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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Apr 05. 2018

보는 나무 아니고요,
다 먹는 나무예요!

나무를 심은 사람, 희망을 심는 사람

올봄, 텃밭 귀퉁이마다 어린 나무모를 심었어요. ‘두릅나무, 아로니아나무, 자두나무, 포도나무’예요. 나무모 심을 때는 채소 씨앗을 뿌릴 때랑 느낌이 좀 달랐어요.


올봄, 텃밭 귀퉁이마다 어린 나무(나무모)를 심었습니다. ‘두릅, 아로니아, 자두, 포도나무.(왼쪽 맨 위부터 시계 방향).’


씨앗은 대체로 한 해를 살아가죠. 더러 여러 해까지 살아남기도 하지만요. 나무는 오 년, 십 년, 백 년, 더 나아가 천 년을 살아내는 나무도 있다고 하죠. 


그래서인지 채소 씨앗 뿌릴 때 마냥 설레는 마음과는 좀 다르게 뿌리가 한껏 드러난 나무모를 심을 땐 뭔가 묵직한 책임감이 먼저 다가오는 것 같아요. 과연 이 나무가 새로운 땅에 뿌리를 제대로 내릴 수 있을까, 걱정도 되면서요.


가장 먼저 심은 작은 두릅나무에 봉긋 솟은 어린 새순!
아로니아나무에도(왼쪽) 자두나무에도(오른쪽) 연둣빛 새 이파리가 보입니다.


아아, 그렇게 심은 앙상한 나뭇가지에 연둣빛 새 이파리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어요. 새 삶터에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신기하고 고맙게도 새싹을 틔우고야 말았습니다! 감격 또 감격에 휩싸이네요. 


오십 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두릅나무에 봉긋이 솟아난 새순.

얇고 길쭉한 아로니아나무에 나비 날갯짓처럼 살랑거리는 새순.

가느다란 지팡이처럼 아슬아슬 선 자두나무에 작은 잎사귀 뾰족이 내민 새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무에서 피어난 새순들, 어쩌면 이리도 어여쁜지요. 대단한지요.


다만, 큰 맘먹고 들인 큰 포도나무는 아직 연둣빛 소식이 없습니다. 하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릴 거예요. 나무도 뿌리도 다른 것보다 컸던 만큼, 새 터에 제힘으로 뿌리내리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거라 믿으니까요.


산골살이 시작하기 전,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 지음, 김경온 옮김, 두레, 1995)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온갖 생태 책을 닥치고 읽어대던 때였죠. 뭔지 모를 의무감으로 후루룩 읽어내곤 책을 덮으며 혼자 중얼거렸어요. ‘아니, 별 내용도 없구만. 왜들 이 책 갖고 좋다 최고다 난리래?’ 책을 내려놓은 뒤로 기억에 남는 건 오로지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제목뿐이었습니다.

큰 포도나무는 아직 연둣빛 소식이 없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릴 거예요.


올봄, 정성껏 나무를 심는 친구와 옆지기를 보면서(손 느리고 엉성한 저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어요.)  왜 그런지 이 제목이 자꾸만 어른거렸습니다. 다시 펼쳐 봅니다. 참 오랜만에. 책 뒤쪽에 나오는 해설 글이 새삼스럽게 와닿습니다. 

“부피에는 <나무를 심는 사람>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희망의 나무’를 심어주었다. (…) 
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계를 바꾸어 놓는 것은 
권력이나 부나 인기를 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침묵 속에서 서두르지 않고 속도를 숭배하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며 일하는 아름다운 혼을 가진 사람들이며, 
굽힘 없이 선하게 살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다.” _74, 75쪽


오랫동안 헐벗은 땅에 나무를 심은 사람, 책 속 주인공 ‘부피에.’ 

작은 텃밭에 나무를 심은 사람,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옆지기와 친구.’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 일구겠다는 벅찬 희망을 심고자, 퍼뜨리고자 애써온 선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서로 많이 닮은 듯해요. 꼭 부피에처럼, 사는 내내 남을 위해 힘써 온 옆지기와 친구 생각에 마음이 아릿해지네요. 그네들이 뿌린 좋은 세상을 위한 희망의 씨앗이 여기저기 잘 자라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게 밀려오고요. 


포도나무, 자두나무, 두릅나무, 아로니아나무(왼쪽 맨 위부터 시계 방향)가 제힘으로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마음, 고마운 봄비님께 실어 나무에게 보내 봅니다


나무 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봄비가 내립니다. 나무가 잘 자라는 데 하늘이 주는 비만큼, 해만큼 소중한 게 또 있을까요? 포도나무, 자두나무, 두릅나무, 아로니아나무가 제힘으로 뿌리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고맙고 반가운 봄비님께 실어 나무에게 보내 봅니다.


내친김에 또 다른 책도 열었어요. 역시나, 나무를 생각할 때만 어쩌다 펼치는 책, <나무에게 배운다>(니시오카 쓰네카즈 구술, 최성현 옮김, 상추쌈, 2013). 여기에 담긴 깊은 뜻을 오롯이 헤아리지는 못하겠음에도 이 글귀만큼은 마음에 슬그머니 박히더니, 부끄러운 마음마저 와락 밀려듭니다. 


