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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an 31. 2018

"된다, 도끼질이 된다!"

나무하고 톱질하는 산골새댁 

땔감 구하러 가까운 산으로 간다. 부러진 나뭇가지랑 쓰러져 죽은 나무를 마당까지 질질 끌고 온다. 더러 큰 나무는 손수레에 꾸역꾸역 실어오기도 하고 잔가지들은 자루에 담아온다. 산이 코앞이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나는 잔가지만 취급하고 큰 나무는 모두 우리 집 나무꾼 몫이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나무를 가져오면 산도 좋아하는 것 같다. 부러진 가지에 엉켜 있던 나무들한테 생기도 느껴지고. 산도 좋고 우리도 좋은 일이 맞겠지?  


여기저기 널브러진 나무를 가져오면 산도 좋아하는 것 같다.

보기만 해도 든든한 나무 뭉치들. 하지만 진짜 일은 이제부터다. 가지 꺾고 몸통 자르고 해야 땔감으로 쓸 수 있나니. 먼저 슬근슬근 톱질 시작. 처음엔 나무꾼이 하는 걸 구경만 했다. 식칼보다 큰 칼은 무섭기부터 하니 톱질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자꾸 보니까 재밌어 보이네? 땀 뻘뻘 흘리던 나무꾼이 숨 고르기 하면서 슬쩍슬쩍 던지는 이야기에도 끌리긴 마찬가지. “톱질 하다 보면 나뭇결이 느껴져. 단단한 옹이라도 만나면 뜨끔하고…. 나무와 마음을 주고받는 느낌이야.” 


끌리는 건 다 해본다, 실패해도 좋다. 산골살이 철칙 아닌 철칙을 마음에 담고 드디어 톱질 도전. 손에 잡는 것부터 난생처음이다. 나무꾼이 알려주는 대로 한 손으로 나무를 잡고 다른 손으로 톱을 움직였다. 



톱질 하다 보면 나뭇결이 느껴져. 단단한 옹이라도 만나면 뜨끔하고….
나무와 마음을 주고받는 느낌이야.


‘쓱싹쓱싹.’ 소리만 크지 얇은 톱으로 나무속까지 파고들자니 힘도 시간도 많이 든다. 손가락 타고 팔뚝으로 넘어오는 진동도 만만치 않고. 온 정신 모아서 하니 그거 잠깐에 땀이 다 난다. 한 토막 자르면서 몇 번이나 쉬고 또 쉰다. 열 번 톱질에 안 떨어져나가는 나무 없다고 마음도 손도 다지면서 계속 이어지는 톱질. 떨어질 듯 말 듯 달랑거리던 나무토막이 끝내 ‘툭’ 떨어졌다. 우와, 짜릿한 이 손맛! 그 맛에 홀려 나무 한 통 다 잘랐다. 그래봤자 네 토막뿐이지만.  


슬근슬근 톱질에 실패! 나무가 톱을 먹어버렸다.


한 번 성공했으니 나무꾼과 함께 계속 이 일을 해야 맞겠으나 딱히 그러지는 못했다. 처음엔 하려고도 했지. 헌데 다른 나무는 토막 내기가 너무 어려워. 아예 안 돼. 알고 보니 톱질 첫 경험 때 만난 나무는 특별히 준비된 거였더라고. 얇고 가볍고 잘 말라서 누가 하더라도 톱질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나무. 그보다 조금만 두꺼워져도 잘리긴커녕 나무가 톱을 먹어버리기 일쑤니 톱질은 그냥 우리 집 나무꾼이 전담하기로!     


‘산’이시여, 드디어 도끼질을 허락하셨나이까

도끼질 하나 몸에 익히지 못하고 산골서 살아온 시간이 벌써 몇 년째인지. 뭔 죄가 그리 많아서 도끼가 제 발등 찍을까 지레 겁먹고 내려치다 뒤로 물러나기만 몇 년. 정 가운데 조준은커녕 둥근 나무에 열십자만 수십 개 그려넣기를 또 몇 년. 그럼에도 자세만은 프로 나무꾼 못지않다는 슬픈 나무꾼. ‘도끼질은 정말 안 되는가, 도끼질도 못하는 산골아낙, 과연 산골서 살 자격이 있는가’ 자괴감에 빠져 지내기를 또 몇 년. 


나무에 열십자 그려 넣기만 수년째. 자세만은 프로 나무꾼 못지않다는 슬픈 나무꾼.

바람 세고 햇빛 따사롭던 날. 창문 너머로 도끼질 소리가 살살 귀를 간질인다. 잘하겠다는 욕심 같은 거 없이, 운동 삼아 도끼 몇 번 치려는 마음으로 신발 질질 끌고 나갔다. 한 도끼질하는 우리 집 나무꾼께서 먼저 시범을 보인다. 잘 마른 나무는 바로 심장부를 내려찍기! 옹이가 있는 나무는 옆 주둥이부터 공략. 한방에 두 방에 쩍쩍 갈라지는 나무를 보니 탄성이 절로 난다. 도끼질 잘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린다.


된다, 도끼질이 된다!


구경 그만하고 나도 해보자. 무거운 쇠도끼 내리치는 것만으로도 온몸 운동이 따로 없으니까. 지극히 단순한 마음으로 도끼를 들었는데…. "된다, 도끼질이 된다!" 열십자도 찍히지 않고 서너 번 네댓 번에 쩍 갈라진다. 우연도 실수도 아니었음을 쪼갠 나무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에서, 옆에서 지켜본 나무꾼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산’이시여, 드디어 제게도 도끼질을 허락하셨나이까.  


숱한 도끼질이 만든 열십자.

도끼질에 실패만 한다는 핑계로 노력도 하지 않고 지낸 그 무심하고 게을렀던 시간이 헛되지만은 않았나보다. 한 철 한 철 산과 더불어 보내는 동안 몸으로 스민 어떤 기운 같은 게 있기라도 한 건지.  여전히 어설프지만 도끼질을 할 수는 있게 되니 이제야 산골 살아갈 자격이 생긴 것만 같다. 좀 맛깔나게 산골살이 해볼 수도 있을 듯하다. 


도끼질 맛을 얕게나마 터득한 지금 ‘하산’이 아니라 산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할 것도 같지만 그냥 지금 이 삶터에서 도끼질 되는 산골아낙으로 살아갈란다. 


된다, 도끼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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