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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May 21. 2018

친정(?)에 온 시어머니와
우주최강 남편이 만났을 때

부부의 날 옆지기에게 하고픈 말,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니까….’

싱그러운 오월, 산골짜기 작은 집에 시어머니가 홀로이 날아드셨습니다.  


지난해도 딱 이맘때 혼자 이박삼일 머물고 가시더니 이곳에 흠뻑 빠지셨는지 올해도 일찌감치 단독 예약을 하셨네요. 얼마나 머물지 궁금해서 전화로 슬쩍 여쭈었더니 저희 부부 일정도 확인하지 않고 대뜸 이러시네요.  


“토요일에 가서 월요일에 올 거다! 가서 머위 다 뜯어 올란다!”


시어머니가 애정하시는 산골 머위. 수육도 삼치도, 한우마저도 마다하시고 이박삼일 내내 머위전만 드셨어요. 


덕분에 때마침 조카들 데리고 놀러 오겠다는 남동생의 바람은 좌절되었지만 그래도 좋아요, 괜찮아요. 동생은 다른 때 다시 날 잡으면 되니까요. 청소 노동자로 지내시면서 긴 휴가 낼 수 있는 이때를 시어머니도 저희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시어머니께서 지난해 산골 여행 마친 뒤 서울로 가시면서 남긴 말씀이 너무나 강렬해서 말이에요. 혹 다른 예약이 있다 해도 무조건 무르고 시어머니를 모셨을 거예요. 그 말씀이 뭐냐고요?


혜원아, 내가 꼭 친정에 온 것같이 좋다.


저희 부부 산골로 가겠다고 처음 말씀드릴 때만 해도 몇 날 며칠 울기만 하셨던 시어머니였어요. 그랬던 분이 이제는 산골 집이 친정처럼 편하시다는데 이박삼일 아니라 일주일을 머문다 한들 도리가 있나요. 무조건 받아야지요. 저희 집에 발 딛는 순간부터,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어엿한 산골 손님으로 자리매김하시는 걸 경험했기에 제 아무리 시어머니라 해도 맞이하는 마음에 아무 부담이 없기도 하니까요.  


시어머니 오시는 날짜를 달력에 적은 남편. 엄니를 기다리는 애틋한 맘이 글자마다 촉촉히 묻어나는 듯해요.


예약 날짜 일주일 앞두고 시어머니한테 불쑥 전화가 왔어요. 


“혜원아, 너 오징어는 잘 먹지? 오징어 사다가 고추장에 볶아 먹을까?”


“아, 네…. 오징어 잘 먹기는 하지만 그걸 사 오시려고요?”


“그래, 지금 이거 저거 사려고 시장에 왔다. 물 좋은 걸로 얼려서 가져가련다.”


마냥 들뜬 목소리가 전화기 타고 전해 옵니다. 요즘 날이 더워서 오징어를 멀리서부터 가져오면 상할지도 모르는데,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얼른 옆지기한테 구원 요청을 보냅니다. 


“어머니, 오징어 가져오신다고요? 에이, 안 돼요. 그날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데 그러다 오징어 다 상해요. 저희랑 만나서 같이 시장에 가요. 그때 오징어 사면 되잖아요. 안 가져온다고 약속하세요.”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타이르듯이 어머니께 전화를 마친 옆지기에게 물었죠. 


“뭐라셔? 진짜 안 가져오신대? 말만 그렇게 해놓고 싸 오면 어떡하지?”


잘 말씀드렸으니 걱정하지 말라네요. 아, 다행이에요. 제가 말렸으면 서운해하셨을지 모르지만 셋째 아들 이야기니 아무래도 서운함 없이 그 말을 꼭 들으실 것만 같았거든요. 


시어머니 맞이할 첫 준비, 싱크대랑 가스대를 청소합니다. 한 번은 해야 할 일이었는데 시어머니 덕분에 부엌이 환해졌네요.


이젠 걱정 없이 시어머니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싱크대랑 가스대 청소하고, 냉장고도 치웁니다. 집에 드시면 분명 여기저기 열어 보실 거 아녜요? 지저분하다고 잔소리하실 분은 결코 아니지만, 일거리가 눈에 보이면 쉬지 않고 여기 치우고 저기 정리하실까 봐 미리 손을 쓰는 거지요. 쉬러 오셨는데 일만 하다 가시게 할 순 없잖아요. 