“나무를 기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제 형편만 생각하는 사람은 안 됩니다. 나라의 미래나 이 땅의 생명을 지킨다는 사명감이 있을 때, 비로소 나무를 길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길러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세대를 짊어질 사람을 키우겠다는 사명감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것도 입에 발린 말만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런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_115쪽


텃밭에 나무를 심을 때 제가 삼은 기준은 단 하나였어요.


보는 건 필요 없다. 무조건 먹는 나무로!


이 땅의 생명을 지킨다는 사명감 같은 건 정말 하나도 없었어요. 나무가 내준 열매들은 무조건 나눈다는 마음가짐 정도는 가졌지만요. 그래 봤자, 제 형편만 생각한 데서 딱히 비껴 날 수 없으니, 저는 나무 심을 자격이 딱히 없는 사람인 셈이죠. 그러니 참 다행이지 뭐예요. 텃밭에 나무 심을 때 전 구경만 하고 나머지 궂은일은 심을 자격 차고 넘치는 친구와 옆지기가 정성껏 해냈으니까요.  


봄 장날에는 나무모들을 잔뜩 만날 수 있어요. 거의 먹는 나무들이 많답니다.


그래도요, 나무를 심는 사람은 못 되었지만요, 나무 돌보는 사람이라도 되고 싶어요. 메마른 가지를 비집고 환하게 반짝이는 초록 새순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 담아 다짐을 했어요. 앞으로 너희들을 열심히 보살피겠노라고. 한 자리에서 천 년의 생을 살아내는 고귀한 나무의 생명력을, 마음 다해 배우겠노라고. 


참! 그러고 보니 텃밭 곳곳에 다른 나무들도 많이 보이네요. 2년 전 앳된 묘목들을 밭 곳곳에 심으면서 과연 자라기는 할까, 참 궁금했지요. 가느다란 나뭇가지만 봐선 뭐가 뭔지 모르니까 아무래도 텃밭 작물보단 관심이 덜 가더군요. 무성한 잡초들 덕분에 나무까지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고요. 새순이 날 때도, 질 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으며 나무에게 제대로 무심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나무에 돋아난 새순을 봐도 어느 나무인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살구(왼쪽)와 배나무(오른쪽) 새순.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난 새순이 조금씩 헷갈려서 틀릴 수도 있어요. 특히 살구요!
사과나무(왼쪽)와 복숭아(인지 살구인지 확실하지 않아요.) 나무 새순.
엄나무(왼쪽) 와 오갈피나무(오른쪽) 새순은 확실히 안답니다.


올해는 한 살 더 먹었으니 마음 나이테 늘어난 값은 좀 해야겠죠? 마당 한 바퀴 빙 돌면서 나무들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새순들 모습도 눈과 마음에 담으면서요. 미처 새 이파리 내지 못한 나무들한텐 힘내라고 응원도 잔뜩 보냈답니다.  

 

이제 막 곁에 다가온 두릅나무야, 아로니아나무야, 포도나무야, 자두나무야,
부디 새 터에서 즐겁게 신나게 자라다오!
 2년 동안 묵묵히 서 있던 감나무야, 배나무야, 사과나무야, 매화나무야,
대추나무야, 살구나무야, 복숭아나무야, 오갈피나무야, 가죽나무야,
그리고 엄하게 집 지켜주는 엄나무야,
그동안 마음 주지 못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자주 만나러 올게!


죄다 ‘먹는’ 나무들이라 좀 민망해지긴 하는데 그래도 모두 귀한 나무니까 정성껏 보살펴야겠습니다. 어설픈 텃밭 농부, 올해는 나무까지 돌보느라 무척이나 바빠질 거 같네요. 그래서 참 좋아요. 텃밭 채소들에 이어 나무한테도 배울 수 있는 나날들이 제 앞에 잔뜩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장수에서 유명한 사과나무(왼쪽)랑 엄하게 집 지켜준다는 엄나무(오른쪽)를 보면 마음이 든든해져요.


문득 그늘진 뒤란에 있는 나무들도 떠오르네요. 지난겨울 우리 집 구석구석 따뜻하게 해 준 장작들 곁으로 슬며시 다가갑니다. 제 몸을 불태워 다른 이들을 보듬어 준 나무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한때는 울창한 숲을 이루어 무수한 생명들을 보듬어 주었을 테지요. 지금은 토막 난 땔감이 되어 사람들 곁을 지켜 주는 나무들을 보니, 제 마음에 깊이 담아 둔 노래 하나 떠오릅니다. 부를 때마다 맘이 뜨끈하게 저릿해지는 노래 ‘고목.’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텃밭 둘러싼 나무들에게, 뭉툭 잘린 장작들한테 띄워 봅니다. 노래도 기타도 너무 어수룩하지만, 넉넉한 나무들이라면 너그럽게 들어주겠지요? 


제 몸을 불태워 다른 이들을 보듬어 준 장작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하늘을 향해
사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기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 투성이 얼굴과, 상처 자욱으로 얼룩진
우리들의 피~맺~힌 한의 나무를 보라

한오백 년 우리들도 저 나무처럼 살아보자
몸이 잘리워져 한 토막의 장작이 되는 순간까지~

그 누구인지 모르는 저기의 길을 가~는 나그네 위해
 그늘~이라도 푸른 그늘이 되어주지 않겠나~”

(고목, 김남주 시, 박태승 곡) 


나무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띄우는 어수룩한 노래, '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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