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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un 07. 2020

제 머리 깎는 산골 미용사

”못생긴 내 얼굴 맨 처음부터 못생긴 걸 어떡해~♪”

오롯이 나만을 위한 

산골 미용실을 열었다.

어느덧 푹푹 찌는 여름 날씨. 

덥수룩한 머리가 답답도 하지만 

슬슬 산골 겨울잠에서 깨어나

사람들 만날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제 머리 깎는 산골 미용사 노릇을 하면서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어쩔 수 없이 보고 또 본다.

에효, 퉁퉁하게 붓고 못생겼다.ㅠㅜ    


제 머리 깎는 미용사 노릇을 하면서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어쩔 수 없이 보고 또 본다.


산골은 겨울도 봄도

코로나와 상관없이 흘렀건만 

어쩌다 ‘적찐자(적당히 찐 자)’가 되었나 보다. 

무기력하다고 안 움직이고

어깨, 허리 아프다고 가만있고,

인과응보이지 별수 있나.   


거울 밑에 머리카락이 수북하다.  

마음의 군더더기라도 덜어낸 듯

뭔가 홀가분하다. 


때마다 어김없이 잘림을 당하면서도

자라고 또 자라는 머리카락.

어쩌면 번뇌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잘리고 또 잘려도 어김없이 자라나는 머리카락. 어쩌면 번뇌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고통의 바다라고 했거늘,

마음속에 괴로움 없기를

내 어찌 바랄 수 있으리. 

머리카락 길어지는 걸 

내 힘으로는 막을 수 없듯이.


답답한 머리카락을 자르는 건

스스로 하든 남에게 맡기든 

어찌어찌 될 수는 있으나, 

너무 커져 버린 번뇌를 

적절한 순간에 끊어내는 용기와 지혜는 

언제나 어렵다는 게 

좀 다르다면 다를까. 


조금 전까지 내 몸과 함께였던

검은 머리카락 뭉치를 퇴비장에 붓는다. 

내 몸을 떠났으나 땅으로 돌아가

다른 생명을 살리는 몫을 할 테지.


머리카락 잘 흘러내리는 미용 보자기. 소중한 인연의 선물 덕에 산골 미용실 분위기가 제법 그럴듯하다. 


미용 기구들도 마저 정리한다.

싹둑싹둑 매끄럽게 잘 드는 가위,  

머리카락 잘 흘러내리는 미용 보자기. 


소중한 두 인연이 따로따로 안겨 준 

이것들 덕분에, 어리바리 산골 미용실이

그럭저럭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평생 꾸려 갈 수 있을 듯하다.

덕분에 두 분께도 평생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갈 테지.


머리카락 범벅이 된 몸을

말끔히 씻고서 다시 거울을 본다. 

음... 생각보다 잘 나왔네.

어라? 얼굴빛도 아까보다 많이 밝아졌어. 

오늘따라 마음에 차고 들어오던 

‘어떤 번뇌’도 머리카락 따라

조금은 사라졌으려나. 


미용사로 일하는 인연이 안겨 준, 미용실에서 쓴다는 미용 가위. 싹둑싹둑 정말 잘 든다!


거울 보며 가위질하다가

땀 삐질삐질 솟는 얼굴이  

왠지 서글퍼지면서 떠오른 노래 하나.  


산골 미용실 정리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가뿐한 마음으로 

소리 내서 불러 본다.


“열 사람 중에서 아홉 사람이 내 모습을 보더니 손가락질해 그놈의 손가락질받기 싫지만 위선은 싫다 거짓은 싫어 못생긴 내 얼굴 맨 처음부터 못생긴 걸 어떡해~♪” 


산골 미용실 정리하고는 가뿐한 마음으로 불러 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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