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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Apr 10. 2018

원두커피, 인스턴트커피 대신
은은하게 쓴 민들레커피

자동 온도 조절 장치가 있는 똑똑한 민들레, 뿌리와 잎을 음식으로!

김매기 할 때 가장 큰 복병은? 바로 뿌리 깊은 풀!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뮐세’라고 했던가. 뿌리 깊은 잡초, 호미에 아니 뮐세로다. 


밭을 매면서 호미를 땅속으로 밀어 넣는데, ‘쿵!’ 하는 소리가 난다. 돌멩이랑 부딪힐 때 들리는 소리랑 분명 다른, 크고 묵직한 울림. 요거, 엄청난 뿌리겠구나. 쉽지 않겠다! 조심조심 살살 흙을 퍼내니, 슬슬 모습 드러내는 ‘쿵’ 소리 주인공. 바로, 민들레님 되시나이다. 


민들레 뿌리는, 굵고 깊게 박혀 있으나 밑으로 곧게 뻗어 있어 어느 한순간 쑥 올라온다.
뿌리가 중간에 끊긴 민들레. 땅속에 남은 뿌리에서 다시금 민들레가 자라고 꽃도 피어날 것이다.


뿌리가 중간에 끊기면 안 되니(그럼 끊긴 자리에서 다시 자라나이다) 더덕 캘 때처럼 조심조심 흙을 걷어낸다. 마침내 쑥 튀어나오는 굵직한 민들레 뿌리. 다른 것들이랑 뭔가 좀 다르다. 쇠비름부터 뿌리 깊은 오만 풀들. 길고 길게, 옆으로 옆으로 퍼져서 뿌리 맨 끝자락까지 끌어내기가 참 어렵고 성가시다. 뽑아도 또 어딘가로 이어져 있다. 징글징글할 만큼. 


그런데 민들레는, 굴고 깊게 박혀는 있으나 밑으로 곧게 뻗어 있어서 어느 한순간 쑥 올라온다. 땅 위로 모습 드러낸 민들레 뿌리를 보면서, 땅속 깊이 박힌 굵고 단단한 강직함에, 뽑혀야 할 땐 주저 없이 단번에 나와 주시는 단호함에, 좀 반해 버렸다.


비 그친 뒤엔 ‘민들레커피’ 만들고 마시고~

며칠 비가 내려 축축한 흙. 다른 밭일은 젖은 흙이 애써 가로막지만 민들레만큼은 이때가 딱 캐기 좋다. 왜냐! 빗물 덕에 땅이 조금 물렁해서 깊숙이 박힌 뿌리를 마른땅보다 조금은 쉽게 뽑을 수 있기 때문. 


우리 집은 텃밭보다 자갈 깔린 앞뜰에 민들레가 더 많다. 비 그치고 해님 내리쬐니 민들레꽃이 활짝 피어나 마당이 온통 노란 물결이다.


“오메, 이뻐라. 저 이쁜 것들을 어쩌면 좋아….”


저 이쁜 민들레 꽃들, 마당에 피어난 죄로 하나씩 뽑아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뜰이 풀밭으로 바뀔지니.


어쩌긴 뭘 어쩌나, 뽑아야지. 밭에 난 것도 뽑는데 하물며 마당이야 더 말해 무엇 하리. 마을 분들, 혹여 우리 마당 들어섰다간 엄청 혀 끌끌 찰 듯. 


저 많은 민들레 한 번에 다 캘 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 아직 작은 민들레는 잎으로 샐러드 무치고 고기쌈으로도 먹으면 되니 고이 둔다. 고운 꽃들 더 보고 싶기도 하고. 잎이 크고 바짝 시든 것들만 캐면 된다. 어차피 억세서 잎을 먹기 어렵고, 나이 든(?) 민들레가 뿌리도 굵고 실할 테니까. 이번에 캐는 민들레는 뿌리가 목적이기도 하고!


쉽게 뽑히지 않는 민들레 뿌리. 제대로 하자니 호미 말고 약초 호미가 나선다. 옆지기가 민들레 애써 캐내면 난 옆에서 뿌리를 자른다. 잎은 거름으로 보내기. 


민들레 뿌리를 캐는 한 남자의 정직한 투혼!
쉽게 뽑히지 않는, 민들레 뿌리의 굵고 강직한 투혼!


