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 산골 메주를 쑤고 띄우며
메주를 만들고자
어느 농부님의 콩을 사서
집에 들인 뒤로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물에 메주콩을 불리면서
두 배 가까이 커지기까지
열 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아궁이에 메주를 쑤며
큰 나무 작은 가지
번갈아 장작불을 놓아
몇 시간을 젓고 또 저으며
알맞게 익기를 기다리고.
잘 익은 콩
네모나게 빚어
적당히 말린 뒤에
볏짚으로 감싼 메주를
이불로 몇 겹을 감싸
몇 날 며칠을
아랫목에 모셔두고는
부디 잘 뜨기를
고대하며 기다리다가
오늘에서야 살짝
메주가 담긴 상자를
열어봅니다.
아, 다행이에요.
제 눈엔 예쁘게
떴습니다.
이대로 조금만 더 기다리면
겨울 하늘 아래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또다시 새로운
기다림이 시작되겠죠.
장 담그기에 좋을 날
장 가르기에 맞는 날
그러고는
된장, 간장이 항아리에서
제맛으로 무르익을 그날까지.
이 시간들을 오롯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하기에
메주를 쑤는 철이 오면
나에게 먼저 묻곤 합니다.
메주 하나에 담겨진
긴 시간들을 과연
책임질 수 있겠는지….
산골살이 첫해에는
겁 없이 달려들었다가
운이 좋아 잘된 덕분에
그 뒤로 십 년은 족히
빼놓지 않고 만들어온 메주를
지난 몇 년간은
지나쳐야 했습니다.
저 물음 앞에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땐
풀기에 서글픈 삶의 숙제들에
깊이 치여 있었나 봅니다.
올해도 가을 지나
겨울이 다가올 무렵
여지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른 일들은 상황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장 담그는 일만큼은
왜 그런지 중간에 멈추는 걸
내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
그동안 그래왔듯이
시작하면 꼭 마무리를 봐야 해.
어때, 할 수 있겠어?
정말로 하고 싶어?!’
참말이지 여러 번을
묻고 또 물으면서 끝내
답을 내렸습니다.
‘옆지기랑 자연의 기운으로
함께 만든 장이 나한텐
세상에서 젤 맛있는데,
된장 간장 없이 못 사는데….
해야겠어.
하고 싶어.
할 수 있을 거 같아.
혹시 잘 안 되더라도
너그럽게 봐주면 되잖아.
이제는,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저는 결심만 세우고!
콩 사는 것부터 볏짚 다듬기와
메주 띄우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콩 씻고 불리는 일은 그나마
제가 하긴 했네요^^)
옆지기의 일사천리 손길로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상 잘 뜬 메주 보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안심한 나머지
띄우게 된, 어느 작은 산골출판사의
겨울 이야기였습니다~^^*
*아궁이에서 메주 쑤는 영상 보기
https://youtube.com/shorts/AOVQfb06SJk?si=IPj_LlKGBpb_eS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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