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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ul 03. 2020

“혈압 쏙~ 비트♪”와 마음에 쏙~ 드는 오늘 하루

서울 살 땐 있는 줄도 몰랐던,

산골 살며 첫맛을 본 채소 비트. 


딱히 내 입맛은 아니었는데

열심히 심고 키우는 것은

오로지 혈압에 좋다는 것 때문이었다. 


비트에 ‘질산염’이 들었고

요 성분이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단다. 

콜레스테롤 조절에도 좋다 하고.  


빨간 비트에 ‘질산염’이 들었고  요 성분이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단다.


내 혈압 걱정을 참 많이도 하는

여동생이 산골에 찾아온 어느 날 

간곡하게 부탁했다.  


“언니, 비트 꼭 심어서 먹어. 혈압에 진짜 좋대. 빨갛고 빨간 색깔만 봐도 딱 피에 좋게 생겼잖아!” 

사랑하는 동생의 잔소리 덕분에 

비트는 꼭 길러야지, 마음을 먹고

해마다 키우고 먹으며 살고 있다. 

“때가 쏙 비트~” 대신

“혈압 쏙 비트~♪” 요러고 놀면서.^^


꼭 무처럼 땅 위에 톡 튀어나온  잘 자란 비트를 캐서 날로 먹는다.


꼭 무처럼 땅 위에 톡 튀어나온

잘 자란 비트를 캐서 날로 먹는다.

아삭아삭하고 달짝지근하다. 

이제야 조금씩 그 맛이 느껴진다.


비트를 딱 요맘때만 먹고 마니까

내 혈압에 얼마큼 도움이 되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그래도 요 빨간 조각을

입에 넣을 때면 

맛보다 기분이 더 좋다.


내 핏속에 있는 나쁜 기운을,

혈압을 자꾸만 오르게 만드는 

그 무엇이 아주 조금이나마

사그라지는 것만 같으니까.


빨갛고 빨간 색깔만 봐도 딱 피에 좋게 생겼다고 생각해 본다.


밥상에 오른 비트 꼭꼭 씹어 먹고

그 기운으로 책상머리 야근(?)까지

나름 열심히 하고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이 시간쯤 한 번씩 꺼내게 되는, 

내가 좋아하는 글귀들을 적어 놓은  

작은 수첩을 열어 본다. 


“요시오, 맛있니?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니? 아침에 일어나면 어때, 좋아? 오늘 하루가 기대돼? 밤에 잘 때도 기분이 좋니? 친구가 앞에서 걸어오고 있습니다, 신나나요? 아니면 귀찮은가요? 눈에 보이는 경치가 마음에 들어옵니까? 음악은? 외국을 생각해 봐. 가고 싶어? 가슴이 두근두근하니? 아니면 귀찮아? 내일이 기다려집니까? 사흘 후는? 미래는? 설레니? 아니면 우울하니? 지금은? 지금은 모든 게 잘돼 가고 있니? 자신이 마음에 드니?
_요시모토 바나나의 <암리타>에서”  


이 책을 읽은 적은 없다. 

어느 날, 어느 밤, 어느 분이 쓴 글을

인터넷 빌려 쓸쓸하게 읽어 가다가 

딱 이 글귀에 눈이 멎었다. 


심장을 팍 파고드는 듯한 느낌에 

곧바로 한 자 한 자 수첩에 적는데... 

맙소사! 이 질문들에 단 하나도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는 나를 보았다. 

그게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서

아프고 절망스러웠다.  


그날부터 

이부자리에 누울 때도 

아침에 눈을 뜰 때도 

애써 이 글귀를 떠올렸다. 

당장은 아니 되어도

하나씩, 하나씩 ‘그렇다’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붙잡고 다잡았다. 


심장을 팍 파고드는 듯한 느낌에 곧바로 한 자 한 자 수첩에 적었던 글귀.


저 글귀를 만난 지 어느덧 

여러 달이 흐른 지금.

절망스럽게 써 내려간 저 물음들에

혼잣말 대답 놀이를 해 본다.  


“맛있니?”

“응, 비트가 맛있었어.”


“내일이 기다려지니? 설레니?”

“그럼~”


“친구가 앞에서 걸어오고 있습니다, 신나나요?”

“네, 완전 물론이요!^^”


‘혈압 쏙 비트’ 때문일까, 

내일 찾아올 소중한 동무 덕분일까.


사흘 후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밤은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그걸로 되었다. 잘 살았다. 

마음에 쏙~ 든다. 

오늘 하루만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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