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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Apr 08. 2018

작은 산골짜기 ‘혜원’이가
리틀 포레스트 ‘혜원’에게

모든 것은 타이밍!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저 가 보는 거다

그동안 혜원이 네가 나오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만나기를 미루고 또 미뤘어. 원작 만화 <리틀 포레스트>를 잘 알기에 딱히 궁금하지 않아서? 아니야.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재밌게 봐서 혹 실망이라도 할까 봐? 그 또한 아니고. 다름 아니라 도시 생활 접고 작은 산골짜기에 깃든 내 삶, 그리고 네 이름과 똑같은 내 이름 ‘혜원’ 때문이었어.


만화책과 일본 영화로 먼저 만난 ‘리틀 포레스트’ 

만화 <리틀 포레스트>를 처음 만난 건 한창 직장생활에 쫓기던 삼십 대였지. 농촌 삶을 ‘꿈’은 꾸었지만 실제로이루어지는 건 ‘꿈나라’ 이야기로만 여기던 그때, 직장 동무가 권한 이 책을 봤어. 그것도 빌려서. 많이 재밌더라.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느라 ‘마음 쉼’이 필요했는데 이 만화책은 편안하게 시간 때우기로 제 몫을 다했지. 


삼십 대에 본 만화 <리틀 포레스트>,  영화 <리틀 포레스트> 덕에 사십 대에 다시 만났어. 2권 표지 그림이 무 밭에서 찍은 내 모습이랑 살짝 비슷해서 슬쩍 놀랐지 뭐야.

그 뒤로 몇 년이 흐르고, 삶이란 참 앞을 알 수 없나 봐. 삼십 대 후반, 꿈나라 이야기만 같던 귀촌이 벼락처럼 내 앞에 닥쳐왔어. 물론 우리 부부가 마음 모아 선택한 길이야. 정 힘들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그뿐이라고 쉽게 생각했지. 어차피 둘 다 백수, 서울서 노느니 시골 가서 뭐라도 하자는 마음도 있었고. (아마 아이가 없어서 더 빠르게 마음을 굳힐 수 있었을 거야.)  


귀촌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순식간이었어. 회사 그만두고 5개월도 채 안 돼서, 정말로 깊은 산골 외딴집에 이삿짐을 풀었으니까. 둘레 사람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대박 사건’이자, 시어머니 눈물 콧물 진하게 빼놓은 ‘불효 사태’이기도 했지.(친정 부모님은 애저녁에 하늘로 떠나셔서 그나마 엄마, 아빠 눈물 쏙 빼는 가슴 아픈 순간은 면했어.)  


회사 그만두고 5개월도 안 돼서, 깊은 산골 외딴집에 이삿짐을 풀었어.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빈집에 전세로 들어갔지.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되나’ 싶을 만큼 느긋하게 지내던, 어느 비 오는 여름날. 하시모토 아이가 나오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만났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갖 영화나 드라마들 심심찮게 보던 때였지. 특히 일본에서 건너온 이야기들에 좀 많이 빠져 있기도 했고. 


집에 딸린 작은 텃밭을 일구던 우리 부부. 농사를 제대로 짓는 것도 아니고, 다른 귀촌인처럼 읍내 직장을 다니지도 않기에 농한기가 되면 딱히 할 일이 없었어. 밭도 산도 봄, 가을이 바쁘지 여름에는 몸 놀릴 일이 드물거든. 물론 농사로 먹고사는 분들은 여름도 바쁘긴 매한가지야. 고추에 참외, 수박 같은 여름 농사로 땀 뻘뻘 흘리는 모습 보면서, 저리 힘들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여러 번 했으니까.     


산골에서 본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덕에 적잖이 지루하기도 했던 산골살림을 조금은 흥미롭게 꾸려 갈 수 있었어.
영화에 나온 밤 조림 해 먹겠다고 밤이면 밤마다 밤을 까면서 보냈지. 그 덕에 손이 갈라지고 부르트고 난리도 아니었어.


영화 참 좋더라. 나랑 처지는 다르지만 삶터가 얼추 비슷하다 보니 눈과 마음에 아주 쏙쏙 안기데. 특히나 먹을거리 이야기!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이는 바람에 토마토 병조림도 밤 조림도 주인공이 하는 대로 만들어 보기도 했어. 그럴 때면 꼭 영화처럼 사는 여자 같아서 흐뭇하고 재미났지. 손발이 느리고 게으르기까지 해선 케이크나 떡처럼 잔손 많이 가는 먹을거리는 당최 따라 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있어서 외롭고 고단하고, 적잖이 지루하기도 했던 산골살림을 조금은 흥미롭게 꾸려 갈 수 있었어. 


