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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Feb 05. 2018

과장님 말고 우리들의 청국장님!

안방의 주인공 메주랑 청국장이 사라지니 너무 허전해~


담백하고 구수한 우리들의 청국장님!

천연 방향제라도 뿌린 듯 방에만 들어서면 구수한 내음이 퍼진다. 최고로 뜨시게 모셔야 잘 ‘뜨시는’ 청국장은 이불로 겹겹이 싸고, 예쁜 메주들은 볏짚 위에서 꾸덕꾸덕 마르고 있다. 귀한 먹을거리랑 한동안 같은 방을 써온 덕분에 나도 뜨뜻하게 잘 지냈지. 


그러던 어느 날, 대망의 청국장을 열었다. 과장님, 실장님 말고 우리들의 청국장님! 보통 청국장을 삼사일 띄운다던데 난 열흘 정도 잡는다. 아무 근거 없다. 그 정도면 될 것 같다는 내 코와 눈의 판단을 따르는 것뿐. 방 온도를 지글지글 끓게 만들지 못하니 그저 길게 하면 어떡하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심리도 있고. 


볏짚 꾹꾹 박은 청국장. 이불 겹겹이 싸서 뜨신 곳에 둬야 잘 뜬다.

청국장 싼 보자기를 열면서 며칠 더 둘까말까 고민 고민. 지난해 기억을 더듬으니 그때도 딱 열흘 띄웠더라. 같은 집이니 비슷이 가자 해서 열기로 결정! 볏짚 쏙쏙 뽑아내니 ‘나, 어느 정도는 됐어요’ 하듯 김이 폴폴 난다. 청국장 대명사인 끈적이게 늘어지는 실끈도 더러 보인다. 냄새는 구수하게 구릿하고. 내 수준에 이거면 된 거다. 볏짚 걷어낸 청국장에 굵은소금 넣고 나무주걱으로 팍팍 다져 그릇에 담는다. 



뿌글뽀글 꾸룩끼룩


청국장은 가끔 먹는 음식이다. 어쩌다 먹어야 맛도 있고. 호불호가 확실해서 꼭 물어본 뒤에 선물도 하고 손님한테도 끓여준다. 내 입에 맛있어야 대접도 하고 선물도 할 수 있으니 청국장찌개 맛부터 좀 봐야지. 


내 안에 들어와 몸살도 마음살도 찌우는 청국장찌개. 행복하게 맛있다.

  

“뿌글뽀글 꾸룩끼룩.” 각자 자리에서 오래오래 잘 묵은 청국장과 묵은지가 만나 맛난 소리를 낸다. 시원하고도 담백하고, 칼칼하고도 구수하고, 시큼하고도 달큼하고. 된장찌개도 김치찌개도 흉내 내지 못하는 이 맛. 청국장찌개를 끓이고 먹으면서 청국장처럼, 묵은지처럼 내 자리에서 잘 묵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내 안에 들어와 몸살도 마음살도 찌우는 청국장찌개. 행복하게 맛있다. 밤 깊도록 구수한 내음 가득한 집. 손에서는 여전히 청국장 향기가…. 


사이좋게 지내던 동무(?)들이 그립다 

안방에서 젤 뜨신 자리 꿰차던 메주를 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이 돼서야 바깥세상으로 해방시켜드렸다. 다른 때보다 좀 늦었다. 방을 늘 따뜻하게 해드리지 못해 곰팡이님이 들쭉날쭉 하는 바람에 아예 주구장창 길게 놔두기로 했지. 원 없이 뜨시라구. 


안방에서 젤 뜨신 자리 꿰차던 메주님들. 여러 날 지나 하얀 곰팡이가 곱게 피어났다.


메주 담긴 상자 날마다 열어 살폈건만 요 며칠 살짝 놓쳤더니 흰 곰팡이 말고도 뭔가 좀 많이 생겼다. 뭐, 그리 놀라진 않는다. 전에도 더러 겪은 일인지라. 어쨌든 더는 두면 안 되겠다. 메주 감싸던 볏짚 고대로 써서 열 개 넘는 메주를 하얀 망에 나누어 담는다. 높은 자리에 고이 매달았다. 


하얀 그물망에 메주를 담아 높은 곳에 매단다. 이제부턴 눈님 바람님이 메주를 보살펴주겠지?


메주랑 눈이 참 잘 어울린다. 따뜻한 곳에만 있던 메주가 이제는 추위와 만나 새로운 숙성 시간을 맞이할 테지. 사람도 온탕 냉탕 번갈아 하면 몸에 좋다니까 메주도 아마 더 건강한 맛을 만들어낼 거야. 


청국장도 사라지고, 메주마저 없어지니 안방이 휑하다. 함께 있는 동안 든든하고 좋았는데. 한동안 사이좋게(?) 지내던 동무들이 떠난 빈자리가 못내 허전하다. 그래서일까. 안방에 들어가기가 괜히 싫네. 이제 자러 가야 하는데…. 


메주랑 청국장이랑 사이좋게 안방을 썼건만, 먹을거리 동무들 떠난 빈자리가 못내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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