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겠어, 하고 싶어, 할 수 있을 거 같아

기다림의 미학, 산골 메주를 쑤고 띄우며

by 산골짜기 혜원

메주를 만들고자

어느 농부님의 콩을 사서

집에 들인 뒤로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f.jpg 열 시간 넘게 불린 메주콩. 크기가 두 배는 커진 듯.


물에 메주콩을 불리면서

두 배 가까이 커지기까지

열 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아궁이에 메주를 쑤며

큰 나무 작은 가지

번갈아 장작불을 놓아

몇 시간을 젓고 또 저으며

알맞게 익기를 기다리고.


20251230_194932.jpg 네모나고 단정하게 빚은 메주를 볏짚으로 감싸기 시작~


잘 익은 콩

네모나게 빚어

적당히 말린 뒤에


볏짚으로 감싼 메주를

이불로 몇 겹을 감싸

몇 날 며칠을

아랫목에 모셔두고는

부디 잘 뜨기를

고대하며 기다리다가


오늘에서야 살짝

메주가 담긴 상자를

열어봅니다.


20260106_150307.jpg 메주에 하얗게 핀 것들이 참 예쁘네요~^^


아, 다행이에요.

제 눈엔 예쁘게

떴습니다.

이대로 조금만 더 기다리면

겨울 하늘 아래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또다시 새로운

기다림이 시작되겠죠.


장 담그기에 좋을 날

장 가르기에 맞는 날

그러고는

된장, 간장이 항아리에서

제맛으로 무르익을 그날까지.


20251228_160332.jpg 메주 하나에 담겨진 긴 시간들을 과연 나는 책임질 수 있는지....


이 시간들을 오롯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하기에

메주를 쑤는 철이 오면

나에게 먼저 묻곤 합니다.


메주 하나에 담겨진

긴 시간들을 과연

책임질 수 있겠는지….


산골살이 첫해에는

겁 없이 달려들었다가

운이 좋아 잘된 덕분에

그 뒤로 십 년은 족히

빼놓지 않고 만들어온 메주를

지난 몇 년간은

지나쳐야 했습니다.


저 물음 앞에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땐

풀기에 서글픈 삶의 숙제들에

깊이 치여 있었나 봅니다.


20251219_153015.jpg 좋은 볏짚을 햇볕에 말립니다. 메주 쑤기로 결심하고는!


올해도 가을 지나

겨울이 다가올 무렵

여지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른 일들은 상황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장 담그는 일만큼은

왜 그런지 중간에 멈추는 걸

내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

그동안 그래왔듯이

시작하면 꼭 마무리를 봐야 해.

어때, 할 수 있겠어?

정말로 하고 싶어?!’


참말이지 여러 번을

묻고 또 물으면서 끝내

답을 내렸습니다.


‘옆지기랑 자연의 기운으로

함께 만든 장이 나한텐

세상에서 젤 맛있는데,

된장 간장 없이 못 사는데….


해야겠어.

하고 싶어.

할 수 있을 거 같아.


혹시 잘 안 되더라도

너그럽게 봐주면 되잖아.

이제는, 이제부터라도.’


20251225_143456.jpg 아궁이에 메주를 쑤며, 큰 나무 작은 가지 번갈아 장작불을 놓아 몇 시간을 젓고 또 저으며 기다리고.


그렇게 저는 결심만 세우고!


콩 사는 것부터 볏짚 다듬기와

메주 띄우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콩 씻고 불리는 일은 그나마

제가 하긴 했네요^^)

옆지기의 일사천리 손길로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상 잘 뜬 메주 보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안심한 나머지

띄우게 된, 어느 작은 산골출판사의

겨울 이야기였습니다~^^*


*아궁이에서 메주 쑤는 영상 보기

https://youtube.com/shorts/AOVQfb06SJk?si=IPj_LlKGBpb_eSKj


#메주 #된장 #간장 #메주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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