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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un 29. 2020

산골 편집자의 삶 그리고 노래

장맛비, 빨간펜과 함께 나눈 ‘꿈의 대화’

장맛비 쏟아지는 오후, 강아지가 멍멍 크게 짖더니 택배 기사님이 오셨습니다. 


짜잔~. 기다리고 기다리던 교정지가 왔어요, 왔어! 간만에 연필, 지우개, 빨간펜 소중하게 꺼내는 놓았는데 어느 노랫말처럼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막상 책상에 앉을 엄두가 나지 않더랍니다. 무조건 하고 ‘나 홀로 응원가’가 필요한 순간, 무심코 입에서 흐르는 노래란~♬


“어렸을 적에 난 무슨 꿈을 꾸었나/ 나 어떤 사랑 가슴에 품어 왔나/ 아무도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네 여기 딛고 선 나의 삶~♪”


    스무 살 언저리에 읽었던 공지영 씨 소설이랑 제목이 꼭 같은 노래이자, 딱 그맘때쯤 무척이나 많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스무 살 언저리에 읽었던 공지영 씨 소설이랑 제목이 꼭 같은 노래이자, 딱 그맘때쯤 무척이나 많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혼자 흥얼흥얼 하다 보니 왠지 빗소리랑도 함께 불러 보고도 싶어서 집 바깥으로 나갑니다. 


“어렸을 적에 난 분홍빛 꿈꾸었네/ 나 지금 살며 꿈은 지워져 가고/ 모두가 내게 감당하라 말하네 참고 견디라만 하네~/ 가끔은 걸음 멈추고 하늘을 보면 세월에 텅 빈 가슴/ 나 이제 그대와 진정 함께일 때까지 나 홀로 걷고 싶어라~♪” 


오랫동안 진짜 많이 좋아했던, 삼 절까지 이어지는 긴 노래를 한목에 부르고 나니 뭔지 모를 힘이랄까, 의지 같은 게 샘솟더군요. 당차게 책상에 앉아서 빗소리 마음에 담으며 늦은 밤까지 교정지와 함께했습니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삼 절까지 이어지는 긴 노래를 한목에 부르고 나니 뭔지 모를 힘이랄까, 의지 같은 게 샘솟더군요.


그리하여~. 오늘 하려고 마음먹은 만큼을 어느 정도는 해내었어요. 아무래도 나 홀로 응원가 덕을 크게 본 것만 같아서 노래에 고맙고 기쁜 마음을 담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노래의 마지막 절을 늦은 밤 힘내어(소리는 낮게~) 다시금 불러 봅니다.


“나 다시 태어나 세상을 보네 흔들림 없는 투명한 눈빛으로/ 자유는 내게 마냥 기다리지 않네 가네 무소의 뿔처럼/ 끝내 가슴에 살아 숨 쉬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나 이제 그대와 진정 함께일 때까지 나 홀로 걷고 싶.어..라...♪”


빨간펜과 함께 나눈 ‘꿈의 대화’

한 이틀 무덥게 맑더니만 점심 즈음 다시금 비가 옵니다. 촉촉한 빗소리 마음에 담으며 뿌듯하게 집을 나섭니다. 며칠 내내 보물 단치처럼 안고 있던 교정지 보기를 드디어 마치고 택배 부치러 가는 길이거든요.^^


시원섭섭하게 우체국을 나서며 가까이 있는 문방구에 들렀습니다. 교정 볼 때 짝꿍처럼 제 곁에 있는 빨간펜이 어느덧 거의 닳았어요. 어쩌다 집에 있는 걸 쓰기 시작했는데 가늘고 잘 써져서 참 좋았습니다. 필기구엔 욕심(또는 관심)이 아예 없는 편인데 빨간펜만은 지금 쓰는 걸로 꼭 사고 싶었어요.


주인아주머니께 다 닳은 펜을 보여드리니 바로 같은 걸 집어 주시네요. 새 펜을 보니 왜 이렇게나 반갑던지요. 하나 사려던 마음을 접고 다섯 개를 쥐었습니다.


이 빨간펜만 있으면 세상 어떤 교정지라도 신나게 받아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막 생깁니다.