어차피 한 번은 했어야 할 일, 시어머니 덕분에 부엌이 아주 환해졌답니다. 어머니 눈길, 손길 닿을 만한 곳들 구석구석 치우면서 혼자 빙그레 웃었죠.


‘으흠, 이만하면 어머니가 오셔도 몸 움직일 거리는 없을 거야.
고생한 보람 있네!’


하지만 그건, 십 년 넘게 뵌 시어머니를 아직도 잘 모르는 셋째 며느리의 착각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답니다. 마음처럼 손도 큰 시어머니 관심은 집안일이 아니라 오로지 텃밭 일감에 꽂혀 있었다는 걸!  


손수 택배상자를 끌고 오신 시어머니. 손수레 들고 기차를, 그것도 입석으로 타고 오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지. 


드디어 대망의 시어머니가 오시는 날. 조금은 두근대는 마음 안고 기차역으로 마중을 갑니다. 저 멀리서 어머니가 보이네요. 그것도 작은 손수레까지 끌고! 다른 때는 택배상자에 온갖 구호식품을 담아 보내시더니 이번에는 손수 날라 오신 모양입니다. 기차표를 늦게 예매해서 입석으로 오셨다는데 저걸 지니고 다니느라 얼마나 힘드셨을지 마음이 아립니다. 


집에 와서 수레에 담긴 상자며 가방이며 열었더니 다양한 먹을거리가 잔뜩 쏟아집니다.  


커피믹스, 두유, 배즙, 요구르트 같은 마실 거리부터 떡, 부침가루, 튀김가루, 당면, 버섯, 파프리카, 볶은 소금, 볶은 참깨, 레몬, 우엉, 더덕무침…. 여기서 끝이었다면, 그동안 산골로 날아든 시어머니 택배상자에 인이 박힌 제가 그리 놀라지는 않았을 거예요.  


손수레에 실린 온갖 먹을거리들 하나하나 꺼내시는 시어머니. 
커피믹스, 배즙 같은 마실 거리부터 부침가루, 당면, 버섯, 파프리카, 볶은 소금과 참깨, 레몬, 우엉, 더덕무침…. 직접 가져오시니 택배로 보낼 때보다 뭔가 더 다채롭습니다.


온갖 먹을거리 다 꺼낸 뒤 상자 맨 밑에 검은 비닐봉지가 보입니다. 어머나, 세상에! 해바라기 씨, 들깨랑 돌나물 모종에 이어 생강이랑 돼지감자까지 나옵니다. 밭에 심으라고 그걸 다 서울에서 사 오셨다지 뭐예요. 


아이고, 이걸 어째요. 우리는 밭에 심을 거 다 심었는데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멀리서 가져오신 높고 큰 은혜를 받자와 이 구석 저 구석 텃밭 빈자리 찾아 꾸역꾸역 심었답니다. 오후 늦게 집에 오시자마자 밭부터 나가는 시어머니 덕분에 옆지기가 때 아닌 고생을 했지요.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저녁밥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미리 마련해 둔 나물이랑 머위전 부쳐 내고, 수육까지 부들부들하게 익혀서 상에 올립니다. 그러곤 술 전혀 안 하시는 어머님께 막걸리 잔을 건넸어요. 술 좋아하는 저희 부부 기분 맞춰 주려고, 막걸리 한 모금 정도는 입에 대시는 걸 알기 때문이죠.  


오후 늦게 집에 오시자마자 밭부터 나가는 시어머니 덕분에 옆지기가 때 아닌 고생을 했지요.
글쎄, 밭에 심으라고 돼지감자랑 생강까지 서울에서 가져오셨지 뭐예요!


