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학생이 학년 당 백 명 남짓한 매우 작은 시골 학교였다. 엘리트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전 학년 기숙사 생활을 원칙으로 운영되었는데, 칼 같은 학칙과 살벌한 지도를 바탕으로 무엇보다 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착실하게 굴러가는 전근대적 교육기관이었다. 이미 자취를 감추는 게 마땅했을 체벌과 욕설이 바로 그 증거였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학생들이 안정되고 긍정적인 심리상태를 가졌을 리 없고, 예민할 대로 예민한 상태로 삼삼오오 모여서 남을 비방하거나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며 각자의 영혼을 더 망가뜨리곤 했다.
그때를 회상하자면, 나 역시 사소한 것에 짜증내고 열등감과 스트레스로 지쳤기 때문에 백 번 양보해도 호감 가는 성격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소심한 성격 탓에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하고 다니진 않았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소심한 성격은 반대로 말하면 무척 상처받기 쉽다는 뜻이 된다. 학교에서는 굉장히 불리한 성격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곳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기숙사의 크고 작은 일이 빠르게 모두에게 퍼지고, 이야기의 당사자에게도 쉽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C가 걔 얼굴은 식빵에 구멍 두 개 뚫어 놓은 것 같대.”
그 얘기에 다들 소위 빵 터졌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너무 어리고 자존심은 강한데 그 와중에 예민해서, 상처 받았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정말로 몰랐으니까. 냉정하게 말한다면 거울을 볼 눈이 있으니까 나도 예전부터 보기 예쁜 얼굴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또 흉한 얼굴은 아니지 않나, 그저 평범한 수준 정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때까지의 스스로의 외모에 대한 인식의 전부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달라진 것은 내 외모에 대한 생각뿐이 아니라, 미적 감각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었다. 외모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은 지극이 주관적이고 관대한 것이어서, 어쩌면 타인의 평가가 훨씬 정확할 수 있고, 나는 지금껏 나의 외모에 대해 오해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만약 누군가 외모가 아니라, 능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면 나는 그 비판에 맞서 맹렬하게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능력에 대한 평가는 어쨌든 합당한 기준을 갖고 있기 마련이고, 평가자에게 절대적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시절 나는 우울하긴 했어도 아주 자신감 없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능력에 대한 것이라면, 비판 자체가 나의 능력에 아무런 실제적 영향을 주지도 못하지 않는가.
하지만 외모의 문제는 다르다. 누군가 내게 ‘못생겼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장난으로 내 앞에서 그런 얘길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없는 뒤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는 건, 그건 끝을 말한다. C의 말이 실제 내 생김새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도, 사실 C도 내 외모를 지적할 만한 얼굴은 아니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려 봐도, 이미 외모에 대한 자존감은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이다. 아무리 스스로 다독이고 주변에서 “너는 귀엽지” 하고 말해줘도 이미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친구들은 원래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려고 노력하니까 객관적인 시각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혹은 나를 위해 적당한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게다가 정말 내가 예쁘다면 ‘귀엽다’고 하진 않았을 거다. 걔들도 차마 예쁘다고 할 순 없었던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