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골짜기 혜원 Feb 18. 2018

시처럼 사는 여자, 오늘 하루만큼은!

해님을 가리는 ‘낮은 산’이 안겨준 행복과 넉넉함

해가 활짝 떴다. 하지만 마당 바로 앞에 있는 낮은 산 덕분에 우리 집은 해가 아주 늦게 찾아오신다. 이 삶터에서 첫겨울을 보낼 때, 저 낮은 산이 해를 가로막는 시간이 참 길었다. 예상한 것보다 좀 심각하게! 겨울만 들어서면 우리 집 앞마당은 그야말로 동토의 땅이 되었나니. 

 

정말 부끄럽게도, 저 산을 확 밀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여러 번. 특히나 산 밑 텃밭에서 힘겹게 겨울을 보내고 있을 마늘, 양파가 걱정될 때면 더 그랬지. 추운 집 난방 걱정은 기본이고.  


마당 앞 낮은 산 덕분에 겨울이면 해님이 아주 늦게늦게 고개를 내민다.


저 산 아래서 세 번째 겨울을 보내는 지금. 산이 있어서 참 다행이고 좋기까지 하다. 마당 앞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고라니도 보고, 산새도 만나고. 나무들이 사철 어찌 모습을 바꾸는지 생생하게 마주치고, 산 밑 튼실한 밤나무 한 그루에서 떨어진 밤만으로도 여러 사람 행복했고. 이렇게 해님 얼굴 언제 나오시려나,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도 가져보고.

 

우리가 조금 춥게 살고, 농작물이 좀 더디게 자라고 하면 될 것을 감히, 산을 원망했다. 산에게 미안하다. 부끄럽다. 하루에도 몇 번씩은 저 산을 지긋이도 멍하게도 바라보는 시간,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젠 저 산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 


오후 네 시가 넘으니 해님은 그세 모습을 감추고 똑똑 녹아내리던 눈은 고드름으로 바로 모습을 바꾸었다. 저 고드름은 내일 또 다시 떠오를 해님께 아무 의심 없이 제 몸을 맡기고 아래로, 아래로 땅으로, 땅으로 떨어질 테지. 마을에 있는 다른 집보다 늦게 늦게 해님이 찾아와 주시는 곳이니 눈이 녹는 소리도, 고드름도 다른 집보다 더 길게 듣고, 볼 수 있을 게다. 이 또한 낮은 산이 준 선물.  


날마다 산을 바라보는,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 집, 남향이 아니라 '산향'이라고 해야 맞을 듯!


설계도면으로 보면 분명 남향에 준하게 지은 우리 집. 이제 보니 ‘산향’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귀농귀촌 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조언이자 철칙 일 순위! ‘집은 남향으로 지어라.’ 지금도, 앞으로도 귀담아들어야 할 지당한 말씀이다. 그리 해야 맞다, 좋다. 나도 저 철칙을 어떻게든 따르고 싶었다. 하지만 산 덕분에 어설픈 남향이 된 이 삶터에서 ‘산향’이 주는 행복과 넉넉함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추우니까 해를 기다리게 되고, 기다리다 보니 산 사이로 조금씩 제 모습 드러내는 해님의 소중함도 느끼게 된 것이니, 이 행복함과 넉넉함은 겨울이 준 선물이기도 하다. 낮은 산과 겨울이 안겨준 귀한 선물을 오래오래 간직하며 살고프다.


아침에 일어나 파란 하늘을 본다.
너무나 많은 인생의 놀라움에
방금 배달된 갓 구운 스물 네 시간에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햇살로 목욕한 숲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
_팃낙한 


어제 저 시를 만났다. 시어 하나하나가 마음에 탁 안기더라. 시 덕분이겠지. 날마다 보던 하늘이, 마당 바로 앞 숲이 어느 때보다 다르게 보인다. 


햇살로 목욕한 숲을 날마다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내 삶에서 참 놀라운 일임을 알겠다.


파란 하늘, 햇살로 목욕한 숲을 날마다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내 삶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임을 알겠다. 오늘 내게 배달된 따끈따끈한 이 하루를 고맙고 행복하게 보내야겠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시처럼 사는 여자가 되었다. 시 덕분에, 그리고 자연과 가까이 살고 있는 덕분에…. 


시도, 하늘도, 해님도, 숲도, 모두모두 고맙다.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작가의 이전글 눈이 눈을 밀고, 상처가 상처를 밀어내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