작고 가는 뿌리부터 삼 년 묵은 도라지처럼 굵고 길쭉한 자태까지 가지각색이다. 뿌리에서 나는 내음이 구수하게 비릿하다. 쌉쌀함이 바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나, 나는 이미 알고 있지. 이 뿌리가 얼마나 쓰디쓴지.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캐고 다듬은 민들레 뿌리를 물에 담그곤, 칫솔까지 쓰면서 박박 문지른다. 도라지 씻을 때처럼 꽤 잔손 가는 일이다. 깨끗이 씻은 민들레 뿌리는 바로 말리기 시작. 여러 날 잘 마르면, 그때 썰고 볶고 해서 민들레커피를 만든다. 


잔손 많이 가는 민들레 뿌리 다듬을 땐 트로트 노래와 함께~
민들레 뿌리 깨끗이 다듬고 씻어 말리기. 도라지 뿌리 말릴 때랑 비슷한 느낌!


비 갠 오후, 민들레 뿌리 캐는 일 마치고 민들레커피를 마신다. 우리한텐 미리 만들어 둔 재료가 있나니! 잘 마른 민들레 뿌리를 잘게 잘라 프라이팬에 오래오래 볶으면 꼭 둥굴레차 비슷하게 은근히 거무튀튀한 때깔이 나온다. 요걸 믹서에 ‘윙’ 갈고, 갈고. 울퉁불퉁 딱딱한 뿌리라 아주 곱게 갈아지지는 않지만 괜찮다. 물에 타지 않고 걸러 마실 테니깐.


원두커피 내리던 기구 고대로 써서 민들레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보글보글 거품이 일면서 민들레 가루가 꼭 물 젖은 모래처럼 보인다. 어느 바닷가 작은 모래사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뿌리 볶을 때 코를 간질이던 구수한 향내도 은은하게 퍼진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마시다가 내가 행복할 그 이름 '민들레 뿌리'여! 
잘 마른 민들레 뿌리를 프라이팬어 볶으면 구수한 때깔이 나온다. 요걸 믹서에 '윙' 갈면 요것이 바로 '민들레커피.'


자, 이제 맛을 볼까? 민들레 향에 원두커피랑 비슷한 내음이 슬그머니 겹치면서 코로 입으로 스민다. 은은한 그 향이 좋아서 한잔 마시는 것쯤 가뿐하니 좋다. 커피 먹고 싶은 임산부들한테 카페인 없는 민들레커피를 권한다더니 아마도 이 향과 맛 덕분인가 봐. 


그나저나 고민일세. 민들레커피 다른 사람들도 맛보게 하고픈데 뒷맛이 적당히 쓴 게 마음에 걸린다. 쓴 나물에 얼추 맛이 든 내 입에 쓰면, 다른 이들은 더 먹기 힘들지 모르는데. 요 쓴 뒷맛을 잡을 길이 없을까? 


설탕 조금 넣으니 단맛만 도드라지고, 뭔가 밍밍하다. 인스턴트커피를 넣어 볼까? 음, 낯익은 커피 맛이 보태졌을 뿐 쓴맛 잡기는 어렵네. 뭐 좋은 방법 없을까? 참! 아는 분이 민들레 뿌리랑 감초 조금만 같이 갈면 괜찮을 수도 있다고 슬쩍 이야기해 주셨지. 집에 없으니, 다음 장날엔 꼭 감초를 사고야 말겠음.  


민들레 뿌리가 가루로 변신! 여기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보글보글 거품이 일면서 민들레 가루가 꼭 물 젖은 모래처럼 보인다.


그나저나 또 고민일세! 마침 ‘딱’ 원두가 떨어져서 당분간 민들레커피로 원두커피 대신해 볼 욕심이 있었는데. 카페인 중독자라 그런지 카페인 없는 민들레커피 두 잔이나 먹고도 커피 생각이 떠나질 않네. 게다가 입도 좀 쓰고 하니 봉지 커피가 다 생각나.


에이, 모르겠다. 잘 꺼내지 않는 커피믹스 한 봉지 털어 넣고 따뜻하게 한 모금 들이켜니 어머, 이거 왜 이렇게 맛나니? 다른 땐 좀 느끼했는데, 민들레커피 후유증인가? 


그래도 민들레커피를 포기할 수 없음이야! 어차피 원두도 없고, 하루 석 잔은 먹는 커피 인스턴트로만 먹으면 좀 단조롭잖아. 살찌고 쓰레기 만드는 커피믹스는 되도록 멀리 해야 좋고.


