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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Apr 11. 2018

못난 딸의 ‘쑥 열 덩이’와
엄마표 ‘아주 좋은 숙’

애틋한 추억이 있어 더 맛있는 몽실몽실 쑥버무리   

올봄, 처음으로 공식 쑥 노동을 했다. 좀 늦었다. 텃밭 저 너머에서 뜯어 가라고 아우성치는 쑥들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나니. 


며칠 내리 비가 온 뒤라 쑥이 많이 컸다. 쑥쑥 뜯기 좋구나. 작은 칼 쥐고 텃밭 귀퉁이 비탈진 땅에 네 시간 넘게 머물렀다. 쑥이 그렇다. 잔뜩 모여 난 자리에 다가서면 한자리에서 몇 시간쯤 넉넉히 비비게 된다. 


텃밭 너머에서 뜯어 가라고 아우성치는 쑥들을 더는 외면하지 못하고 오랜만에 징한 쑥 노동을!


아직은 사월. 한낮에 내리쬐는 햇볕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다. 쑥 뜯기는 몸을 크게 쓰지 않으니 굳이 땀 날 일도 없고. 쑥은 많이 자랐지, 날씨 좋지. 여러모로 일하기 참 좋은 처지인데 왜 그런지 신이 안 난다. 뭔가 재미가 덜하다. 손은 쑥을 만지면서도 머리는 자꾸 딴생각.


‘나는 지금 왜 쑥을 뜯는가? 노동은 왜 하는가? 노동의 대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쑥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나는 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반대로 더 힘들게 느낄 수도 있을까. 지난해도 바로 이 자리에서 쑥을 뜯었는데 다시 또 그 자리에서 쑥을 뜯는구나. 뭔가 단조롭고 무의미한 기분. 큰일 났다. 씨 뿌리고, 모종도 심고, 잡초 뽑고. 또 취나물 뜯고 고사리 꺾고…. 이제 날마다 그동안 해 오던 일들 계속 되풀이될 텐데 쑥 하나 하면서 벌써부터 무기력해지면 어쩌나.’


일하면서 오만 생각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쑥 노동뿐일지도 모른다. 다른 일은 손발 놀리느라 힘겹거나 다채롭거나 하여튼 여러 가지 까닭으로 ‘생각’이란 놈이 비집고 들 틈이 없다. 한데 쑥 뜯는 노동은 가만 앉아 손만 놀리다 보니 생각이 피어날 틈이 슬그머니 생겨버린다.


한자리에서 뜯고 뜯고 또 뜯고. 네 시간 만에 쑥 가득하던 비탈을 끝장냄!
스스로 '선택해서' 일한 대가로 얻은 쑥 바구니 두 개. 


재밌지 않으면 일하지 않거나, 어떡하든 재미든 의미든 찾아내거나,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 고개가 아파 한숨 쉬는 때마다 집으로 팍 들어가 버리고픈 마음 애써 다잡는다. 쑥버무리 좋아하는 동생을 등불 삼아.


‘이렇게 열심히 쑥 해 놓으면 일본 사는 동생이 언제든 건너올 때, 걔가 밥보다 더 좋아하는 쑥버무리 양껏 해줄 수 있잖아.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어디 있어! 게다가 너도 쑥버무리 좋아한다며. 그러면서 봄이 이만치 올 때까지 여태 한 번을 해 먹지 않았으니 이번에라도 제대로 쑥에 담긴 봄맛 느껴 보셔!’


하기 싫은 미적지근한 마음 다잡으며 네 시간 넘는 쑥 뜯기 노동을 마쳤다. 이어지는 또 다른 쑥 노동. 쑥을 씻어야 한다. 이젠 나도 쑥은 좀 뜯는 여자가 됐는지 다행히 쑥에 따라온 검불이 적다. 그래도 아주 가느다란 마른풀들이 건듯건듯 숨어 있어 세심하게 씻어야 한다. 


쑥 뜯었다고 다가 아니지. 세심하게 씻고 또 씻고. 쑥을 깨끗이 뜯으면 쑥 씻은 물도 깨끗한 법.


두 바구니 캔 쑥을 깨끗이 씻고 나니 저녁 여섯 시가 훌쩍 넘었다. 쑥 데치기 전에 저녁부터 먹어야지. 게으름 덕에 미루고 미루던 내 사랑 쑥버무리를 드디어 만나는구나! 