뒤이어 어머님이랑 장 보면서 같이 산 케이크를 꺼냈습니다. 제 음력 생일까지 아직 좀 남았지만 얼굴 본 김에 축하해 주겠다면서 먹고 싶은 케이크로 직접 고르게 하셨죠. 케이크 선물에 이어 여왕님이 쓰는 왕관처럼 곱고 멋들어진 머리띠 선물까지 주셨답니다. 조카 도움으로 산 거라고 하시네요. 초등학교 때 말곤 써 본 적 없는 머리띠를 이 나이에, 산골에서 머리에 얹는 기분이 좀 묘해요. 거울을 보니 다행히 저랑 어울리는 것도 같아서 묘한 마음은 슬쩍 황홀함으로 갈아탑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오셨을 때도 시어머니께서 제 생일잔치를 열어 주셨네요. 그것도 손수 만든 꽃왕관을 선물로 주셔서 저를 감동의 바다에 풍덩 빠뜨리셨죠. 이번엔 은빛 머리띠로 또다시 저를 행복함에 폭 젖어들게 하시는 시어머니. 정말 고맙다는 말씀만으로는 이 애틋한 마음을 다 건네 드릴 수가 없었답니다. 부처님 같은 시어머니를 만나 참으로 행복하다고 속으로 되뇌이는 수밖에요.  


케이크 먹으며, 막걸리잔 비우며 시어머니랑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산골 저녁 밤. 여느 산골 손님들과 다르지 않게 어머니도 슬슬 사는 이야기를 풀어놓으십니다. 


아들딸 이야기, 손주 이야기, 그리고 청소 일 하는 사무실 사람들 이야기까지 줄줄이 이어지니 무척 재밌기는 한데 속으로 조금 민망하기도 했어요. 큰아들, 작은아들 그리고 큰며느리 작은며느리. 뒤이어 시누이 사는 이야기까지 전해 듣고 있자니 나도 며느린데,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하셔도 되나 싶던 거죠. 더구나 간간이 눈시울도 붉히시니 마음이 너무 짠해요. 모든 걸 다 품은 듯 너른 마음을 가진 시어머니도 속마음 풀어놓을 데가 필요하셨구나…. 


시어머니 덕분에 조금 이른 제 생일파티를 열었어요. 어머니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케이크랑 은빛 여왕 머리띠를 선물로 주셨지요.


웃다가 울다가 이 말씀 저 이야기 한참 하시던 시어머니께서 처음으로 시아버님 이야기도 꺼내셨어요. (꽤 이르게 하늘로 가셔서 저는 얼굴 한번 뵙지 못했답니다.) 누구누구 중매로 만나서 혼인을 했고, 무슨무슨 일을 하셨고….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아버님이 관광지나 공원 같은 데서 사진 찍는 일을 하셨대요. 그때 같이 다니면서 사진 찍는 법을 좀 익히셨다고 자랑을 하시지 뭐예요. 


그러더니 시아버님 흉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씀도 마구 펼쳐놓으시네요. 이른바 아버님이 남긴 어록(?) 같은 거예요.


밥에 돌이라도 보이면 ‘오늘 태풍 오나 보다’ 하셨다.
밥그릇 날라 갈까 봐 돌 넣었냐는 뜻이지.
음식이 좀 짜면 ‘집에 소금가마 들어왔나’ 그러고,
밥이 질면 ‘오늘 물 잘 나오나 보다’,
밥이 되면 ‘오늘 물 안 나오나’ 이러셨어.


더듬더듬 아버님과 이어진 추억을 꺼내는 어머님 얼굴이 참 행복해 보입니다. 버릇없는 며느리가 가만있을 수 있나요. 대뜸 어머니를 놀려드렸지요.


“어머니, 아버님이랑 진짜 사이좋으셨나 봐요. 아버님 많이 사랑하셨죠?” 


대답 대신 그저 흐뭇하게 웃으시더니 또 한 말씀 남기셔요.


“네 아빠가 음식이 맛없어도 잘 드셔 가지고 내가 음식 솜씨가 안 늘었다. 그리고 설거지며 집안일도 많이 하셨어.” 


“아, 그래요? 이 사람이 아버님 닮아서 집안일 잘하고, 엉뚱한 말도 잘 던지나 보네요. 말도 행동도 엄청 재밌거든요. 이제 보니 제가 행복한 건 다 아버님 덕분이었네요.” 


그랬더니 옆에 있던 남편이 말을 보태요. 


“아버지만 그러신 건 아니죠. 어머니도 만만치 않았어요. 왜 있잖아요, 운동화에 흙 가득 묻혀 집에 들어가면 혼내기보단 ‘집 지으려고 흙 가져왔냐’ 웃으며 그러셨죠.”


“어머, 보통 엄마들은 그럴 때 애들 혼내기 십상인데 어머님은 그러지 않으셨네요?”


