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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an 29. 2018

“눈 오는 밤, 이 맛에 산골 사네~♬”

뜨끈 달콤 시원한 겨울 별미와 막내 여동생

바다 건너 일본에서 산골로 날아든 막내 여동생. 언니네 밭에서 난 거라면 뭐든 좋아하는 동생을 위한 산골 점심밥상을 차린다. 여러 가지 할 거 없이 동생 좋아하는 한두 가지로만. 그래야 양껏 먹으니깐. 


여름내 말린 가지부터 물에 불린다. 추운 한겨울에도 가지를 맛볼 수 있으니 말리느라 고생한 보람 가득! 그러곤 들깨를 씻는다. 물에 동동 뜬 들깨를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 옛날 어떤 며느리가 물에 뜬 깨는 싹 버리고 밑에 깔린 돌멩이들을 깨로 알고 요리했다가 시어머니께 크게 혼났다는 전설 아닌 전설. 물론 나는 아님. 


고이 씻은 들깨를 믹서에 간다. 갓 갈아낸 들깨 내음이 끝내주게 싱그럽다. 마음까지 고소해지는 기분. 연한 보랏빛 때깔이 곱고 또 고와서 자꾸만 들여다본다.   


 갈아낸 들깨 내음이 끝내주게 싱그럽다.

이젠 가지와 들깨가 만나야 할 때. 들깨 간 거에 가지를 퐁당 빠뜨리고 마늘이랑 소금 조금 넣고 볶는다. 들깨가 눌어붙을 수 있으니 열심히 저으면서. 들깨가지볶음 옆에선 청국장이 끓는다. 이 또한 동생이 아주 좋아하는 반찬. 찌개도 가지볶음도 다 됐으니 한상 차려볼까. 밥이랑 깍두기만 얹으면 그만이군.  




동생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들깨가지볶음. 고소하고 담백하고 쫄깃하다. 가지가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실은 들깨가 가지를 휘어잡는다. 동생도 우유 같은 맛이 난다며 연신 감탄을! 맛있다니 기쁘고 고맙고 뿌듯하고. 듬뿍 했으니 많이많이 먹어라. 들깨가지볶음 한 접시 금세 싹. 구수한 청국장찌개 한 냄비랑 시원하게 아삭거리는 깍두기 한 접시까지 다 비우고야 산골점심은 끝났다. 내일이면 가는 동생한테 저녁엔 뭘 해줄까나. 된장찌개? 김치찌개?     


들깨 맛이 가지를 휘어잡는 들깨가지볶음. 고소하고 담백하고 쫄깃하다.


뜨끈 달콤 시원한 겨울 별미 

뜨끈 달달 호박죽, 달콤 구수 고구마, 시원 달큼 대봉, 쫀득 쫀득 곶감. 올해 거둔 늙은호박으로 올해 처음 호박죽 끓여먹는 날, 동생과 함께 산골 겨울 별미를 먹고 또 먹는다. 눈도 오지 달콤한 먹을거리로 기분 달달하지. 눈 오는 밤과 어울리는 노래 한 자락 부르지 않을 수 없네. “오늘도 눈 오는 밤 요것들 먹고 있네, 오늘도 눈 오는 밤 이 맛에 산골 사네~♬” 


뜨끈 달달 호박죽, 달콤 구수 고구마, 시원 달큼 대봉, 쫀득 쫀득 곶감.


텃밭에서 난 늙은호박으로 만든 '뜨끈 달달' 호박죽~


시원 달콤한 겨울 별미, 대봉 홍시.


호박죽도 곶감도, 가지볶음도 청국장찌개도 세상 누구보다 맛나게 먹어서 차려주는 내 맘을 때마다 뿌듯하게 해주던 여동생이 제 삶터로 돌아갔다. 쑥버무리랑 김장김치를 안고. 

쑥버무리 무진장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봄이면 봄마다 쑥을 뜯어야만 하고, 일본 김치 입에 맞지 않는다는 동생 때문에라도 겨울이면 겨울마다 김장을 꼭 해야만 하나니! 


동생을 터미널에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왜 그리도 맘이 저릿하고 아리던지.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기 때문일까, 그저 동생이라서 그런 걸까. 언니오빠들 보낼 때랑은 사뭇 다른 이 애틋함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동생이라서 그런 것도 같고. 동생이 뭐라고, 뭐기에….   


때깔만 봐도 먹음직스런 군고구마. 텃밭에서 거둔 고구마를 참숯에 구우니 달콤하고 구수하기 이를 데 없다.

동생이 무척이나 잘 먹던 호박죽이랑 군고구마 남은 걸로 저녁을 먹는다. 요것까지 다 먹이고 보냈음 더 좋았을 걸 못내 아쉽다.  동생이 탄 비행기가 지금쯤 일본 가까이 다가서고 있을 테지. 언니네 텃밭에서 난 먹을거리들 열심히 행복하게 먹었으니 고향 밥 힘으로 외로운 타국살이 따뜻하고 행복하게 보내길, 무엇보다 몸 건강 마음 건강하길 이 언니가 마음 깊이깊이 바라. 잔소리 많이 해서 미안하고, 들어줘서 고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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