“하나에 600원이에요. 한번 쓴 사람은 계속 그거 찾더라고요.”


주인아줌니 말씀에 “네, 저도 써 보니 참 좋았어요.^^” 바로 응답해 드렸죠. 


“요즘 학생들은 일제 걸로 2천 원짜리들 쓰는데...”


뒤이어 이 말씀을 하실 때야 알았네요. 제가 고른 게 국산이고 600원이면 좀 쌀 수도 있나 보다. 하긴요, 서울서 일터 다닐 땐 회사에서 주는 걸로 쓰고 산골살이 하면서는 펜을 산 게 이번이 처음이에요. ‘펜’의 값이건 브랜드건 완전 모르쇠 삶이었네요. 


천 원짜리 세 장 건네드리고 문방구를 나오는데 꼭 세상 다 가진 것처럼 마음이 꽉 차오릅니다. 이 빨간펜만 있으면 세상 어떤 교정지라도 신나게 받아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막 생기고요.


집에 돌아오니 살살 오던 비가 막 세차게 내리붓습니다. 그러다 잠시 비님이 쉬는 틈에 얼른 마당으로 나가 ‘서서 기타’를 쳤습니다.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운 거리에 가만히 너에게 나의 꿈 들려주네
너의 마음 나를 주고 나의 그것 너 받으니 우리의 세상을 둘이서 만들자~♪”


요 며칠 자꾸만 생각나는 걸 넘어서 늦은 밤 외쳐(?) 부르도록 만들던 ‘꿈의 대화’입니다. 가락이 어찌나 흥겨운지 좁은 방에서도 기타 어깨에 메고 덩실덩실거리며 치고 노래하고 그랬더랬죠. 주로 그날의 교정지 작업을 마친 밤 열한 시 너머? 


노랫말도 정말 맘에 쏙 들어요. 제가 늘 보고 겪는 자연 풍경이 아름답게 눈에 그려지고, 마지막 가사에 가닿으면 아, 정말 외로움도 서러움도 저만치 날아가 버리는 듯했죠. 한바탕 시끄럽게 노래 부르곤 이불에 누우면 금세 잠에 빠져들곤 했어요. 하루 일과를 정리해 주고 자장가 노릇까지 톡톡히 해 준 참 금쪽같이 고마운 노래였습니다.


요 며칠 자꾸만 생각나던 ‘꿈의 대화’를 산골 마당에서 불러 봅니다.


‘꿈의 대화’는 제가 다섯 살도 채 안 됐을 때 대학가요제에 나온 노래더군요. 그게 어느 결에 제 귀에 흐르다 마음에까지 와닿아 40년 지난 지금 무심결에 불쑥 떠오르게 됐을지, 노래란 참 신비로운 것 같아요.


빨간펜을 샀으되 빨간펜을 쓰지 않아도 되는 오늘, 새로 들인 빨간펜 지긋이 바라보며 빗소리 반주 삼아 노래를 양식 삼아 남은 하루 보내야겠습니다. 계획대로 살아가기 은근히 쉽잖은 산골살이에서도 계획보다 조금 앞서 제 할 일 마친 산골혜원을 이 순간만큼은 마음껏 응원하고 칭찬해 주렵니다. 왠지 꿈에서도 들릴 것만 같은 이 노래와 더불어~♬


(힘을 주고 꿈도 심어 주는 노래 ‘꿈의 대화’를 만들고 불러 주신 이범용, 한명훈 선생님 뒤늦었지만 참으로 고맙습니다! 옥타브 왔다리 갔다리, 음정 불량으로 노래를 불러 정말 죄송합지만, 너그럽게 봐주시길요. 노래는 못했어도 이 노래가 저는 정말 정말 좋거든요!^^)


“네가 제일 좋아하는 석양이 질 때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언덕에 올라
나지막이 소리 맞춰 노래를 부르자 작은 손 마주 잡고 지는 해 바라보자
외로움이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엔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의 눈빛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너와 나만의 꿈의 대화를~♪” 
_꿈의 대화(이범용 작사, 작곡/ 이범용, 한명훈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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