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익어도 괜찮아~’
해가 슬슬 질 무렵
구순 넘은 앞집 할아버지가 오셨어요.
따끈따끈한 옥수수를 주시네요.
“와~ 옥수수 벌써 익었어요?
저희는 아직 안 익었는데요. 잘 먹겠습니다!”
막 저녁밥을 먹은 뒤라서
옥수수 조금만 입에 넣어 봅니다.
살짝 달지만 고소하고 맛나요.
옆지기는 저녁 설거지에 한창이고
저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는데
누군가 또 오신 기척이 들려요.
냉큼 나가 보니 마을 아주머니세요.
검은 비닐봉지가 보여요.
비에 젖은 싱싱한 옥수수가 담겨 있네요.
막 따서 건네주신 듯해요.
집으로 내려가시는 아주머니께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인사드리고는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발길을 텃밭으로 돌렸어요.
두 집에서나 옥수수 선물을 받고 보니
문득 텃밭 옥수수도 궁금해진 거예요.
‘얼마큼 자랐지? 몇 개 달리기는 했을까?’
비 핑계라고 하기엔 못내 부끄럽게도
옥수수밭을 참 오랜만에 가 봅니다.
(밭이라고 하기엔 쫌~ ㅡㆍㅡ:;
옥수숫대 열 개 좀 넘을까 말까 할 거예요.)
‘어머나! 옥수수가 이렇게 많이 열렸네?
어머~ 얼추 익은 것두 꽤 되는걸^^’
뜻밖에 선물이라도 생긴 것처럼
옥수수 앞에서 혼자 싱글벙글합니다.
이번 여름엔 비가 하두 주구장창 와서요.
또 멀찍이서(그리 멀지두 않지만요) 봤을 때
옥수수 키가 많이 작아 보이기도 해서요.
올여름 옥수수 농사는 재미없겠구나,
생각만 했어요. 솔직히 기대가 없었어요.
그런데! 옥수숫대 키가 크건 작건
저마다 제 몸에 걸맞게 열매를 맺고
또 자라고 있더라고요.
해가 덜 비쳐도
지나치게 비가 내려도
옥수수는 제자리에서 제 할 일을
멈추지 않고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감동스럽고 고마웠어요.
옥수수를 닮고만 싶더라고요.
(옥수수밭 풀매기 정성껏 해 준
옆지기 텃밭 농부님께도 감사를!)
지난해보다 반도 못 되게 심었기에
다 거두어도 얼마 되진 않겠지만
산골부부만 먹기에는 조금 넘치기는 할 거예요.
저 가운데 얼마쯤은
산골에 찾아올 누군가와
나눌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천천히 익어도 괜찮아~’
옥수수밭을 나오면서
조그맣게 자라는 옥수수들한테
너무 애쓰지 말고 좀 더 느긋이
익어 가라고 마음을 전했어요.
옥수수는 갓 따서 바로 쪄야 맛있잖아요.
천천히 익어도 언젠간
가장 맛있게, 고맙게 먹어 줄
고운 인연과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