리플 포레스트 ‘혜원’, 나랑 이름만 같은 게 아니었네!

내 삶에 작은 이정표 같았던 <리틀 포레스트>가 우리 영화로도 나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임순례 감독님! 어찌나 반갑고 기쁜지 이모저모 영화 이야기를 찾아봤지. 세상에, 주인공 이름이 무려 ‘혜원’이래. 게다가 정말 맘에 드는 배우 김태리가 그 역을 맡는다니! 민망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맑고 고운 태리 씨가 ‘혜원’으로 나온다니, 민망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 보기 전부터 쏟아지는 영화평에 푹 빠졌어.


그 뒤로 마치 영화 관계자라도 되는 듯, 쏟아지는 이야기들을 틈만 나면 찾아봤어. 긴 감상문부터 포털에 올라오는 평점들, 그에 딸린 짧은 평가 글까지도. 사람들이 영화에서 무얼 어떻게, 얼마나 보고 느꼈는지가 너무 궁금했거든.  


‘진정한 힐링 영화,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스스로 위로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보면서는 고개를 끄덕끄덕.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어디 좋은 평가만 있겠니. ‘본격 퇴사 영화, 귀농 권장 영화, 삼시세끼 극장판’ 같은 글은 희미하게 웃어넘길 수 있었지. 하지만 일본 영화에 견줘 아쉽다거나, 현실감 없이 농촌 판타지를 그려냈다는 평을 만날 때면 괜스레 맘이 아렸어. 꼭 내 삶도 같이 심판대에 오른 듯한 느낌이 들 만큼. 너무 지나친 감정이입인 줄 알면서도. 


사람도 차도 없는 고요하고 예쁜 마을 길. 이 길 따라 한 번씩 자전거 타고 면에 나가곤 해.
자전거 타는 풍경이 내 모습이랑 겹치면서, 시작부터 은근히 혜원이 너랑 가까워진 기분에 빠져들었어.


아끼고 아껴 둔 보물을 꺼내 보듯, 두근두근 팔딱팔딱 뛰는 가슴 안고 드디어 영화와 만났어. 김태리가 ‘혜원’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니 뭔가 근질근질 쑥스러워. 태리 씨한테, 태리 씨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래도 있지, 흔한 내 이름이 맑고 고운 얼굴과 겹치니 어쩔 수 없이 좋긴 좋더라.  


“미성리는 쌀과 사과가 유명한 작은 마을이다.” 


첫 장면부터 살짝 놀랐지 뭐야. 자전거 탈 때 네가 속말하는 거 듣고선. 내가 사는 곳(장수군)도 사과가 꽤 알려진 곳이거든. 자전거 타는 모습만 해도 그래. 나도 어쩌다 한 번씩 자전거로 면에 가는데, 그 길이랑 조금 비슷한 느낌이었어. 사람도 차도 없는 고요하고 예쁜 길이거든. 시작부터 혜원이 너랑 막 가까워진 기분이 드네. 


고모 집에서 허겁지겁 밥 먹는 네 얼굴을 보고는 불쑥 눈물이 났어. 까닭을 알 수 없게 막 짠한 거야. 꾸역꾸역 반찬을 밀어 넣는 네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 싶기만 했지. 그 뒤로도 맛깔스러운 먹을거리 앞에 둔 네 모습을 볼 때면 뭔지 모르게 아릿했어. 네 눈이 슬퍼 보일 때가 많았거든. 건강한 산골 먹을거리에 둘러싸여 있어 그런가, 너와는 달리 나는 배고프지 않았나 봐. 때깔 기똥찬 맛난 먹을거리 눈앞에 두고도 침이 고이기보다는 자꾸 눈물이 고이려고 했으니까.


맛깔스런 먹을거리 앞에 둔 네 모습 볼 때면 뭔지 모르게 마음이 아릿했어.


