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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외모 8. 우리는 모두 덫에 걸려있다


 다음으로 외모에 대한 사회적 강제나 강요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 누구도 외모 때문에 타인에게 비평을 받지 않아야 하고, 타인의 외모에 대해 비평하는 것을 보고 듣는 일도 없어야 한다. 나에게 분명히 편견이 생길 테니까 말이다. 이를 위해서 물론 나부터도 타인에게 그들의 외적인 부분에 대해 전혀 상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비난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칭찬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작용하는데, 칭찬이 욕만큼이나 나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도 없다. 당장 나부터도 장염 때문에 살이 쏙 빠졌을 때, 보기 좋다는 칭찬에 ‘살은 아파서라도 빼야 하는 구나!’하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이를 위해 내가 요즘 실행 중인 나만의 작은 프로젝트는 사람에게 ‘예쁘다’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힘이 굉장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나의 관성적인 습관은 그보다 더 굉장해서 정말 안 쓰려고 의지를 갖고 노력하는데도 얼떨결에 튀어나와버리곤 한다. 특히 어떤 사람에 대해 설명할 때, 친구를 칭찬하고 싶을 때 누구도 나에게 상대의 외모를 평가할 자격을 준 적이 없다고 수없이 되새겨야만 한다. 마땅히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타인에게 선의의 호기심을 갖고 열심히 바라보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렇게 할 만큼 중요하게 해야 할 말이 없으면, 외모에 대해서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25살이 되었을 때 단체채팅방에 어떤 친구가 남긴 말에 충격 받은 기억이 있다.

 “우리도 이제 꺾였어. 반오십이야.”

 더 충격적이었던 건 많은 친구들이 그 말에 동의를 표하고 하루빨리 관리를 시작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는 사실이다. 반백 살이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은 있었으나, 반오십이라니! 단어 자체도 낯설었지만 논의가 자연스럽게 외모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는 것도 당황스러웠다.

 사회는 외모가 아름답지 않을 때, 여성으로서, 청년으로서, 인간으로서 무엇을 잃게 될 것인지에 대해 위협한다. 우리는 쉽게 윤기 있고 탄력 있는 피부가 젊음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들 이미 겪어봤겠지만 탄력과 윤기는 젊은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젊다 못해 어리던 학창 시절에 나는 여드름, 피지와의 전쟁으로 하루도 피부가 깨끗해 본 적이 없었다. 20대에 들어서 미쳐 날뛰던 호르몬이 진정하고 피지분비가 안정을 되찾자 치열한 전쟁의 흔적인 모공과의 싸움이 나를 기다렸다. 모공을 가리기 위해 각종 효과 있다는 프라이머가 줄줄이 화장대에 올랐고, 다음에는 값비싼 기초화장품들을 사들였고, 종착역은 피부과였는데 그 문제가 해결될 때쯤엔, 마침내 주름이 깊어지고 있음을 알아채게 되었다. 내 피부를 바라보며 판매자들이 걱정스럽게 하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고객님이 피부 자체는 좋으신데, 모공이 좀 넓으니까 모공을 줄여줄 수 있는 앰플이랑 여드름이 지금은 없으신데, 여드름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피부재생크림을….”

 젊음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젊은이들 모두가 이미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젊은데 젊음의 상징을 얻기 위해 이토록 돈과 시간을 써서 노력해야만 한단 말인가? 나는 덫에 걸린 한 마리의 고라니가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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