푸릇푸릇한 쑥에 밀가루를 버무리니 익히기 전부터 그 때깔에 군침이 호로록. 쑥버무리 익는 소리에 내 마음도 두근두근. 올해 처음 맛보는 쑥버무리, 어떤 맛일까? 


다 익었다! 김 모락모락 이는 쑥버무리 덥석 베어 무는 순간, 사월의 봄이 내 안으로 ‘쑥’ 들어오는 게 아닌가! 밀가루와 쑥이 사이좋게 엉겨 담백하고 쌉싸름하면서 몽실몽실 씹힌다. 아, 그립던 이 맛, 눈물 나게 맛있어. 그저 밀가루랑 소금이랑 물과 섞였을 뿐인데…. 쑥아, 어쩜 이렇게 포근한 맛을 낼 수 있는 거니! 


푸릇푸릇한 쑥과 밀가루가 만나 빚어 낸 이 고운 때깔!
그리고 그리던 쑥버무리! 밀가루와 쑥이 사이좋게 엉겨 담백하고 쌉싸름하면서 몽실몽실 씹힌다.


눈 지그시 감으며 쑥버무리 맛에 푹 빠진 나와는 달리 같이 사는 남자, 몇 입 들고는 만다. 그러면서 슬쩍 던지는 말.


“추억의 맛이야. 그래서 맛있는 걸 거야.”


자기는 어릴 때 엄마가 해 준 쑥 개떡이 그저 그랬단다. 그래서 내가 감탄해 마지않는 ‘산골새댁’표 쑥버무리도 그냥 그렇나다? 음, 다시금 먹어 보니, 정말 무식하게 담백한 맛이다. 설탕 한 알 들어가지 않아서 더더욱!


“다른 사람들이 먹으면 맛없다고 할 수도 있긴 하겠어. 근데 난 정말 맛있어, 무슨 맛이라고 표현은 못 하겠는데, 진짜 진짜 맛있어.”


문득 떠오르는 추억 속 ‘엄마’표 쑥버무리. 어릴 때부터 그렇게나 좋아했던…. 


내 맘대로 가져온, 울 엄마의 최고 혼수 ‘아주 좋은 숙’.


엄마는 봄이면 늘 쑥을 뜯어다가 자주 쑥버무리를 해 주셨다. 뭐든 잘 먹던 때라 그랬을까, 덥석덥석 잘도 받아먹었지. 어느 봄날 토요일,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솥 한가득 쪄낸 쑥버무리 내밀면 허겁지겁 맛나게 집어 먹던 추억까지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그때 엄마는 냉동실 한자리 잔뜩 차지할 만큼 쑥을 많이 뜯어서는, 좋은 쑥은 따로 보관하셨다. 그러곤 쑥 봉지에 작은 종이쪽지도 함께 넣으셨지. 


‘아주 좋은 숙’


‘쑥’인 줄 아셨을 텐데, 글자는 어찌 ‘숙’이라고 쓰셨을까. 하긴 한 번씩 엄마 글씨 보면 맞춤법 틀린 게 눈에 자주 띄긴 했다. 초등학교도 못 다니셨는데, 그에 견주면 정말 잘 쓰신다고 늘 생각하곤 했지만. 


생각해 보니 엄마랑 같이 쑥 뜯은 기억이 없다. 그럼, 봄마다 쑥버무리 해 주시던 그 많던 쑥을 엄마 혼자 다 했단 말인가. 어린 쑥 하나하나 뜯는 일, 고개 아프고 허리 아프고 지루하고. 몸도 마음도 같이 참을성이 필요한, 꽤 징하고 지난한 노동이라는 걸 이제는 알겠는데. 못난 셋째 딸, 어쩌자고 받아먹을 줄만 알고 한 번도 엄마 뒤를 따라가지 않았을꼬. 


어린 쑥 하나하나 뜯는 일, 고개 아프고 허리 아프고 지루하고. 은근히 참을성이 필요한 징한 노동이다.


데친 쑥을 담으면서 엄마가 하신 말씀도 불쑥 떠오른다. 자식들 결혼하면 저 쑥으로 떡을 만들 거라고 하셨지. 아, 그런데…. 육남매 가운데 큰딸 하나 달랑 혼인했을 뿐인데, 아직 다섯 남매나 기다리고 있는데, 그만 엄마는 너무나 일찍 하늘로 가셨다. ‘아주 좋은 숙’은 그대로 냉동실을 지키고 있건만. 