그러다 오구라는 강아지 동무가 생겼을 때는 내가 다 반가웠어. 너, 처음엔 강아지 보자마자 손사래를 치대? 어쩜, 나도 그랬는데. 산골 들어서고 한 달도 채 안 됐을 때, 아는 분이 덜컥 한 달 남짓 된 강아지를 안겨줬거든. 그때 키울까 말까 정말 고민 많았어.   


우리 강아지 동무는 ‘천천면’에서 태어났다고 이름도 ‘천천이’야. 다섯 번째 태어났다고 ‘오구’인 네 동무랑 생김새까지 많이 닮아서 좀 놀랐다니까. 처음엔 어쩔 줄 몰라했지만 시나브로 천천이는 내 삶에 들어왔어. 외딴집이어서 더 그랬을 테지. 천천이 짖는 소리라도 들려야 덜 외로웠거든.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무서운(?) 동물들도 천천이가 있어 든든했고.  


전에 살던 집 겨울 풍경이야.(전셋집이라 지금은 다른 삶터로 옮겼어.) 저 앞에 천천이 보여? 천천면에서 태어났다고 이름도 ‘천천이’인데, 오구랑 많이 닮았어.


나도 참 웃기지. 선무당 사람 잡는다더니, 네가 눈 쓰는 거며 도끼질하는 자태를 보곤 대뜸 잔소리부터 튀어나오네? 


“고렇게 딱 한 사람 걸을 만큼만 길을 내면 어떡해. 마당 가득 눈인데 마저 쓸어야지!” 


“에게, 도끼질은 굵직한 나무로 해야 제맛이지 그렇게 작아서 어디에 쓰니? 자세도 너무 뒤로 빠졌어.” 


미안, 도끼질하는 모습 보고 좀 웃었어. 나무가 너무 작아서. 난로에 쓰려고 작은 나무를 쪼개는 걸 테지?
내 도끼질 한번 구경해 볼래? 이만큼이라도 하기까지 엄청 시간이 걸렸어.
내 집 앞은 물론이고, 마을 길까지 쓸어야 차도 사람도 오갈 수 있어. 눈 쓸고 나면 막걸리부터 생각날 만큼 엄청 힘들어. 


고라니, 멧돼지 울음소리에 잠 못 이루는 너를 보면서 어설픈 위로도 건넸어. 


“그 마음 내가 잘 알지. 나도 처음엔 고라니 울음소리가 진짜 괴상했어. 사람 비명 소리 같아서 벌벌 떨기도 했고. 어떤 밤에는 멧돼지가 뛰쳐나올까 봐 마당 나가는 것도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잘 나가다가 고사리 말리는 데서 다시 또 이어지는 잔소리. 


“고거 쪼끔 말려 누구 입에 붙이니? 다른 사람이랑 나눠 먹으려면 그거 갖곤 턱도 없을 걸?”  


아, 이 산골 아줌마 근성을 어쩌면 좋냐고!


봄이면 꼭 고사리를 꺾어. 녹두빛 고사리가 진한 밤색으로 바뀌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해.   


그러고 보니 맞장구도 은근히 자주 쳤네. 


“토마토 농사 복불복이라는 네 말, 딱 맞아! 나도 지난해 토마토 농사가 ‘불복’이었어. 어찌나 속상했는지. 그나저나 넌 토마토 버팀대 하난 잘 세웠더라. 잡초도 거의 안 보이고. 그것만 해도 대단해. 암 그렇고말고.” 


“아무리 고향이어도 젊은 네가 마을 어르신들 앞에 서면 힘들 거야. 그렇지? 그러니 타지에서 생판 모르는 데로 온 나는 어떻겠니? 마을회관 앞 지나칠 때마다 조마조마하다니까. 조심조심해야 할 일이 왜 그리 많은지, 마을 엄니들이 시엄니보다 훨씬 어렵기만 해.” 


너한테 크게 한수 배우기도 했어. 바로 이 말. 


“밤 조림이 이렇게 맛있다는 건 가을이 깊어간다는 뜻.” 

“곶감이 벌써 맛있어졌다는 건 겨울이 깊어졌다는 뜻이다.” 


아아, 마음 깊이 울리던 네 맑은 목소리. 위대한 자연의 이치를 이토록 간명하게 풀어낼 수 있는 혜원, 너 정말 멋졌어! 아참, 애벌레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던 그 손도 귀하고 아름다웠어. 아직까지 배추 애벌레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는 나를 많이 돌아보는 시간이었지.   