“나는 애들 혼내고 그런 적 없다. 아, 참. 한 가지 또 생각나네. 얘가 어릴 때 뭐 쥐어주면 ‘고맙데라’ 하고 말하는데 그게 어찌나 이쁘던지 애들 아빠가 그 소리 또 듣고 싶어서 자꾸 뭐 주고 또 주고 그랬어.”  


“그래요? 여보, 그때 생각나? 다시 한 번 해줘 봐.”


그랬더니 기억나지 않는데요. 정말 한참 어릴 때였나 봐요. 그래도 어머니 앞이라 그런지 냉큼 그 말을 던져 주네요. 


어머니, 고맙데라~, 고맙데라!
^^


아저씨(?) 입에서 흘러나오는 굵은 목소리에 꼬마 아이 얼굴이 스르륵 겹쳐집니다. 그 모습과 소리에 시어머니도 저도 함박웃음이 터집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그리운 시아버님께 처음으로 한 말씀 올렸어요. 


“아버님 닮아서 참 멋지고 마음도 무지 넓은, 우주최강 남편이랑 살아갈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아버님, 정말 정말 고맙데라….”        


지난해 오월에도 시어머니가 단독 여행을 오셨어요. 그때는 마당에 난 풀과 꽃으로 손수 꽃왕관을 만들어 씌워 주셨답니다.


이른 생일잔치를 벌인 다음 날. 새벽부터 비가 쏟아집니다. 


내가 저 밭 다 매려고 왔는데 어쩌려고 이리 비만 계속 오냐…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시어머님은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십니다. 하지만 저는 하늘님께 참 고마웠어요. 다행히 비가 와서 망정이지 날이 좋았으면 새벽부터 종일 일만 하다 가실 게 뻔할 테니까요. 안 그래도 칠십 대 후반 연세에 아파트 청소하시느라 온몸이 힘드실 텐데, 여기까지 와서 또 일하시면 제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요.


뭐라도 움직일 거리를 드려야 어머님이 마음 놓으실 것 같은 얄팍한(?) 마음에 잡채를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당면이랑 버섯이랑 파프리카까지 잡채 거리를 잔뜩 사들고 오셨으니 만들기만 하면 되거든요. 그리고 들깨 갈아서 머위볶음도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렸죠. 그러곤 저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실은 컴퓨터 앞에서 해야 할 밀린 일감이 있었거든요. 


저만 빼고(?) 사이좋게 두런두런 부엌에서 먹을거리 만드는 시어머니와 남편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어요.
어머니는 잡채랑 들깨머위볶음을, 남편은 어머니가 들고 온 레몬으로 레몬청을 만듭니다.


시어머님과 남편이 부엌에서 이것저것 만드는 동안 저는 방 안에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중간중간 부엌으로 나가 두런두런 먹을거리 만드는 어머니와 아들의 뒷모습, 앞모습을 바라봅니다. 참 행복해 보여요. 문득, 부러움이 확 밀려옵니다. 나도 우리 엄마랑 저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걸요. 시아버님처럼 친정엄마도 하늘에 가신 지 이미 너무 오래됐으니까요. 


저 빼고(?) 사이좋게 부엌과 마루를 오가는 두 사람. 다른 때 같으면 불타는 질투심에 휩싸였을지도 모르는데 저도 조금은 철이 들었나 봐요. 그 모습이 참 예쁘게 보이네요. 제가 못해 본 일, 남편이라도 할 수 있어서 고맙고 다행스럽기까지 하고요. 덕분에 저는 맘 편하게 밀린 일감을 마무리할 수 있었답니다. 시어머니가 차려준 밥상까지 받아먹으면서요. 어머님이 친정에 오신 게 아니라, 꼭 제가 친정집에 와 있는 기분까지 들었답니다.      


나물 빼고는 다 시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산골 밥상, 편하게 맛있게 잘 받아먹었습니다.


오후가 되니 비가 조금 잦아들었어요. 그랬더니 시어머니께서 냉큼 밖으로 나가십니다. 어쩔 수 없이 비옷 들고 뒤따라 나선 옆지기. 잔잔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두 사람은 이 밭 저 골에 있는 잡초를 뽑습니다. 우리 집에선 가장 부지런한 남편이라지만 시어머니의 바지런함에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네요. 저도 더는 시어머니 말릴 생각을 접습니다. 밭에 계실 때, 그래서 자식들 일손 조금이라도 덜어 주어야만 행복하신 어머니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으니까요. 


