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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외모 6. 칭찬도 하면 안 되나요?


 분명히 나를 아름다움의 트레일러 위로 올려 세운 건 내 외모에 대한 비난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끝없이 달릴 에너지를 새롭게 제공했던 것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애정 담긴 조언과 칭찬이었다.

 “요즘 살 빠졌어? 지금이 진짜 딱 보기 좋다. 옷도 너무 잘 맞고.”

 “화장품 바꿨어? 피부가 너무 좋아졌다.”

 “그래, 확실히 머리를 이렇게 하니까 분위기가 달라지네.”

 긍정적인 평가도 부정적인 평가와 마찬가지로, 일상 속의 누구에게라도 절대적인 권력을 준다. 평가를 듣게 된 사람은 머리로는 그 말이 절대적인 평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심정적으로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는 끝없이 ‘나 자신’보다는 외부에서 날아온다. 외부에서 얻게 된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칭찬일지라도, 언제든지 다시 외부에 의해 거두어지고 없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겨준다. 그리고 나를 아름다움에 종속시키는 모든 권력은, 이 두려움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을 내게 속삭였다. 언제까지고 칭찬이 거두어지지 않도록, 다른 어디로부터 공격받지 않도록 나 자신을 잘 꾸미고 가꾸는 것이라고.

 사랑과 애정, 인정은 모든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아름다움을 유지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가! 인간은 누구나 진지하게 사랑받길 원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회나 거대자본이 개인의 의식과 행동을 제재하고 나아가 조종하고자 할 때, 이런 인간적 열망은 노리기 쉬운 약점이 된다.

 아름다움을 수많은 개인들의 개성이 아니라 고정된 하나의 이미지로 제공할 때,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희미하게 잃어가는 연약한 순간을 그들은 놓치지 않는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지하철 광고판에, 엘리베이터 유리창에, 전봇대와 인터넷, 텔레비전과 유튜브에서 내가 기꺼이 노력할 수 있을 법한 무수한 방법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와 시간과 정성을 쏟아서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뿐이다.

 소중한 소비자들이, 또한 약자들이 스스로 사회적 가치를 확신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자신을 긍정적이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다면, 그래서 기존의 가치들에 의문을 품고 그것을 바꾸는 데 남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면, 지금의 사회는 거대한 붕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는 더 이상 거울을 보며 무언가 고치고 수정해야 할 지점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 더 만족스럽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합당하게 가져야 할 의문들을 열심히 탐구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음식이 풍요를 넘어 버려질 만큼 넘쳐나고, 다른 무엇보다 먹고 싸는 것이 저렴한 이 시대에 우리는 도대체 왜 갑자기 마른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른 것을 추구하게 되었을까? 이게 정말 진화론적 관점에서 합당한 것일까? 하는 질문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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