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Apr 13. 2018

‘불금’맞이 산골 손님 위한
제철 봄나물 밥상 차리기

광대나물, 두릅, 머위, 냉이… 산으로 들로 장보러 가 볼까?

내게 참 소중한 산골 손님이 오시는 날. 


한때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나이는) 동생이지만 (행동은) 언니 같기만 했던 친구가 산골 우리 집에 찾아온다.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그동안 일 년에 두 번은 어김없이 산골 마실 나오더니 이 봄을 맞아 여지없이 발걸음을 하신다네. 그것도 금요일부터 휴가 내고 이박삼일이나! 나야 좋지. 화려한 네온사인은 없지만 반가운 이 찾아들면 그보다 더 신나고 화려한 불금은 없을 테니까. 날짜도 요일도 어찌 가는지 모르고 지낸 지 오래지만, 왠지 금요일이면 살짝 헛헛한 마음이 들 때가 있긴 하거든.  


봄이니까 봄나물 밥상을 차려야지. 불금 맞이 산골 손님 위한 장보기, 어디로 갈까? 멀리 갈 거 없이 들로, 산으로! 단, 장보는 일은 같이 사는 남자에게 맡겼음. 나는 나대로 집 안에서 따로 준비할 일들이 넘쳐나기에.  


둥근 잎이 광대가 입는 옷의 목깃처럼 생겼다고, 이름도 ‘광대나물’이다. 뿌리는 약으로도 쓴다지만 나물로 먹기엔 질기니 하나하나 떼어 내기.


한 시간 넘게 텃밭에서 머물던 옆지기가 잔뜩 장을 봐 왔다. 먼저 그동안 여러 차례 입을 행복하게 해준 냉이를 꺼내네. 며칠 지나면 억세질 거라 아마도 이번 냉이가 마지막이 될 듯. 


그러곤 뭔가 색다른 ‘풀’을 야심차게 보여준다. 광대나물이다! 둥근 잎이 광대가 입는 옷의 목깃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도 ‘광대나물’이라는데 맛은 과연 어떨까. 한 번도 해 보지 않아서 궁금증이 일렁인다. 이따 만들어 보면 알게 되겠지. 하여튼 우리 집 남자,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도 장을 본다.  


점심 먹고서는 다시 또 장보러 간다는 남자. 이번엔 앞산이란다. 한 시간도 채 안 돼 보랏빛 줄기가 매혹 넘치는 머위를 한 소쿠리 담아왔다. 쌉쌀하고 오동통한 머위나물,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보랏빛 줄기가 매혹 넘치는 머위! 살짝 데치니 푸릇푸릇함도 오동통한 줄기도 더 생기가 도는 듯하다.


냉이, 광대나물, 머위 뜯고 다듬고 씻기까지. 혼자서 야무지게 마무리한 남자. 좀 쉬라는데도 말을 안 듣고 또 장보러 가야겠단다. 아무래도 두릅이 열렸을 거 같다면서. 조금 먼 뒷산으로 나서는 걸 굳이 말릴 수도 없고. 잘 다녀오라고 콩으로 만든 마실 거리 하나 쥐어 줬지. 


지금까지 장본 것만으로도 반찬 거리 밑 준비하느라 나도 집에서 바쁘다. 냉이, 광대나물, 머위 데치고. 텃밭에서 미리 캐 둔 삼 년 묵은 도라지 다듬고. 슬쩍 지치기에 잠시 쉬려는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여기, 장본 거 구경 좀 해 봐!”

우와, 두릅에 어린 취에 고사리까지. 산골짜기에서 제대로 장봐 왔네!


뭔가 많이 들뜬 목소리다. 냉큼 나가서 보았지. 


“우와, 두릅이다!” 


허름한 장바구니를 여니, 무시무시한(?)낫과 함께 이쁜 두릅이 슬며시 보인다.(아마도 험한 산길 헤치며 다니느라 낫을 들고 갔나 봐.) 올해 처음 만나는 귀한 산두릅! 게다가 향긋한 어린 취도 보이고, 무려 앙증맞은 고사리까지! 생각지도 않은 귀한 반찬거리를 잔뜩 안겨주다니, 밥상 준비하는 마음이 못내 행복하다. 