어디 그뿐인가! 민들레 뿌리가 어찌나 몸에 좋다고들 하는지. 간에 위에 호흡기에 고혈압에 당뇨에, 거기다 흰머리 검게 만들어 주기까지 한다는데. 나 요즘 흰머리가 자꾸 보여서 살짝 우울해지던 참이었거든. 그러니 곧 잡초 신세로 뿌리 뽑힐 민들레 뿌리를 어떡하든 먹어 주어야만 하겠어!


산골 천연 '민들레커피' 한잔 또 한잔. 인스턴트커피 살짝 넣으면 또 다른 맛이 난다.
원두커피와 민들레커피의 엄격한 때깔 차이!


하루 또 하루, 벌써 여러 날째 점심 먹고 늘 마시던 원두커피 대신 민들레커피를 마신다. 한 번, 두 번…. 마실 때마다 조금씩 입에 스미는 맛이 다르다. 처음보다 덜 쓰고, 민들레 향도 더 아늑하게 다가온다. 맛있다. 입안도 개운하고. 


최초로 이 나라에 서양 커피가 들어왔을 때, 진한 검정 물이 사람들한테 엄청 썼을 테지. 낯선 먹을거리라서 더 그랬을 거야. 민들레커피도 마찬가지일지 몰라. 낯설고 길들지 않아서 조금 쓰게 다가오지만 날마다 가까이하면 그 맛에 푹 젖어들 수도 있을 거 같아. 쓴 나물 하나도 모르던 내가 어느덧 지칭개, 씀바귀 같은 대표 쓴 나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그래,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민들레커피를 계속 만나도록 하겠어. 혹시 알아? 써도 참고 먹고 마시고 하다 보면, 원두커피도 인스턴트커피도 더는 찾지 않게 될지도. 


맛도 빛깔도 싱그러운 민들레 샐러드

뿌리 캐다 눈에 들어온 야들야들 하늘거리는 민들레잎.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여린 잎으로 한 줌 뜯는다. 민들레 샐러드를 먹고 싶어서. 


소스는 무척 간단히. 집간장 기본에 물, 식초, 매실 진액, 다진 마늘, 통깨 요렇게 조금씩 섞어 잎 위에 훌훌 뿌리면 끝이다. 민들레잎 날로 먹으면 향기도 맛도 쌉싸래하면서 슬쩍 달큼한데, 그 맛을 간간하고 옅은 소스가 살짝 북돋는다. 저녁 반찬으로 먹은 매운 코다리찜이랑도, 그에 곁들인 쓴 소주랑도 싱그럽게 잘 어울린다.  


맛도 때깔도 싱그러운 민들레 샐러드. 매운 코다리찜이랑도, 그에 곁들인 쓴 소주랑도 아주 잘 어울린다.


맛도 싱그럽기 그지없지만 싱싱한 이파리 눈으로 보는 맛도 참 좋다. 길쭉 삐쭉 초록빛 싱그러움이 눈을 징검다리 삼아 마음에 와서 폭 안긴다. 민들레처럼 생생하게 열심히 살아 보자는 다짐이 절로 일어나는구나. 


자동 온도 조절 장치가 있는, 똑똑한 민들레

아침에 활짝 폈던 민들레꽃이 오후께 한꺼번에 싹 사라져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반나절 만에 꽃이 깡그리 다 질 수가 있지?’ 처음엔 바보처럼 이렇게 생각했다가 다음 날, 여봐란 듯 다시 나타난 꽃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햇볕이 사그라지는 추운 밤이 다가오면 꽃봉오리를 다물었다가, 해님이 따스히 비추는 한낮에 다시금 연다는 사실. 


민들레 가까이 보며 산 지 여러 해 됐건만 ‘자동 온도 조절 장치’가 있는, 참 똑똑한 민들레라는 걸 이제야 알아채다니. 민들레 앞에 물끄러미 서 있자니, 바보스런 내가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지, 뭐! 


해가 활짝 떠오른 한낮이 돼야 민들레꽃도 활짝 피어난다.
오므렸다 펴고, 폈다가는 다시 오므리고. 민들레의 투혼 앞에 절로 숙연해진다.


날마다 꽃봉오리 오므렸다 펴고 폈다가는 다시 오므리는 것, 투혼이라고 보아도 좋을까? 수천, 수백이 될 민들레 꽃씨를 만들고 지켜 내는,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준비하는 '민들레의 투혼!’ 민들레꽃 앞에서 절로 숙연해진다. 그 투혼을 지켜 주지 못하고 뿌리째 뽑아 내는 이 손이 정말 부끄럽고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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