그렇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밭에 머물고 있는 두 사람을 저는 또 창밖으로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어머니 옆에서 투덜대고는 있지만 옆지기의 행복한 마음이 빗줄기 타고 제 마음으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오네요. 그래서 눈빛으로 슬쩍 말을 건넸어요. 


‘당신, 지금 참말 행복하지?
우리 앞으로도 어머니랑 이런 시간 자주 만들자.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니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잡초를 뽑는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의 행복한 마음이 빗줄기를 타고 제 마음으로 흘러들어옵니다.
비가 조금이라도 잦아들면 밭으로 마당으로 뛰쳐나가시는 시어머니. 도시에서 죽 자라셨다는데도 밭일을 참 잘하십니다.


부엌일에 밭일에 하루해가 저물고 드디어 시어머니 산골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이날도 비가 조금씩 내리네요. 시어머니께 더는 미룰 수 없는 마지막 일감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머위 뜯기! 


오기 전부터 머위, 머위 하시더니 밥상에 오른 수육, 삼치구이도 장수에서 유명한 한우마저도 마다하시고 자꾸 머위전만 드셨답니다. 그게 그렇게 맛나대요. 


이박삼일 동안 아들 며느리 안타깝게끔 머위전만 드시더니, 급기야 머위 잔뜩 뜯어 서울 가서 사무실 사람들하고 먹겠다면서 다시금 빗속을 뚫고 앞산으로 진출하셨어요. 저 멀리 보랏빛 비옷을 입은 어머니 모습을 바라봅니다. 푸르른 나무와 풀과 어우러진 자태가 참 아름다웠어요. 저렇게나 멋진 시어머니를 둔 제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답니다. 


내리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머위를 뜯는 시어머니 모습이 풀과 나무와 어우러져 참 아름답습니다.


점심 먹고 기차역으로 어머니를 배웅하는 길. 머위랑 이거 저거 싸드리니 가져오신 손수레가 또 꽉 찹니다. 받기만 해서 늘 죄송했는데, 자연이 내준 선물이라도 잔뜩 드릴 수 있어서 참 흐뭇하고 행복해요. 저걸 끌고 기차에 싣고, 지하철 타고, 집까지 가시는 길이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요.


그리고 미리 드리면 집에 두고 가실 게 뻔해서, 용돈 조금 봉투에 담아서 기차역에서 드렸어요. 얇은 봉투가 멋쩍어 글자라도 꾹꾹 채워 봅니다. 달마다 챙겨 드리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까지 가득 담아서…. 


어쩌다 한 번 건네드리는 용돈 봉투. 얇은 봉투가 멋쩍어 글자라도 꾹꾹 채워 봅니다.
세상에 막 얼굴 내민 제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첫 장에 사인과 편지글을 담아 시어머니께 택배로 띄어 보냈어요.


플랫폼으로 걸어가는 어머니와 남편의 뒷모습. 어머니 떠나보내는 옆지기의 애틋한 마음에 절로 감정이입이 돼버리네요. 그 마음이 꼭 내 마음 같아서 시릿하고 애잔하고. 제가 이러할진대 남편 마음은 어땠을지….  


어머니가 서울로 가신 지 며칠 지나서, 제 이름으로 세상에 내보이는 첫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산골 혜원 작은 행복 이야기>가 집에 도착했어요. 어머님 이야기도 뜨끈하게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책 첫 장에 정성껏 사인을 적어 택배로 띄워 보냈습니다. 시어머니표 택배상자를 징검다리 삼아 늘 가없는 사랑을 받기만 했는데 저도 드디어 어머님께 택배상자를 보낼 수 있게 되었네요!  


여기서 지내는 동안 어머니 덕분에 잘살고, 잘 먹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237쪽에 어머님 이야기도 담겨 있으니 읽어 주세요~^^
언제나 고맙고 사랑합니다.
그리구, 수현 씨 낳아 주시고 길러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우주에서 가장 멋진 남편이 있어서 참 행복해요!
_ 산골짜기 혜원 올림 


플랫폼으로 걸어가는 시어머니와 키 큰 남편의 뒷모습이 시리도록 애잔합니다.
기차가 오기 몇 분 전, 시어머니와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제 아린 마음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많이 서운하고 아쉬웠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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