“곶감이 벌써 맛있어졌다는 건 겨울이 깊어졌다는 뜻이다.” 위대한 자연의 이치를 이토록 간명하게 풀어내는 혜원, 너 정말 멋졌어!
지난 가을, 네 엄마가 그랬듯이 곶감을 실에 매달았어. 눈 내리는 겨울이 오니 정말 곶감이 맛있어지더라.


모든 것은 타이밍이야, 지금이 바로 그때!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제하가 불쑥 던진 말에 너처럼 나도 움찔했어. 이건 진짜, 진짜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거든.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내 일기장이 대신 말해줄 거야. 산골살이 시작한 첫날부터 졸린 눈 비비며 써 내려간 낡은 공책이 여러 권 있거든. 즐거운 일도 힘든 일도 일기장에 차곡차곡 적으면서 외로움을 달래곤 했어. 


“시골 내려오니 평생 안 할 것 같은 일들을 하나둘 끊임없이 하게 된다. 뭐 한 거 없는 듯한데, 또 한 게 많은 날이기도 하다. 하루가 그렇게 갔다. (…) 갑자기 ‘집안일’이라는 게 서글퍼진다. 이리도 끝이 없는 일들을 늘 해 오신 우리네 어머니들 삶이 애틋하여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꼬. 그리도 지겨운 어머니들 삶을, 왜 나는 이제 와 되풀이하고 있을꼬. 아직은 그리 싫지 않으니, 아니 이렇게 하나하나 먹을거리 장만하는 시간이 재밌을 때가 많으니, 그저 가 보는 것이다. 나도 모른다. 금세 지칠지, 이 재미가 죽 지속될지.”


낡은 공책에 담긴 산골 일기, 언제 봐도 새롭게 다가와. '개똥벌레' 노래랑도 은근히 잘 어울리지 않니? 


“아, 생각하는 건 싫어. 여기에 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돼 버린 걸까? 무언가 구상하고, 추진하고, 실천하는 일. 생각만으로도 귀찮고 그러네. 나, 너무 단순해진 건 아닌지. 어느 정도 생각은 하고 살아야 하는데. 하나 어쩌지? 아무 생각 없이 좀 더 지내고 싶은데, 하루하루가 충분히 바쁘고 보람된데. 그런 고민 없어도, 안 해도….”


그동안 나도 참 단순 무식하게 지냈어. 봄이면 밭 갈아 씨 뿌리고, 취나물 고사리 같은 산나물 뜯어서 말리고. 여름이면 부추, 고구마줄거리 다듬어 김치며 반찬거리 만들고. 가을이면 얼마 안 되는 들깨, 호박, 배추, 무 갈무리하고, 밤도 줍고 까고 말리고. 겨울에는 메주 띄워 된장 만들고 김장 백 포기 넘게 간신히 치르고. 그저 닥치는 대로 몸을 부렸어. 쉴 새 없이 손발 놀리느라 무릎도 아프고 손에 물집도 생기고 나름 고생도 많았지. 


“제하 말이 맞다. 가장 중요한 일을 외면하고 그때그때 열심히 사는 척, 고민을 얼버무리고 있는 거.” 


새삼스레 일기장을 들춰 보니 알 것도 같아. 네가 조용히 읊조리던 목소리가 그렇게나 마음 깊이 울리던 까닭을…. 


청국장 만들고, 밭 매고,  수확하고, 나물하고…. 시골 내려오니 평생 안 할 것 같은 일들을 하나둘 끊임없이 하게 됐어.


그래도 무작정 뛰어든 산골살이가 헛되지만은 않았나 봐. ‘농사에는 사기나 잔머리가 없다’던 제하 말도, ‘입 놀릴 시간에 손 놀리면 언젠간 끝이 나게 돼 있다’던 고모 말씀도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돼. 그 정도는 익히 몸에 밴 이야기거든. ‘소 뒷걸음치다 쥐 잡기’란 속담이 있는데, 내가 딱 그 짝이 난 거 같아. 


널 두고 떠난 엄마 이야기도 잠깐 나누고 싶어. 마루에 철퍼덕 앉아 ‘구름 과자’ 피우던 모습 있지. 그걸 보곤 감독님의 세심함에 무지 감탄했지 뭐야. 여자와 구름 과자. 도시라고 굳이 편하진 않지만 시골은 정말 ‘아니올시다’야. 알다시피 엄청 보수적이니까. 그걸 절실히 알고 있기에 공기 좋은 마당 놔두고 굳이 집 안에서 연기 피워 올리던 모습이 어찌나 애틋하게 와닿던지….  


