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을 가리는 ‘낮은 산’이 안겨준 행복과 넉넉함
해가 활짝 떴다. 하지만 마당 바로 앞에 있는 낮은 산 덕분에 우리 집은 해가 아주 늦게 찾아오신다. 이 삶터에서 첫겨울을 보낼 때, 저 낮은 산이 해를 가로막는 시간이 참 길었다. 예상한 것보다 좀 심각하게! 겨울만 들어서면 우리 집 앞마당은 그야말로 동토의 땅이 되었나니.
정말 부끄럽게도, 저 산을 확 밀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여러 번. 특히나 산 밑 텃밭에서 힘겹게 겨울을 보내고 있을 마늘, 양파가 걱정될 때면 더 그랬지. 추운 집 난방 걱정은 기본이고.
저 산 아래서 세 번째 겨울을 보내는 지금. 산이 있어서 참 다행이고 좋기까지 하다. 마당 앞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고라니도 보고, 산새도 만나고. 나무들이 사철 어찌 모습을 바꾸는지 생생하게 마주치고, 산 밑 튼실한 밤나무 한 그루에서 떨어진 밤만으로도 여러 사람 행복했고. 이렇게 해님 얼굴 언제 나오시려나,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도 가져보고.
우리가 조금 춥게 살고, 농작물이 좀 더디게 자라고 하면 될 것을 감히, 산을 원망했다. 산에게 미안하다. 부끄럽다. 하루에도 몇 번씩은 저 산을 지긋이도 멍하게도 바라보는 시간,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젠 저 산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
오후 네 시가 넘으니 해님은 그세 모습을 감추고 똑똑 녹아내리던 눈은 고드름으로 바로 모습을 바꾸었다. 저 고드름은 내일 또 다시 떠오를 해님께 아무 의심 없이 제 몸을 맡기고 아래로, 아래로 땅으로, 땅으로 떨어질 테지. 마을에 있는 다른 집보다 늦게 늦게 해님이 찾아와 주시는 곳이니 눈이 녹는 소리도, 고드름도 다른 집보다 더 길게 듣고, 볼 수 있을 게다. 이 또한 낮은 산이 준 선물.
설계도면으로 보면 분명 남향에 준하게 지은 우리 집. 이제 보니 ‘산향’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귀농귀촌 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조언이자 철칙 일 순위! ‘집은 남향으로 지어라.’ 지금도, 앞으로도 귀담아들어야 할 지당한 말씀이다. 그리 해야 맞다, 좋다. 나도 저 철칙을 어떻게든 따르고 싶었다. 하지만 산 덕분에 어설픈 남향이 된 이 삶터에서 ‘산향’이 주는 행복과 넉넉함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추우니까 해를 기다리게 되고, 기다리다 보니 산 사이로 조금씩 제 모습 드러내는 해님의 소중함도 느끼게 된 것이니, 이 행복함과 넉넉함은 겨울이 준 선물이기도 하다. 낮은 산과 겨울이 안겨준 귀한 선물을 오래오래 간직하며 살고프다.
아침에 일어나 파란 하늘을 본다.
너무나 많은 인생의 놀라움에
방금 배달된 갓 구운 스물 네 시간에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햇살로 목욕한 숲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
_팃낙한
어제 저 시를 만났다. 시어 하나하나가 마음에 탁 안기더라. 시 덕분이겠지. 날마다 보던 하늘이, 마당 바로 앞 숲이 어느 때보다 다르게 보인다.
파란 하늘, 햇살로 목욕한 숲을 날마다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내 삶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임을 알겠다. 오늘 내게 배달된 따끈따끈한 이 하루를 고맙고 행복하게 보내야겠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시처럼 사는 여자가 되었다. 시 덕분에, 그리고 자연과 가까이 살고 있는 덕분에….
시도, 하늘도, 해님도, 숲도, 모두모두 고맙다.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