찌개. 드디어 먹는구나! 정말, 봄이, 왔구나!


나물 네 가지 다 만들고 나니 뭔가 아쉽다. 그랬더니만 알아서 텃밭에 난 냉이랑 달래를 캐온다. 뒤늦게 손님 오신다는 걸 알려준 그 남자가. 냉이 된장찌개랑, 달래장 만들어 먹자면서. 그래, 그거지! 새봄맞이 첫 손님께 정말 딱이야! 귀엽게 가느다란 달래 종종 썰어 달래장 만들고, 집된장으로 구수하게 끓인 된장찌개에 어리고 여리고 향긋한 냉이 풍덩 빠뜨리고. 


마지막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배추도 꺼낸다. 쌈배추로 먹기 위하여. 지난해 늦가을 김장 때 갈무리한 이 배추. 저온 저장고가 없어 그냥 다용도실에 두었다. 겉잎만 보면 시든 듯이 보여도 노란 속잎은 마치 갓 거둔 것마냥 어찌나 싱싱한지. 땅에서 벗어난 배추의 질긴 생명력에 꺼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난다니까. 


묵나물과 봄나물이 만난 산골밥상. 산골로 날아든 새봄맞이 첫손님의 입도 마음도 기쁘게 해드리면 참 좋겠다.


그렇게 반나절 못 미쳐 준비한 밥상 앞에 두고 저 멀리 서울에서 외진 산골로 날아든 그분을 맞이한다. 나부터 침이 꼴깍 꼴깍 고이는 묵나물이랑 봄나물이 어우러진 소박한 밥상. 늘 산골밥상을 휘어잡던 묵나물이 오늘은 왠지, 봄나물에 밀릴 것만 같은 느낌이…. 


봄나물이든 묵나물이든 뭐든 상관없어. 이 험한 세상 좋은 길로 이끌어 가고자 밤낮없이 고생 많으신 우리 미식가님. 입도 마음도 기쁘게 해드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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