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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un 16. 2018

이 고운 딸기 때문에라도
산골을 떠날 수 없을 거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딸기의 한해살이 

텃밭 한 귀퉁이를 차지한 딸기밭. 지난 새봄, 모든 밭이 흙빛으로 가득할 때 가장 먼저 푸릇한 잎을 내더니 어느 순간 좌르륵 하얀 꽃이 피어났다. 마치 혁명처럼! 그 새하얀 꽃이 새빨간 딸기 열매가 되다니, 몇 번이나 겪었음에도 늘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지. 


텃밭 한 귀퉁이를 차지한 딸기밭.  새봄, 모든 밭이 흙빛으로 가득할 때 가장 먼저 푸릇한 잎을 내더니 어느 순간 좌르륵 하얀 꽃이 피어났다. 마치 혁명처럼!


톱니처럼 둥글둥글 뾰족뾰족한 잎 사이로 드디어 푸릇한 빛깔이 보인다. 하얀 꽃잎이 하나둘 진 그 자리에 올망졸망 도톰한 열매가 맺힌 모습. 경이롭다, 정말 경이롭다! 빨간 딸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마치 사랑하는 이를 그리는 듯 두근두근 설레는구나.


3월 들어 잎이 나고 4월 맞아 꽃이 피더니 싱그러운 오월, 드디어 빨갛게 익은 딸기. 첫 딸기를 눈앞에 둔 순간, 헤어진 첫사랑을 만난데도 이렇게 두근대지는 않을 듯한 설렘이 물결을 친다.  


둥글둥글 뾰족뾰족한 잎 사이로 드디어 푸릇한 빛깔이 보인다. 하얀 꽃잎이 하나둘 진 그 자리에 올망졸망 도톰한 열매가 맺힌 모습. 경이롭다, 정말 경이롭다!


요 이쁜 딸기를 먹기가 참말 아깝지만 크게 심호흡하고 한입 베어 문다. 


새콤한 첫맛, 짭짤하게 달콤한 뒷맛. 아, 얼마나 그리던 맛이던가! 

딸기에 무수히 박힌, 참깨처럼 오돌토돌한 씨들이 입 안에서 톡톡 터진다. 씹는 맛까지 더해진 텃밭 딸기. 시장에서 파는 그 어느 딸기에서도 맛보지 못한 황홀한 경지로세. 딸기를 머금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행복에 겨운 나는, 아무도 듣는 사람 없음에도 큰소리로 외친다.


“이렇게 예쁘고 맛있는 딸기 때문에라도,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산골을 떠나지 않을 테야!”      

첫 딸기를 눈앞에 둔 순간, 헤어진 첫사랑을 만난데도 이렇게 두근대지는 않을 듯한 설레임이 물결을 친다.
산골 집에 날아든 도시 손님들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딸기밭으로 달려간다.


산골 집에 날아든 도시 손님들도 여지없이 딸기밭으로 달려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빨간 딸기 앞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땡볕 아래 한 바구니 가득 딸기를 따고, 씻고 함께 나누어 먹는다. 


가끔 딸기가 먹고 싶어도 저절로 참게 되는 건, 딸기 앞에서 한없이 행복에 겨운 산골 손님들 때문. 밭이 넓지 않으니 거기서 나는 열매는 그리 많지 않고, 나야 해마다 만나는 풍경이니 찾아오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게 먼저니까.


딸기 하나만으로도 한없이 행복했던 따스한 봄이 슬며시 저물고, 살금살금 뜨거운 여름이 찾아들던 유월 어느 날. 시리도록 빠알간 아니, 빨갛다 못해 자칫 물러질 만큼 익어버린 딸기들을 보았다. 잎과 줄기 사이에 아슬아슬 매달린 딸기를 바구니에 담는다. 마지막 딸기였다. 


새콤한 첫맛, 짭짤하게 달콤한 뒷맛! 작은 딸기밭에서 틈날 때마다 따 올린 딸기들은 그때마다 맛도 모양도 달라서 딸기밭에만 가면 행복에 겨운 웃음이 절로 났다.  


첫 딸기는 그토록 새콤달콤하고 아삭했는데, 마지막 딸기는 물렁하면서도 달큼한 맛이 좀 덜한 듯했다. 물론 입을 행복하게 만들기엔 충분했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시릿한 마지막 딸기를 조금 다르게 맛보고 싶었다. 딸기를 얼려서 믹서에 갈았다. 오로지 딸기만으로 빛어 낸 총 천연 딸기 셰이크! 너무 맛있어서 감동하고, 이제 더는 이 고운 딸기를 만날 수 없음에 아쉬움이 밀려와 눈물마저 찔끔 나려 한다.    


팔십대 후반 마을 할아버지 말씀이, 올봄은 날씨가 참말 이상하더란다. 사월에 눈이 내리고, 오월에 찌는 듯이 덥고. 농사가 어찌 될는지 걱정이라는 말씀을 가만히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다가도 슬며시 딴생각이 밀려온다. 


‘제 아무리 요상한 날씨라지만 딸기는 지난해도 올해도 거의 같은 때에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는걸? 딸기의 삶은 어쩜 이리 용할까. 우리 딸기, 정말 장하다, 장해!’   


너무 익어 물러버린 마지막 딸기로 만든 천연 셰이크. 눈물나게 맛있었다.


첫 딸기를 만난 건 5월 중순. 마지막 열매와 헤어진 건 그로부터 한 달여 뒤. 딸기와 함께 그렇게 봄날은 왔다가 갔다. 조금 슬프고 많이 아쉽지만 서럽지는 않다. 지금 딸기는 졌어도, 내년에 다시 또 새빨갛게 고운 열매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날 거라는 사실을 믿기에. 


더는 딸기가 없음에도 자꾸만 딸기밭으로 발길이 쏠린다. 빨간 열매 사라진 자리에 여전히 푸릇한 잎들. 애틋한 마음에 노래 한자락 가만히 읊조려 본다. 내년에 다시 만날 그날을 애잔한 마음으로 떠올리며, 기다리며….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혼자 먹기엔 정말 너무 아까웠던, 이 고운 딸기와 함께 그렇게 봄날은 왔다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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