막 꺾어 온 고사리를 보면서 지난해 말려 둔 고사리를 꺼낸다. 조금밖에 없어 아껴 둔 건데, 고사리가 새로 생겼으니 아낌없이 내주리. 게다가 이번 산골 손님은 고사리를 무척이나 좋아하기까지 하니까. 


조금 먼 뒷산에서 장본 올봄 첫 두릅과 취. 사월 중순은 돼야 만날 수 있는 봄나물 앞에 두고 감개무량하다. 
두릅과 취나물, 산골 손님을 위한 나물밥상에서 아마 가장 사랑 받을 듯!


산골 장보기는 끝났고. 본격으로 봄을 부르는 봄나물 반찬 만들기에 들어간다. 


주르륵 늘어선 제철 봄나물들을 보며 어느 것부터 먼저 할까 궁리 궁리. 그래, 도라지 무침부터! 오래 두면 색이 바뀌니까 빨리빨리 해야지. 고추장, 고춧가루, 매실 엑기스, 식초, 마늘, 양파, 파 넣고 조물조물 무치니 빨간 때깔이 어찌나 먹음직스러운지. 한입 먹어보니 맛도 그만이야! 산골 손님 입도 분명 좋아하겠지? 


나머지 봄나물도 마저 해야지. 된장, 고추장, 집간장, 참깨, 참기름, 마늘까지 온갖 양념들 주르륵 꺼내 놓는다. 자, 처음 만나는 광대나물부터 시작해 볼까. 나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간을 약하게 해야지. 간장, 마늘, 참기름만 넣고 조물조물. 맛 좀 볼까? 살짝 쫄깃하고 담백하네. 다만 특별한 향이 없어 개성은 좀 떨어짐. 그래도 좋아, 광대나물이라는 이름 떠올리며 재밌게 먹을 수 있을 테니까.      


텃밭과 산골짜기에서 장본 제철 봄나물들.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이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취나물 대령. 어린 잎이 어찌나 어여쁜지. 씻을 때도 살짝 데칠 때도 코끝을 간질이던 향긋함에 마구 설레기만 했지. 간장, 마늘, 참기름 조금씩만 넣고 살짝 무치니 그 맛도 가히 일품! 그 많은 나물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나물. 봄나물 여왕님 자격이 충분한 듯.


이 봄, 자주 만났던 냉이나물도 된장, 마늘, 참기름 넣고 슥슥 무쳐낸다. 나야 자주 먹었지만 서울서 오는 산골 손님이야 어디 자연산 냉이무침 맛볼 기회나 있었겠어? 냉이 쇠기 전에 찾아드니 이 맛을 만날 수 있음이야! 그러게, 입이 행복하려면 산골 마실도 때를 잘 만나야 하는 법.


그다음, 올해 제대로는 처음 만드는 머위나물! 살짝 데치니 푸릇푸릇함도 오동통한 줄기도 더 생기가 도는 듯하다. 고추장, 된장, 마늘, 매실 엑기스 넣어 팍팍 무친다. 잎이 커서 무치는 손맛도 남다르다. 데칠 때 약간 씁쓸하고 비릿하게 느껴졌던 맛이 고추장 된장과 만나서 그런가 기품 있게 쌉쌀한 맛으로 다시 태어났다. 탱글한 줄기와 물큰한 잎사귀는 조화로운 식감을 안겨주었고. 오예! 내가 그리던 이 맛, 봄을 맞아 다시 또 만나는구나.


나물 무치기 완료! 이 나물 저 나물 몰아서 하다 보니 둘레가 엄청 지저분해짐. 


