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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Mar 30. 2018

시골살이와 남자, 여자의 ‘힘’  

두엄 들인 날, 건강한 거름과 똥 그리고 ‘행복한 삶’'을 생각한다 

이맘때 시골 밭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건? 흙 다음으로 두엄 자루일 게다. (우리 집처럼 뽑아야 할 풀만 가득한 집 빼고.) 트랙터로 확 뒤집어엎은 밭에 일이 미터 사이로 두엄 자루가 늘어선 모습, 봄을 맞은 시골 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풍경이다. 


우리 집도 두엄을 들였다. 열심히 두엄 자루 나르는 옆지기를 그저 바라만 본다. 다른 일이었으면, 같이하지 못하는 마음이 퍽이나 미안할 법도 하건만, 이번만은 좀 다르다.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두엄 자루, 쌀가마니처럼 시골에선 ‘남자의 힘’이 필요한 때가 참 많다.


한 이 년 전쯤, 이십 킬로그램 되는 두엄 자루를 처음으로 날라 본 적이 있다. 두세 개쯤 간신히 옮겼을까? 지금도 기억난다. 토가 쏠려오는 듯한 힘겨움. 그때 그 순간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내 힘이 이 정도도 감당하지 못하는가! 


도시에 살 땐 자타 공인, 힘깨나 쓰는 여자로 살았다. 정수기 물이나 큰 상자 같은 걸 척척 드는 건 물론이고 팔씨름, 닭싸움 같은 힘겨루기 놀이에서도 웬만한 여자들하곤 상대가 안 될 만큼 월등히(?) 힘이 좋았다. 덕분에 남자 같단 소리도 꽤 들었다. 회사 체육대회에서는 나더러 남자 팀에 들어가야 한다고 아우성이 높기도 했고. 


그렇게 힘 앞에서 어설프게 기고만장 살아왔던 내가 두엄 자루 앞에서 “더는 못해!” 외치며 쓰러지던 순간, 저 앞에서 한 자루, 두 자루 번쩍번쩍 드는 한 남자를 보았다. 게다가 칠십 대 중반 할머니 두 분이 조금은 힘겨워하면서도 두엄 자루 하나쯤 너끈히 나르는 모습까지도. 그때 느낀 절망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날 마음 깊이 박힌 이 생각도. 


제 아무리 남자 여자 힘이 다르다지만
두엄 자루 하나 나르지 못하는 나는 대체 뭔 쓸모가 있단 말이고!
시골은 힘 좋은 남자나 필요한 곳이지
여자는 밥하고 김매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는 기고!
두엄 나르는 할머니들은 사람도, 여자도 아닌 거 같아….


그 뒤론 두엄 자루를 나르지 않는다. 죽을힘 다해 두세 개 간신히 옮겨 봤자 별 도움도 되지 않는데 용쓰며 할 까닭이 무에 있겠나. 이건, 이건 정말,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니까.


두엄 자루, 쌀가마니처럼 시골에선 ‘남자의 힘’이 필요한 때가 참 많다. 어르신들 많은 마을에선 특히나 더! 내가 사는 곳에서도 부엌일 빼면 사람들은 늘 남편을, 남편만 찾는다. 무거운 짐 옮기는 일 도와달라는 이야기지. 만일 힘 나누는 걸 좋아할 수 있는 남자라면, 그것만으로도 시골살이 어느 정도는 알차게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정말 진심으로 생각한다. 내 몸뚱이 하나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건, 그게 무슨 일이든 무척이나 뿌듯한 일이니까. 


이젠 적어도, 두엄 자루 앞에 두고 '쓸모없는 사람' 어쩌고 하는 넋두리는 하지 않는다.


여자 가운데서도 힘이 꽤 셌던 나는, 시골에서 잔뼈가 굵은 오십 대, 육십 대, 하물며 칠십 대 어머니들보다 힘도 강단도 약하다. 나보다 키도 몸무게도 덜 나가는 이분들은 나보다 훨씬 거뜬히 두엄 자루도 나르고 손수레도 끌고 하신다. 몸에 새겨진 노동의 세월이 얼마나 진득했으면…. 


