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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un 04. 2020

‘신선국수’ 앞에서 만난 행복

“난 찌루찌루의 파랑새를 알아요~♪”

상추, 쑥갓, 왕고들빼기, 방아잎에

열무김치 넣고 삭삭 버무려 비빔국수를 먹습니다. 


아삭아삭 씹히는 이파리에

방아잎과 쑥갓 내음이 어우러져 

입안에 향기롭게 퍼지니 감탄이 절로 납니다.


“이건 마치 신선국수 같아!” 


향긋한 국수 한 입 호로록,

상큼한 채소 샐러드 쩝쩝쩝.


비빔국수 점심을 말끔히 비우고 

텃밭 딸기로 입가심까지 한 뒤.

마음 저 아래에서 어떤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네요.  


비빔국수 말끔히 비우고 텃밭 딸기로 입가심까지 한 뒤.  마음 저 아래에서 행복한 느낌이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그래! 이런 게 행복이지.
언제나 내 곁에 있던 그것인데,
예전에도 알고 있던 무엇인데. 
그동안 대체 난 뭘 찾아 헤맨 거지?’ 


그래요, 한동안 잊고 지냈나 봐요.

어쩌면 일부러 외면했는지도 몰라요. 

자연 속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이 싱그러운 행복의 기운을. 


상추, 쑥갓, 왕고들배기, 방아가 자라는 푸르른 텃밭. 신선국수의 재료는 모두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푸르른 텃밭 바라보다

파란 하늘을 쳐다보다

불쑥 노래가 터져 나옵니다.


“파란 나라를 보았니 맑은 강물이 흐르는 파란 나라를 보았니 울타리가 없는 나라~♪”  


<파랑새>라는 동화가 있죠.

꿈속에서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바로 곁에 있던 비둘기라는 걸 깨닫는

어린 남매의 이야기.


아~~ 뭔가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신비로운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는 충만함을

이기지 못하고, 참으로 오래간만에

(칠팔 개월도 훌쩍 넘었나 봐요) 

새소리와 더불어 노래를 합니다. 


“난 찌루찌루의 파랑새를 알아요 난 안델센도 알고요, 저 무지개 너머 파란 나라 있나요, 저 파란 하늘 끝에 거기 있나요!♪” 


아삭아삭 씹히는 이파리에 방아잎과 쑥갓 내음이 어우러져 향기롭게 퍼지니 '신선국수'라는 감탄이 절로 납니다.


노래 다 부르고 나니 탈탈탈탈 소리가 들리네요.

경운기가 지나가려나 봅니다.


냉큼 집 안으로 들어왔어요. 

다들 바쁜 농번기에 베짱이 같은 모습 보이면

부끄럽고도 죄송하니까요. 

울타리가 없고 대문마저 두지 않아서

마을 길에서 훤히 보이는 곳이거든요.

(노래랑 분위기를 맞추고 싶어서 요 마당에서 불렀답니다~^^)


맛도 모습도 싱그러운 채소 샐러드는 텃밭이 안겨주는 귀하고 상큼한 선물입니다.


오랜만에 기타 만졌다고 손가락이 좀 아파요.

얼마 만에 찾아온 흥인데, 더 치고만 싶은데

조심한다고 꾹 참습니다. 

어깨 결림이 천천히 낫고 있는데

혹시라도 무리가 갈까 싶어서요. 


대신 전에 적어 둔 글귀를 찾아보았어요. 

빨간머리앤이 했던 유명한 말이죠.


“전 행복해지는 진짜 비결을 알아냈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과거에 얽매여 평생을 후회하며 살아가거나 미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최대의 행복을 찾아내는 거죠!” 


이걸 손글씨로 적을 때

속으로 빨간머리앤한테 막

뭐라 뭐라 심술부렸더랬어요.


‘현재를 산다는 거, 참 좋은 말이야. 한땐 나도 철없이 그렇게 

말하고 다니기도 했지 뭐야,  민망하고 부끄럽게스리.   


뒤늦게 조금이나마 알게 됐어. 아무리 찾으려 애써도 

지금 이 순간 행복을 주는 무언가가 안개에 가린 듯 보이지 않는 때가 있다는 걸. 

삶의 무게가 짓누르는 현재, 그 하루를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행인 순간인 거지.


그럴 땐 아무리 좋은 말도 안 들려. 도리어 화가 나기도 해.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고 안 되니까 못 하는 거거든! 하면서.  


근데도 왜 네가 한 말을 열심히 끄적이고 있냐고?

현재를 살면서, 지금 이 순간 최대의 행복을 찾아가기. 

여전히 그 말을 믿으니까, 실은 꼭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 

이렇게라도 적어 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거나 아예 

놓아 버릴까 봐 겁이 나서...


나중에 이 글을 다시 볼 땐 적어 놓길 참 잘했다고,

빨간머리앤한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두어 달 전 작은 공책에 꾸역꾸역 썼던 글귀를 보고 또 봅니다. 

이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적어 놓길 정말 잘했다고, 빨간머리앤한테도 참 고맙다고요. 



파란 하늘 아래 더불어 사는

아는 인연, 모르는 인연들 모두가 

‘지금이 행복한 것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하루’를 

같이 느끼고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파란 나라’ 노래를 마저 불러 봅니다.


“아무리 봐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누구나 한번 가 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우리가 한번 해 봐요
           온 세상 모두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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