 

엄마가 하늘로 가신 건 2001년(아빠는 그보다 6년 앞서 먼저 떠나셨다), 내가 혼인한 건 2003년. 그때 내 맘대로 집에서 혼수로 챙겨 온 게 있으니, 바로 친정집 냉동실에 있던 ‘아주 좋은 숙.’ 


저 작은 쪽지 하나에서도 엄마 냄새가 지나치게 많이 풍겨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미어졌다. 한번씩 냉동실 문 열어 쑥 봉지를 보면서 엄마한테 말을 건네곤 했다. ‘혼인식 잔치에는 쓰지 못했지만, 내가 이렇게 고이 간직하고 있으니 엄마가 애써 뜯고 데치고 얼려 놓은 보람은 있는 거예요. 그러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아요….’  


한데, 이걸 어쩌나! 혼수로 챙겼으면 끝까지 지켰어야 했는데. 남편이 자취 때 쓰던 냉장고, 신혼집에도 그대로 들였더니 툭 하면 고장 나는 바람에 녹았다, 얼었다 되풀이하다 쑥이 상했으니. ‘아주 좋은 숙’이라는 다섯 글자, 눈물 그렁그렁하게 쳐다보며 흐물흐물해진 엄마표 쑥을 끝내 버리고야 말았다. 


몽실몽실 쑥버무리 먹을 때면, 쑥에 얽힌 엄마 생각도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다 서울 살 때 벌어진 일이다. 쑥버무리 만들어 먹기는커녕, 집에서 밥 한술 뜨는 일 드물던 시절. 빨리 쑥버무리든 쑥 부침이든 쑥국이든 뭐라도 해 먹었으면 됐을 걸. 엄마표 ‘아주 좋은 숙’을 버리고야 만 것이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두고두고 못난 딸 같으니라고.   


쑥에 얽힌 엄마 생각에 젖어 쑥버무리 꾸역꾸역, 목이 멜 때면 막걸리 한 사발 벌컥벌컥. 


그렇게 저녁밥 대신 쑥버무리를 먹곤 곧바로 세 번째 쑥 노동이 이어진다. 큰 냄비에 쑥을 두 번에 나누어 데쳤다. 나중에 일본 사는 여동생도 먹고, 또 다른 누군가의 입으로도 들어가게 될, 새봄 여리고 여린 쑥으로 만든 ‘아주 좋은 쑥’ 열 덩이. 고이 싸서 냉동실에 담는다. 


새봄 여린 쑥으로 만든 ‘아주 좋은 쑥’ 열 덩이. 이젠 냉동실에 들어가 맛있게 먹어 줄 누군가를 기다리게 될 테지.


반나절 훌쩍 넘긴 지난한 쑥 노동을 마치고, 쑥버무리 할 때 끓여 둔 쑥국 놓고 또 막걸리 ‘딱’ 한잔 비운다. 은은한 쑥 내음이 된장과 어우러진 쑥국까지 마저 죽 들이켜니 쑥 노동으로 힘든 몸도, 엄마 생각에 시린 마음도 슬며시 잦아든다. 쑥 덕분인 건지, 막걸리 때문인지.  


밥 대신으로 먹어도 든든한 쑥버무리에 쑥국까지 다 들고 나니, 요 쑥으로 빈속 간신히 채워야 했던 어려운 시절도 생각나고. 저 많은 쑥 내 안에 다 들어갔으니 어딘가 조용히 아프고 있을 내 몸도, 마음속 어딘가도 쑥 하니 나을 것만 같다. 쑥이 또 상처 치료에 좋은 약풀 아니던가. 


은은하게 담백한 쑥국까지 먹은 뒤에야 비로소 지난한 쑥 노동이 끝났도라! 


‘해마다 같은 일 되풀이하더라도, 해마다 다르게 스미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마음이 옆으로든 위로든 조금이라도 커지고 넓어질 수 있다면….’


쑥 노동도 곧 닥칠 온갖 산골 노동도 즐겁게, 기꺼이 받아 안고 싶다는 마음이 그제야 오롯이 들어찬다. 곰도 사람 만든다는 쑥 덕분에 조금씩이나마 사람 꼴 갖추어 가는 걸까? 


낼모레 또 비 온다는데 쑥이 더 쑥쑥 자라기 전에 또 뜯으러 나가 봐야지. 더 늦으면 ‘아주 좋은 쑥’을 만나기 어려울 테니까!  


아주 좋은 쑥 만나러 또 나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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