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Feb 15. 2018

눈이 눈을 밀고,
상처가 상처를 밀어내고

미처 눈치 못 챈, 너무 깊숙이 아파버린 어떤 마음……

오늘 해님은 어제보다 따스했는지 눈이 물로 바뀌는 소리가 한여름 논 개구리 소리마냥 크게 울린다. 며칠 전부터 지붕에 고요하게 앉아 있던 눈들이 이제야 조금씩, 조금씩 밀려 내려온다. 해님 기운 받자와, 눈이 눈을 밀어낸다. 좀 빨리 떨어진 눈은 물이 되어 땅으로, 좀 늦게 떨어진 눈은 해님 사라진 그 순간 고드름으로 바뀌고. 


따스한 해님 기운을 받아, 눈이 물로 바뀌는 소리가 한여름 논 개구리 소리마냥 크게 울린다


천천히 밀려 내려가는 지붕 위 눈을 보니 우리네 마음속 상처도 천천히, 조금씩 밀어내야 자연스러운 거겠구나, 싶다. 한 번에 억지로 다 밀어내려 하지 말고, 마음에 햇볕이 다가온 그 순간, 그 햇볕이 허락하는 딱 그만큼만 내 마음에서 멀어져 가는 상처들을 바라보면 되지 않을까. 마음에 다가온 햇볕을 억지로 막으려 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간 다 녹기는 할 것이다. 지붕 위에 쌓인 눈이 녹듯 사람의 상처란 것도. 


천천히 밀려 내려가는 지붕 위 눈을 보니 우리네 마음속 상처도 천천히, 조금씩 밀어내야 자연스러운 거겠구나, 싶다.


내 마음이 추워지면 상처가 빈 그 자리에 다시 또 새로운 상처가 들어앉을 테지. 상처도 빈자리가 있어야 들어온다. 들어오지 못하고 튕겨져 나간 상처는 다른 이들 가슴 속 빈자리라도 찾아 들어가, 그이를 아프게 할 수 있다. 내 마음이 너무 춥다고 내 마음만 생각하고, 내게 오는 상처들 오롯이 끌어안지 못해 다른 이 마음 시리게 한 적 없는지……. 내 마음이 좀 따뜻해진 지금에야 더듬더듬 되돌아본다.  


내 마음이 너무 춥다고 내 마음만 생각하고, 내게 오는 상처들 오롯이 끌어안지 못해 다른 이 마음 시리게 한 적 없는지…….


고드름이 녹는다. 이제 다 녹았다. 그리고 내 마음도 녹는다. 조금 지나면 또 고드름이 생길 텐데, 내 마음에 더는 고드름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 마음이 추워지는 건 슬프니깐. 


다시, 찬찬히, 오래 들여다봐야 한다

지붕과 질기게도 공생하던 눈이, 해님의 온기로 다 녹았다. 저 눈이 언제 다 사라질까 궁금했는데 그게 지금이었네. 눈 덕에 말끔하게 씻긴 천장 너머로 눈이 가렸던 하늘이, 숲이 보인다. 내 마음도 맑고 시원하게 뚫린다. 눈과 함께 마음속 찌꺼기도 확 사라진 것만 같아서  속으로 외쳤다. ‘저 눈과 함께 내 상처들도 다 녹았다. 와라! 새로운 상처들아. 폭설처럼만 쌓이지 않는다면 다 받아주겠다!’ 그렇게 혼자 싱글거리다 뭔가 보인다.

 

다 녹은 듯 보였는데 오롯이 다는 아니었다. 내 상처 다 녹았노라고 호기롭게 외쳤던 내 마음부터 다시 들여다봐야지 싶다.


햇볕 덜 드는 오른쪽 지붕에 얇고도 흐릿하게 남은 눈. 그리고 거기보다 더 햇볕이 덜 드는 창고 처마 밑에 매달린 얇고 길쭉한 고드름. 다 녹은 듯 보였는데 오롯이 다는 아니었다. 내 상처 다 녹았노라고 호기롭게 외쳤던 내 마음부터 다시 들여다봐야지 싶다. 마음 저 끝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 따스한 햇볕 앞에서도 차마 놓아버리지 못한, 나도 미처 눈치 못 챈, 너무 깊숙이 아파버린 어떤 마음을. 


다 녹은 것 같아도 다시, 찬찬히, 오래, 들여다봐야 한다.  함께 녹지 못한, 녹을 수 없던 그 까닭을, 그 아픔을.


그리고 또! 아슬아슬하게, 가냘프게 매달려 있는 저 고드름처럼 보이지 않게 혼자 아프고 있을 다른 누군가의 상처도. 다 녹은 것 같아도 다시, 찬찬히, 오래, 들여다봐야 한다. 모두가 다 녹아내릴 때 함께 녹지 못한, 녹을 수 없던 그 까닭을, 그 아픔을. 

작가의 이전글 고드름 먹고, 고라니도 만나는 산골짜기 작은 겨울왕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