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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Apr 02. 2018

머위꽃 튀김부터 쑥전까지
봄나물 가루붙이 잔칫상

흙 내음 은은하게 스미던 냉이전, 쌉쌀함이 담백하게 퍼지던 머위전 

작은 산골에 쉬러 온(건지 일하러 왔는지 헷갈리는) 젊은 여자 사람 둘. 그리고 같이 사는 한 남자(밭에 있는 시간이 쉬는 거라나 뭐라나) 덕분에 온갖 봄나물 튀김과 전으로 한바탕 가루붙이 잔치가 열렸다. 


너무나 보고 싶던 산골 손님이 날아든 첫날, 반갑고 설레는 마음에 늦은 새벽까지 흥겨운 시간을 나누었건만. 다음 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냉이 캐고, 쑥 뜯고 머위 꽃이랑 머위마저 뜯는 (나 빼고) 세 사람. 전날 몸 안에 즐겁게 모신 알코올, 나물하면서 다 짜내려는지 쉴 새 없이 손발 놀리며 텃밭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쑥 듣고, 냉이 캐고 하면서 텃밭에서 떠나지 않는 한 남자와 두 여자 사람.


늦은 아침, 더 늘어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나도 움직인다. 텃밭에서 끊임없이 날라 오는 이 나물 저 나물 씻고 또 씻고. 내친김에 그나마 잘할 수 있는 밀가루 반죽도 정성껏 만든다. 열심히 일한 당신들께 제대로 봄나물 잔치를 벌여주고자.  


가장 뜨거운 기대를 받은 건 단연 머위꽃. 지난해 봄, 야심 차게 도전했다가 그다지 입에 맞지 않아 산골 봄 간식에서 빼놓았던 머위꽃 튀김. 오로지 젊은 산골 손님들에게 새로운 먹을거리 맛보여 주고자 애써 튀겨냈다. 꽃 자태 곱게 살려내기가 참 힘들구먼. 밀가루를 아주 살짝, 살짝만 묻혀야 하나니.


작은 머위 잎이랑 머위꽃. 물에서 건져올리니 싱그러운 때깔에 눈이 부신다.

 

“맛있다! 딱 내가 좋아하는 맛이야!”


머위꽃 튀김 처음 먹는다는 두 여자 사람, 동시에 감탄을 내뱉으시고. 머뭇머뭇하던 나도 주저주저하며 튀김을 입안에 넣는다. 


“음…. 난 여전히 맛을 잘 모르겠어. 뭔가 비릿한 향이 나.” 


이게 정말 맛있나? 꽃 튀김에 연신 젓가락 들이대는 젊은 두 여인네, 분위기 맞추고자 맘에 없는 말할 친구들이 아닌데. 얼마나 똑 부러진 인생들인데. 


“대체 어떤 맛이 나는지 차근차근 자세히 설명 좀 해 줘요. 씹는 맛이랑 향 이런 거까지 다요.”


철없는 내 물음에 다시금 머위꽃 튀김 은근하게 씹는 두 사람. 곧이어 밝은 목소리가 뒤따른다. 


머위꽃 한 송이. 딱 이때가 튀김으로 먹기 좋을 때란다.  밀가루와 어우러진 머위꽃이 화려하게 곱다.
먼저 폭삭하고 포근하게 팍 씹히고, 
그다음 고추 튀김 비슷한 맛이 나면서 
마지막에 머위 향이 사르르 퍼져요.
진짜 맛있어요, 맛있어!


그래? 뭔가 끌리는 이야기. 다시 맛을 보자. 둥그스름한 꽃이니 몽실 포근하게 씹히는 건 당연지사고. 음…. 음! 고추 비슷한 내음이 나긴 난다. 고추 튀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막 맛있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러다 머위꽃이 목으로 완전히 넘어가던 순간, 기름과 밀가루에 가려졌던 머위 향이 사라락 다가온다. 머위나물에서 맛보았던 바로 그 내음! 향내가 머위잎보다 엄청 진하고 깊다.


아직은 메마른 봄 땅에 작은 머위잎이랑 나란히 올라온 머위꽃. 생명을 이어야 하는, 꽃이 지닌 묵직한 숙명이 진하디진한 향내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다. 머위잎은 좋아하는 내가 머위꽃을 두고 어설피 ‘비릿하다’고 느낀 건 바로 이 깊은 내음 때문이었을까.


“왜 맛있다고 하는지, 이제 쪼금은 알겠어요. 지난해 머위꽃 튀김 했다가 입에 안 맞아서 다신 먹지 않으려 했는데, 두 사람 덕분에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네요.”


작은 머위 잎이랑 나란히 올라온 작은 머위꽃. 생명을 잇는 꽃을 꺾자니 죄스런 마음이 밀려든다.


하마터면 평생 외면하고 지냈을지도 모를 머위꽃 튀김. 때맞춰 찾아온 젊은 손들 덕에 다시 산골 간식에 오르게 되었나니. 아직까지 입에 착 붙는 맛은 아니지만, 딱 이맘때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봄 선물이니 고맙게 입으로, 마음으로 받아안으련다.