일 년, 이 년, 삼 년, 사 년…. 산골노동 세월에 조금씩 젖어들면서 이젠 적어도, 두엄 자루 앞에 두고 ‘쓸모없는 사람’ 어쩌고 넋두리는 하지 않는다. ‘근육과 뼈의 힘’이 모자라도 산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됐으니까. 두엄 자루만 해도, 바로 나르진 못해도 손수레에 실어 밭에 뿌리는 건 할 수 있겠더라. 엄청 느리기는 해도. 


집에서 만드는 ‘건강한 거름’


‘파는 두엄’을 들이면서 집에서 만드는 ‘건강한 거름’이란 걸 생각해 본다. 


텃밭 귀퉁이에 소박하게나마 두엄자리가 있다. 음식 찌꺼기에다가 강아지 똥이랑 나무 타고 난 재를 섞어 거름을 만드는 곳이다. 산골 살면서 정말 좋은 거 가운데 하나. 바로 음식 찌꺼기를 비닐봉지에 버리지 않고 땅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빨래를 햇볕에 말리는 일에 버금가는, 엄청난 행복이고 기쁨일지니. 

텃밭 귀퉁이에 음식 찌꺼기에다 강아지 똥이랑 나무 타고 난 재를 섞는 두엄자리가 있다.


서울 살 땐 수박이 먹고 싶어도 껍데기 버릴 걱정에 아예 안 먹고 말 때가 많았다. 여름에는 하루 이틀만 음식 쓰레기 쟁여 놔도 구더기가 막 생겨서 그거 갈무리한다고 얼마나 고달팠는지.  


아파트는 좀 나을지 모르겠으나 따닥따닥 좁은 빌라 인생은 음식 쓰레기 치우는 일이 참 스트레스 덩어리였다. 거기다 야근하느라 쓰레기 내놓으라고 정해진 요일과 시간을 못 맞출 땐, 음식 찌꺼기 봉투에서 나는 그 구리구리한 냄새…. 아, 생각만으로도 싫어, 싫어! 그런 삶과 완벽하게 이별한 산골살이.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크나큰 행복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아직은 보잘것없는 두엄자리. 양이 적어서 호박 구덩이에 몰아넣으면 끝이다. 어쩔 수 없이 파는 두엄을 사들인 날, 집에서 만든 건강한 거름으로만 농사지을 수 있는 그날을 꿈꿔 본다.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 꼭 해야만 할 일들이 있다는 것도, 창고 뒤에 차곡차곡 쌓인 두엄을 바라보며 새록새록 되새긴다. 해야만 하는 일이, 꼭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는 것. 참 고맙고 행복한 삶이라는 것까지도….


거름의 꽃 ‘똥’ 그리고 ‘건강한 똥통’


두엄 자루 들여온 날, 거름의 꽃 ‘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지.  


우리 집에는 바깥에서 일 볼 수 있는 ‘작은 똥통’이 있다. 집 지을 때 남은 자재들 모아 모아 썰고, 못 박고 해서 생태화장실 비슷하게 만들어 둔 게 있나니. 생태화장실에 대한 열망도, 지구를 살리고픈 간절함도 나보다는 훨씬 더 컸던, 나무랑 못 좀 다룰 줄 아는 옆지기가 손수 만든 것이다. 


집 지으면서 남은 자재로 옆지기가 손수 만든 건강한 똥통.


책도 들여다보고 이모저모 고민 고민하며 만든 이 똥통. 아래 네모난 곳 안에 똥오줌 받이 통을 넣어 그 통을 꺼내서 비울 수 있는, 어느 정도는 말이 되는 듯이 보이는 구조다. 만들어 놓기는 했으나 저 똥통을 감싸줄 벽체를 갖추지 못해 여직 구석에서 놀고 있는데…. 먼지 가득 쌓인 요 ‘건강한 똥통’, 언젠간 제 쓸모에 맞는 자리에 놓일 수 있겠지? 


저녁 먹고 마당으로 나가니 달이 참 밝다. 보름이 가까운가 보다. 달 밝은 봄밤 풍취가 참 아늑하고 좋은데, 더 누리고도 싶은데, 얼른 집으로 들어와야만 했다. 이 밭 저 밭 퇴비를 잔뜩 뿌렸는지 구리구리한 냄새가 달빛 타고 콧속으로 어찌나 신나게 들어오던지. 두엄은 좋지만, 두엄 냄새는 아직 좀 힘드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말이 있던데, 몸에 좋은 냄새라서 코도 힘들어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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