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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un 10. 2020

서리태를 심은 유월의 어느 더운 날에

자연을 닮아 가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마늘을 거두었습니다.

“뿍뿍” 소리가 납니다.

뽑아내기가 꽤 힘이 듭니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햇수로는

2년을 땅속에 있던 마늘.

여지없이 작고 작지만

두 해 걸친 생명력이

흙 묻은 뿌리부터 오롯이 묻어납니다. 


햇수로 2년을 땅속에 있던 마늘을 뽑았습니다. 


올해 마늘이 유래 없는 풍년이랍니다. 

참 좋은 일인데, 슬픈 뉴스가 들립니다. 

마늘값이 마구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마늘밭 갈아엎는 곳이 많다고 하네요. 

2년 걸린 농사를 포기하는 

그 아픔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두어 망쯤 될까 말까 하는 마늘을 거두고는, 

마냥 흐뭇해하던 제 모습이

왠지 부끄럽습니다.


농사가, 농부의 땀이 

올곧게 자리매김하는 세상을 위해

작은 텃밭 농부는 무얼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여지없이 작고 작은 마늘이지만  두 해 걸친 생명력이  흙 묻은 뿌리부터 오롯이 묻어납니다.


많이 거두지 못하고

두루 나누지 못하는 

서툰 농사일지라도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조금씩 하나씩 배우고 익히며

지금처럼, 지금보다 좀 더 정성껏

걷는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아직까지는요. 


그런 마음을 다잡으며 

마늘 뽑은 자리를 갈고 다듬어    

서리태를 심습니다.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조금씩 배우고 익히며 살아가고픈 마음으로 서리태를 심습니다.


검고 단단한 콩알을

땅에 쑥쑥 밀어 넣으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지금 삶터에서는 

콩 농사가 처음입니다. 


하늘이 보내는 날씨 따라 

농부의 발걸음 따라

거두는 양이 달라지겠지만,

설마 서리태 심은 자리에

팥이 날 리는 없겠지요? ^^


두 해 동안 마늘을 품고 있다가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콩알을 거두어 주는 텃밭을 봅니다. 

참 고맙습니다. 


두 해 동안 마늘을 품고 있다가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콩알을 거두어 주는 땅이 참 고맙습니다.


마늘처럼 알싸하게

서리태처럼 단단하게

땅처럼 넉넉하게

그렇게 자연을 닮아 가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마도 농사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 테지만

제 마음밭에 그 작은 꿈 하나 품어 봅니다. 

마늘 뽑은 땅에 서리태를 심은 

유월의 어느 더운 날에.  


 서리태처럼 단단하게  땅처럼 넉넉하게,  그렇게 자연을 닮아 가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 일 저 일 몸 좀 부렸다고

하루를 마감하며

노동요 하나 불러 보고 싶네요.

유월의 어느 날에 

어울리는 노래 같지는 않지만요.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_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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