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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외모 7. 자기만족의 함정


 내 계획의 동료를 찾기 위해 거친 삶의 터전에서 고군분투 중인 친구 S를 불러냈다. 고해성사에 가까운 고백을 듣던 S가 문득 물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에 따른 일 아닐까? 누구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공작새도 더 아름다운 수컷이 선택받고, 까마귀도 반짝이는 걸 주워 모으고, 앵무새도 자신의 깃털을 더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서 꾸미잖아? 좀 더 젊고, 생기 있고,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건 사회적인 게 아니라 개인적인 것 같아.”

 물론 그 의견에도 동의할 수 있다.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혹은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모든 동물이 공통적으로 가진 욕망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평가받거나 이득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일까?

 우리가 만일 동물적인 기준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선택하는 것이라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 역시 동물적인 수준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이성에게 인기가 없는 정도’ 말이다. 하지만 인류의 기나긴 역사상 우리는 다양하고 해괴하기까지 한 각양각색의 미의 기준을 제시해왔고, 그것은 한 번도 동물적인 수준의 피해에서 머무른 적이 없었다. 특히 현재 사회가 겪고 있는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집착은 인생 전반을 모조리 억압하는 강박적 현상을 의미한다. 

 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인지, 학습된 결과로서 사회적 욕망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자신을 꾸미는 일이 사회를 위해서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변화가 아니라 그 개인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자기만족과 본능적인 욕망에 의하여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확신할 수 있으려면 어떤 사회가 만들어져야 할까? 첫 번째 조건으로 망설임 없이 고르고 싶은 것은 아름다움이 생계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이 고용과 승진, 업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하며, 그런 요구들을 들었을 때 완강하게 저항해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외모 때문에 직장을 잃는 일이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서비스직에서 일하고 또 일자리를 구해본 나의 입장에서 그건 정말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다. 서비스직에서 일할 때, 나는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또 다른 서비스직 면접에서는 상당히 외모에 신경을 쓰고 갔음에도 불구하고(화장을 비롯한 옷차림 등 전반적인 외모에 신경 쓰지 않았을 때 어떤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나에게 없었다.) 내 머리길이가 문제가 되었다.

 “일하기 시작하면 머리도 기르고 하면 더 예뻐 보일 거예요. 다행히 머리는 기르면 되니까 걱정 없겠다.”

 면접관의 말은 머리를 기르지 않고 싶었던 나의 의지를 꺾고, 취업이 되면 반드시 머리를 길러야 하겠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아름다움이 생계를 위협하는 비슷한 말로는 이런 말들이 있다.

 “차별은 아니고, 덩치가 좀 있으신 분들은 앞에 설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단정한 용모가 조건이다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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