널 두고 떠난 엄마의 마음, 조금은 알 것 같아.

“실패할 수도 있고 또 너무 늦은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지만, 엄마는 이제 이 대문을 걸어 나가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갈 거야. 모든 것은 타이밍이라고 엄마가 늘 말했지. 지금이 바로 그때인 거 같아.”


네 엄마 편지에서 마음에 팍 꽂힌 세 글자,  ‘타이밍….’ 



2013년 10월 1일, 내가 서울이라는 대문을 걸어 나가 제 발로 산골에 들어선 날이야.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 엄청났지. 그런데도 앞뒤 가리지 않고 불쑥 서울을 뜬 그날이, 어쩌면 내 삶에서 가장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을지도 몰라. 


그때가 아니었으면 아마 지금도 네모난 빌딩 가득한 뿌연 도시에서 숨 막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기’보다는 간신히 ‘살아 내고’ 있을 게 빤해. 작디작은 씨앗들이 흙, 물, 바람, 해의 기운을 받아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잎을 내고, 열매를 맺고, 끝내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고귀한 자연의 이치를, 그 벅찬 생명의 시간을 하나도 만나지 못한 채. 


씨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서 열매가 맺히기까지, 그 벅찬 생명의 순간들을 날마다 바라볼 수 있다니! 내 삶에 정말 커다란 축복이라고 생각해.


너 엄마한테 투덜댔지? 맨날 밥하고 풀 뽑고, 그렇게 살기 싫다고. 나도 그럴 때 많았어. 다만 스스로 선택한 삶이기에 혼자 가슴 치며 칭얼거리는 수밖에 없었지만. 일 년, 이 년, 삼 년…. 산골짜기와 작은 텃밭 벗 삼아 놀며 일하며 지낸 지 어느덧 5년째야. 힘들 때도 많았고 앞으로도 벅찬 일 많을 테지만 오길 참 잘한 거 같아. 겨울이 와야 정말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다는 걸, 나도 이곳의 토양과 공기를 먹고 자라는 작물이란 걸 이제 조금은 알 수 있겠거든.  


해마다 가을이면 양파 아주 심기를 했어. 화학비료 안 주지, 농약 안 치지, 비닐 안 덮지, 게다가 잡초도 마음껏 자라도록 그냥 두니까 거두는 게 무지 적어. 지금도 텃밭에 양파가 크고 있는데 겨우내 많이 힘겨웠는지 비실비실 힘들어해. 싹이 죽은 것도 많고. 아마도 올 양파는 아주 심기 한 모종에서 반에 반도 못 거둘지도 모르겠어.


농작물 제 몸처럼 돌보는 농부님들께는 참 부끄럽지만, 사실 난 괜찮아. 얼마 안 되는 양파지만 제 힘껏 자라는 모습 볼 때도, 쑥쑥 뽑아 올릴 때도 정말 많이 행복하거든. 시장에서 파는 양파보다 작디작은 모습은 귀여움이 하늘을 찌르고, 어찌나 알싸하고 달큰한지 세상 양파 백 트럭을 준다 해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소중한 양파들이거든. 


가을이면 양파 아주 심기를 하는데, 게으른 농부 덕에 비실비실할 때가 많아. 지금 텃밭에서 힘겹게 자라고 있는 양파들처럼.
작디작은 양파들이 어찌나 알싸하고 달큰한지 세상 양파 백 트럭을 준다 해도 바꾸고 싶지 않아. 내겐 세상에서 가장 귀한 양파들이니까.


‘아주 심기’,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말. 제하가 도시로 떠난 너를 두고 그랬지. 혜원이는 아주 심기를 준비하고 있는 거라고, 왠지 금방 다시 돌아올 것 같다고. 그 말처럼 네가 환한 얼굴로 다시 나타났을 때 정말 많이 기뻤어. 마치 그리던 동무가 내 곁에 찾아온 것처럼. 이제 본격으로 아주 심기에 들어선 네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 너만의 작은 숲을 찾게 된 것도.     


만화 마지막 장면이야. 이치코가 다시 돌아와 스스로 농촌살이 헤쳐 나가려 애쓰는 모습에 뒤늦게 마음이 찡해.

