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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un 22. 2020

하지감자가 내게 준 것

뿌린 것보다 많이 거두는 기쁨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는

하지가 하루 지났다. 


그러니까 어제 점심때쯤,

갑작스레 하지가 다가온 걸 알았다. 

가까이 있음에도 자주 가 보지 못한 감자밭이 떠올랐다. 


땅속에 숨어 있는 감자가 드러나는, 신비로운 순간!


하지가 지나기 전에

하지감자를 캐야만 할 것 같으니

땡볕 무릅쓰고 밭에서 몸을 부렸다.


여섯 골 감자밭 캐는 데

산골부부 힘 모아 세 시간.


“오메~ 힘든겨.”


몸에선 땀이 철철,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난다. 

그래도 참고 한다, 해낸다.

하지니까, 하지감자니까.


땡볕에서 감자를 캐자니 몸에선 땀이 철철,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난다.


다 거두어 적당히 말리곤

상자에 담아야 할 시간.


“헐~ 이게 정말 다야?” 


캘 땐 많아 보였는데 

상자에 담고 보니

그 양이 너무나 보잘것없다.

이렇게나 적은 양은

산골살이에서 역대 최고! 

감자알 크기가 작은 것쯤이야 

해마다 겪으니 익숙하고도 낯익은지고. 


감자알 크기가 작은 것쯤이야 해마다 겪는 일.


땅을 치고 통탄해도 모자랄 판에

내 마음은 무릇 담담하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처럼

내가 뿌린 마음이, 정성이

아마도 이만큼이었을 테지.


아니야, 어쩜 그보단 

훨씬 더 많이 자라 준 걸 거야.

못난 농부 만났음에도

여기까지 애써 와 준 감자들한테

무조건 두 손 모아 고마워해야 해.’


왠지 미안하고 뭔가 고마운 마음을 안고

하지감자가 든 상자를 창고에 들인다.


갓 거둔 하지감자를 쪘을 때 저 포실포실한 자태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하다.


하지가 하루 지난 오늘 

갓 쪄낸 하지감자를 맛본다. 

껍질 살살 갈라지고 포실포실한 겉모습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하다. 


맛은, 갓 캔 감자를 먹는데

그야말로 그만이지!  


뿌린 것보다 많이 거두는 기쁨. 

하지감자가 내게 준 것을 떠올리며 

밥 대신 감자를 입에 넣는다. 

배도 부르고 마음마저 넉넉해지니

내 마음 토닥토닥 다독여 본다.


‘키우는 길에는 모자람이 컸지만
거두는 일에나마 애를 썼노라고,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면 되노라고…….’   


감자밭에 피어 있던 마지막 감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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