이렇게 해서 나물 무치기 모두 완료! 나물 무칠 때면 둘레가 어찌나 지저분한지. 무쳤다고 다가 아니지. 볶아주길 기다리는 나물이 있나니. 온갖 양념들로 너저분한 상을 치우고 나물 볶기에 들어간다. 먼저 도라지부터. 무침이 있다지만, 볶음은 또 다른 도라지 맛의 세계. 애써 다듬었으니 도라지로 일석이조 반찬을 만들어야지! 들기름과 어우러져 은은하게 퍼지는 도라지 내음. 그윽하게 쌉싸름하다. 


마지막으로 고사리 볶음 시작. 아, 그전에 아까 장봐 온 고사리부터 삶아야지. 갓 꺾은 고사리는 갓 삶아서 말려야 더 맛나니까. 시키지도 않은 장 잔뜩 봐온 남자 덕분에 손에 물마를 틈이 없네. 녹두 빛 고운 고사리 팔팔 삶아서 마당에 널곤 아까부터 삶아서 불려 둔 산고사리를 꺼낸다. 고운 밤색 빛깔에 길쭉 야들야들한 모양이 언제 보아도 눈엔 착 안긴다. 도라지에 이어 이 또한 명절 때도, 제사 때도 두루 조상님께 올리는 귀한 산나물. 게다가 내 손으로 직접 꺾고 말려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취나물, 도라지나물, 도라지 무침, 머위나물, 광대나물, 고사리나물, 냉이나물까지(맨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 제철 봄나물 반찬이 한자리에!


간장, 마늘, 들기름, 후춧가루, 설탕 조금 넣어 자글자글 볶은 고사리. 삶을 땐 양이 많아 보였는데 볶고 나니 폭 졸아드네. 그래도 산골 손님 한 사람 입 기쁘게 하기엔 섭섭지 않을 거야. 내 입에까지는 굳이 넣지 않아도 돼. 만드는 시간으로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이로써 산골 손님을 위한 봄나물 요리를 모두 마쳤다. 봄에 찾아오는 손님은 밥상에도 봄을 몰고 오는구나. 우리 부부만 먹자면 이렇게 한꺼번에 열심히, 여러 가지 만들지 못했을 텐데. 


봄이 한가득 담겨 있는 봄나물 밥상. 밥반찬으로도 좋지만, 막걸리 안주로도 그만이다.

미리 시식도 할 겸 나물 하나하나 담는다. 두릅도 조금만 데치기. 많지 않으니 아껴 먹어야지. 두릅이랑 나물 접시 앞에 두고 막걸리 한잔. 카, 좋구나 좋아. 올봄 처음으로 맛보는 두릅의 기품 넘치는 맛과 향이, 입을 타고 온 몸으로 스민다. 이 나물, 저 나물 모두 밥반찬으로도 좋지만 막걸리랑도 참 잘 어울리네. 


바로 이 맛에 산골 장보기도, 산골 반찬 만들기도 하는 거지. 나만 먹고자 만들 때는 이 맛이 안 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 뜯고 씻고 무치고 볶아야만, 그이가 맛나게 먹는 순간을 그리면서 만들 때만이 느낄 수 있는, 달콤 쌉쌀하게 행복한 맛. 산골 손님도 나처럼 이 봄나물 앞에 두고 행복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이제 남은 건 머위전, 냉이전 준비하고, 냉이된장찌개 끓이고, 달래장 만들고 김 굽는 일.

                     

한 사람을 위한 산골밥상을 위하여, 우리 부부의 하루는 오롯이 흘러갔고. 이제 남은 건 머위전, 냉이전 준비하고, 냉이된장찌개 끓이고, 달래장 만들고 김 굽는 일. 요건 산골 손님 오는 시간에 맞춰 해야 더 맛나니까 서둘 필요는 없지. 가만, 슬슬 올 시간이 다가오는 듯도 하니 살살 몸을 움직이긴 해야겠군. 


봄나물을 한껏 고소하게 만나도록 도와줄, 뽀얀 밀가루 반죽부터 시작해 볼까?   

작가의 이전글 못난 딸의 ‘쑥 열 덩이’와 엄마표 ‘아주 좋은 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