영화 마치고 따뜻한 눈물과 웃음이 번갈아 내 마음을 타고 내렸어. '마음에 위로가 필요할 때 두고두고 꺼내 보고 싶은 영화'라는 말, 딱 맞지 뭐야. 애틋하게도 아련하게도 꽉 찬 듯한 이 마음 어찌할 줄을 몰라서 오래전에 본 만화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열었어. 


본 지 한참 지나서 잊고 있었는데, 이치코가 고향에 돌아와 결혼까지 했다는 내용이 나오네? 농촌살이 스스로 헤쳐 나가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이고. 이 만화 볼 때만 해도 마지막 장면이 그다지 다가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마음에 들다 못해 눈물마저 찔끔 나려고 해. 


그리고 또, 이치코 엄마가 남긴 편지….  


“무언가 실패를 하고 지금까지의 자신을 되돌아볼 때마다 난 항상 같은 일로 실패를 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곳을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어서 침울해지고….

 (…)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일지도 몰라. 같은 곳에서 뱅글뱅글 돌면서 그래도 뭔가 있을 때마다 위로도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물론 옆으로도…. 내가 그리는 원도 차츰 크게 부풀고 그렇게 조금씩 ‘나선’은 커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더 힘을 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한 글자 한 글자 꼭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만 같아서, 모자란 나를 듬뿍 보듬어주는 기분에 젖는 바람에 포근한 눈물이 또 솟으려 해. 마음 가다듬으면서 다시금 일기장을 열었어.   


지지난해도, 지난해도 찔레꽃을 땄어. 그리고 올해도 역시나 따게 될 거야. 찔레나무 둘레 뱅글뱅글 돌다 보면, 내가 그리는 삶도 조금씩 부풀고 커질 수 있겠지?


“시골살이, 귀촌살이에서 느끼는 점들, 아쉬운 점들, 부부라서 더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안타깝고, 아쉽고, 속상한 일들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잘살고 있노라고 서로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지. 여보, 우리 잘 살고 있어. 서로 마주 보며 이렇게 자주 웃잖아… 그거로도 충분해, 지금은….”


어느 날엔가 옆지기랑 막걸리 잔 기울이면서 나눈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네. 못생긴 글씨로 한 자 한 자 새기듯이 써 내려간 일기를 들여다보니 참 흐뭇해. 슬며시 내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철마다 조금씩 다르게 만나는 산골밥상을 소중한 이들과 함께 나눌 때가 많아. 그럴 때면 내 안에 다가온 작은 행복들을 조금이나마 나누는 기분에 또 다시 행복해져.


뿌듯한 마음 안고 마당으로 나가니 흐린 하늘이 어느새 환해졌어. 맑은 공기, 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아, 좋아, 다 좋아. 해마다 달마다 똑같이 굴러가는 산골살이가, 밭일도 산골짜기 일도 잔뜩 기다리는 이 봄이 조금 지겨울 뻔했는데. 네 덕분에, 영화 덕분에 마음이 한결 밝아졌어. 얼른 밭으로 산으로 나가고 싶게끔 힘도 잔뜩 생기고.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나도 이젠,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았다고 말해도 될 것 같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 살아갈 곳, 바로 ‘산골짜기 혜원’이가 깃든 이 삶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 살아갈 곳, 내가 깃든 바로 이 삶터가 나만의 작은 숲이란 걸 이젠 알 것 같아!


서두름이나 지름길이 없는 자연. 그 속에서 ‘리틀 포레스트 혜원’도 ‘산골짜기 혜원’도 겨울을 견뎌낸 양파처럼 야무지게 달고, 딴딴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 조금 더 욕심내서 우리가 누린 작은 행복들, 아낌없이 나눌 수 있으면 더 좋겠고. 어디선가 아주 심기를 준비하고 있을, 또 다른 ‘혜원’이들을 위해! 


혜원, 새로운 봄 맞이할 준비 됐니? 그럼, 우리 같이 시작해 볼까? 


리틀 포레스트 혜원, 작은 산골짜기 혜원, 그리고 또 다른 혜원들까지, 우리 같이 새롭게 시작해 볼까?


덧붙이는 말. 

처음부터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지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말을 낮춰 쓰게 된 걸 너그럽게 헤아려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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