자연이 안겨준 먹을거리 이모저모에 대해 늘 많은 걸 알려주는 한 언니가, 흙 위로 살짝궁 올라온 머위꽃을 보면서 그랬지. 


저건 먹어야 돼요.
진짜 딱 저 때만 먹을 수 있어요.
눈 돌리면 확 자라서 써요.
딱 저 때 향과, 쌉싸름하면서
딱 떨어지는 단맛이 깔끔하다구요.

어떤 풀에 난 것이든 꽃을 꺾을 땐, 잎이랑 달리 죄스런 맘이 들곤 하던데. 머위꽃은 바닥에서 피어난 꽃이라 그런지 미안한 마음이 더 컸고. 그러니 너무 맛나게 다가오지 않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아. 


가루붙이 잔칫상 마주한 젊은 산골 손님들처럼 봄나물 흠뻑 사랑하는 이들이 또 찾아들걸랑, 그때만 살짝살짝 꺾어 주리. 내 입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쌉싸름하면서도 딱 떨어지는 깔끔한 단맛을 멀리서 찾아온 고마운 이들에게 특별한 선물로 안겨주기 위해서. 머위꽃 한입에 행복까지 같이 맛볼 수 있도록.


쑥에 냉이에 머위까지, 가루붙이 잔치를 앞둔 한껏 싱그러운 봄나물과 뽀얀 밀가루 반죽.


온갖 흥분과 기대와 두려움(?) 속에 만들고, 입에 넣었던 머위꽃 튀김 접시가 깨끗해지고. 이제부턴 낯익은 튀김과 전으로 '산골 봄나물 가루붙이 잔치' 본격 시작! 


뽀얗게 고운 밀가루 반죽에 머위잎 넣고 냉이 넣고 튀겨, 튀겨! 삐죽빼죽 냉이 모습, 작고 둥근 머위잎 고대로 살아난 냉이튀김이랑 머위잎튀김. 무조건 맛있지! 기름에 튀기면 고무도 맛나다는데 하물며 갓 캐고 뜯은 봄나물이야 말해 뭐해. 


머위꽃 튀기고, 머위잎도 튀기고. 밀가루 잔뜩 묻은 머위꽃 튀김은 꽃 모습이 살아나지 않는다.
삐죽빼죽 냉이 모습이 입체감 있게 살아나는 냉이튀김.


그런데, 냉이전과 머위전 맛에 이미 톡톡히 빠져 있어 그런지 고소한 튀김을 먹으면서도 자꾸 냉이전이, 머위전이 생각나. 

흙 내음 은은하게 스미던 냉이전, 
쌉쌀한 내음 담백하게 퍼지던 머위전.


아무래도 튀김은, 기름이 너무 강하게 나물 본성을 휘어잡나 봐. 안 되겠다, 튀김은 이제 그만! 남은 머위잎으로 얼른 머위전을 부쳤네. 머위 잎 송송 썰어 프라이팬에 손으로 처덕처덕 얹고선 밀가루도 손으로 휘휘 두른다. 마치 어느 산 밑 주막에서 산나물전 부쳐 내며 지나가는 길손들 눈과 코를 사로잡는 그 모습처럼. 


산골 손님 찾아든 첫날 양껏 먹은 냉이전은 배가 부른 나머지 젖혔지. 더군다나, 대단하고 대단하신 봄의 여왕 ‘쑥전님’이 기다리고 계시기까지 하니까. 


쑥버무리 못지아니하게 쑥 중심으로 부친, 거침없는 쑥전. 밀가루는 그저 거들 뿐. 으아, 여왕님다운 품격과 아량까지 섞인 듯 향긋하고 부드럽게 기품 있는 맛, 맛! 


흙 내음 은은하게 스미던 냉이전(왼쪽)과 쌉쌀한 내음 담백하게 퍼지던 머위전(오른쪽).
봄나물 여왕님 '쑥'이 전으로 다시 태어나다! 기품 넘치는 자태와 그윽한 맛에  눈도 입도 푹 빠져든다.


한 접시 또 한 접시 나올 때마다 함께한 네 사람에게 탄성과 행복을 가득 안겨준, 봄나물 가루붙이 잔칫상. 봄나물의 향과 맛이 밀가루, 기름과 어우러져 더욱 끈끈하게 몸과 마음에 스민다. 각박한 도시에 살 때,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마음도 움직임도 함께 나누었던 젊은 여자 사람 둘. 정의롭고 씩씩하고 생각 깊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무 멋지기만 했던 두 사람과 같이 나누었기에 더욱 고소하고 맛난 시간이었지. 


백수 된 김에 쉬러 왔다더니 열심히 나물하고 김매며 텃밭 노동을 거침없이 즐겁게 해내던, 게으른 나까지 끌어들여 봄기운 마음껏 누릴 수 있게 이끌어 준 고마운 산골 손님. 그네들은 떠났지만, 함께 보낸 싱그러운 시간들은 여전히 몸과 마음 구석구석 흐르고 있나 봐. 이틀에 걸친 술과 나물 노동으로 적잖이 피곤한데도 싱글싱글 자꾸만 웃음이 나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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