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태를 심은 유월의 어느 더운 날에

자연을 닮아 가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by 산골짜기 혜원

마늘을 거두었습니다.

“뿍뿍” 소리가 납니다.

뽑아내기가 꽤 힘이 듭니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햇수로는

2년을 땅속에 있던 마늘.

여지없이 작고 작지만

두 해 걸친 생명력이

흙 묻은 뿌리부터 오롯이 묻어납니다.


20200608_134604.jpg 햇수로 2년을 땅속에 있던 마늘을 뽑았습니다.


올해 마늘이 유래 없는 풍년이랍니다.

참 좋은 일인데, 슬픈 뉴스가 들립니다.

마늘값이 마구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마늘밭 갈아엎는 곳이 많다고 하네요.

2년 걸린 농사를 포기하는

그 아픔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두어 망쯤 될까 말까 하는 마늘을 거두고는,

마냥 흐뭇해하던 제 모습이

왠지 부끄럽습니다.


농사가, 농부의 땀이

올곧게 자리매김하는 세상을 위해

작은 텃밭 농부는 무얼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20200608_134525.jpg 여지없이 작고 작은 마늘이지만 두 해 걸친 생명력이 흙 묻은 뿌리부터 오롯이 묻어납니다.


많이 거두지 못하고

두루 나누지 못하는

서툰 농사일지라도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조금씩 하나씩 배우고 익히며

지금처럼, 지금보다 좀 더 정성껏

걷는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아직까지는요.


그런 마음을 다잡으며

마늘 뽑은 자리를 갈고 다듬어

서리태를 심습니다.


20200609_170430.jpg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조금씩 배우고 익히며 살아가고픈 마음으로 서리태를 심습니다.


검고 단단한 콩알을

땅에 쑥쑥 밀어 넣으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지금 삶터에서는

콩 농사가 처음입니다.


하늘이 보내는 날씨 따라

농부의 발걸음 따라

거두는 양이 달라지겠지만,

설마 서리태 심은 자리에

팥이 날 리는 없겠지요? ^^


두 해 동안 마늘을 품고 있다가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콩알을 거두어 주는 텃밭을 봅니다.

참 고맙습니다.


20200609_171117.jpg 두 해 동안 마늘을 품고 있다가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콩알을 거두어 주는 땅이 참 고맙습니다.


마늘처럼 알싸하게

서리태처럼 단단하게

땅처럼 넉넉하게

그렇게 자연을 닮아 가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마도 농사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 테지만

제 마음밭에 그 작은 꿈 하나 품어 봅니다.

마늘 뽑은 땅에 서리태를 심은

유월의 어느 더운 날에.


20200609_170557.jpg 서리태처럼 단단하게 땅처럼 넉넉하게, 그렇게 자연을 닮아 가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 일 저 일 몸 좀 부렸다고

하루를 마감하며

노동요 하나 불러 보고 싶네요.

유월의 어느 날에

어울리는 노래 같지는 않지만요.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_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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