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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대한필맨 Apr 14. 2020

지금 막 은퇴한 축구선수에게 쓴 편지

낙엽은 떨어져서 거름이 되어 다시 잎사귀로 피어난다.

코가 잘 생긴 동생과 커피를 한 잔 하고 있을 때였어. 그때 너한테 카톡이 날라왔지. 밝은 뉘앙스의 글이었으나 내용은 여명처럼 어두웠어. 그 내용은 이제 축구화를 벗겠다는 것이었어. 즉 은퇴를 결정했다는 메시지였지. 나는 너가 얼마나 축구선수의 삶을 즐기고 행복해했는지 잘 알기에 안타까움이 먼저 일렀어. 오랜 시간동안 고민과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을거야.


그 고민의 시간은 하루에도 수천번의 번복의 반복이 이어졌겠지. 서른의 나이에 복무요원을 하면서 K-리그 4의 팀에서 급여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너는 끈을 놓지 않으며 매일 최선을 다했잖아. 근무를 마치고 1시간 30분 이상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타며 훈련장에 도착해서 훈련을 했고, 다시 1시간 30분을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타며 집에 도착했지. 그리고 다음날 다시 출근을 했어. 나는 그 사실을 알기에 너의 결정을 누구보다 존중해. 은퇴의 결정을 내리는데는 위의 과정이 힘들어서 내린 결정도 아니라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어.


낙엽귀근(落葉歸根) :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모든 일은 처음으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은퇴는 곧 새로운 시작의 출발선과 다름없어. 나는 너가 오히려 은퇴 후에 더 빛이 날거라 생각해. 그리고 그 빛은 너의 축구인생에서 비롯될거야.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알려줄게.




축구선수의 경험은 사회 생활에 도움이 될거야. 사회는 사람들이 모여 이룬 곳이잖아. 가족, 학교, 직장 등 두 사람 이상이 있는 곳을 사회라고 해. 사회라는 게 별거없어. 그저 사람이 모이는 곳이 사회야. 18년 전 너는 축구를 시작하면서 일찍이 집을 떠나 합숙 생활을 했지. 개인적으로 일찍이 가족을 떠나 합숙생활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표를 던지지만, 합숙생활이 사회생활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아. 지도자와 선배들의 눈치를 살피며 동료와 후배들과의 관계를 조율해야 살아남는 환경은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마 너도 동의할 거야.


서울대를 나와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 학교를 벗어난 사회는 정글이거든. 그저 똑똑하다고 되는 곳이 아니야. 함께하는 능력이 중요해. 말단 직원일 때는 그에 맞는 처세술을 부려야 하고, 중간급의 리더가 될 때도 상부와 하부 직원의 연결고리 역할을 잘 해야하지. 그와중에 사장님 또는 부장님의 눈치도 잘 봐야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특히 수많은 꼰대를 겪었을 너의 축구인생은 꼰대 면역력을 키워줬을거야. 아무튼 정말 지겹도록 했던 합숙생활이 어느정도 도움이 될거야.




사회는 정글이라고 그랬지? 이 세상은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야. 정글을 군림하다가도 발 한 번 헛디뎌서 다치기라도 한다면 하이에나의 먹잇감이 되는 건 한순간이지. 대부분 살아남기 위해서는 능력이 필요하고 생각해. 대부분 그 능력을 타고남 또는 학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그러나 그 생각은 대기권 돌파슛처럼 골대에서 한참 벗어난 생각이야. 아 그리고 집이 빵빵한 금수저들은 신경쓰지 않는게 정신건강에 좋아. 솔직히 금수저로 태어나 먹고사는데 지장없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높다고 하지 않고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는게 맞아. 금수저인데 능력까지 갖춘 사람은 사기캐일뿐이야. 즉 저세상 사람이란 말이지. 다시 한 번 말할게. 금수저는 그냥 신경쓰지 않는게 정신건강에 좋아.


정글에서 살아남는 능력은 바로 절제력이야.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절제하는 능력을 말해. 이 또한 너의 축구인생에서 어느정도 터득을 했을거야. 절제력은 타고난 게 아니라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이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로우바우스터’ 심리학 박사는 실험을 통해 절제력은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어. 실험자들에게 일정 기간 동안 매일 하나의 미션을 수행도록 했는데, 나중에 그들을 모아서 자제력을 발휘할 다른 미션을 줬지. 그랬더니 매일 미션을 수행한 그룹이 하지 않은 그룹보다 자제력을 높게 발휘했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자제력이란 A활동에서 쌓더라도 B활동에서 발휘 할 수 있다는 것이야. 즉 너가 축구를 하면서 했던 고된 훈련에서 얻은 자제력이 사회에서도 통용 될 수 있다는 말이지.


요즘 젊은이들은 즐겁지 않으면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짙어. 물론 즐거움이란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야.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게 있어. 즐거움은 잘 할 때 느낄 수 있는 특권이라는 거야. 축구선수도 마찬가지야. 기본적인 실력이 없으면 경기 중 즐거움을 얻기란 불가능해. 패스와 컨트롤을 잘 해야 팀의 플레이에 녹아들면서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지. 기본기를 익히기 위해서는 수 없이 반복된 훈련을 경험해야해.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그 기간은 즐겁지만은 않잖아? 기본기는 프로선수가 되어서도 꾸준히 단련할 정도로 중요해.


즉 기본기를 익히기 위해서는 절제력을 발휘해야해.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야. 아마도 축구에서 얻은 자제력은 앞으로 너가 도전할 어떤 일에서도 도움이 될거야. 그렇다면 즐거움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채 그만둔 사람드로다 너는 앞서나갈 수 있을거야. 절제력을 발휘해서 전문가 반열에 도달하면 즐거움도 함께 얻겠지. 그리고 포기한 사람들은 너를 우러러 볼거야.


축구인생이란 낙엽이 떨어져서 썩은 후 거름이 되고 너라는 나무의 줄기에 스며들거야. 그 자양분으로 푸른 빛의 잎사귀가 피어나겠지.




나는 위와 같은 이유와 근거로 너가 잘 될거라 믿어. 인간 관계와 꾸준함이 만나면 시너지 발휘되어 긍정적인 결과들을 만들 수 있을거야.


감히 너에게 조언을 해주자면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맨땅의 헤딩이란 말처럼 도전 자체는 유의미해. 하지만 가이드라인도 없이 막무가내로 하다가는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될거야. 즐거움, 의미, 성장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아봐. 그렇다면 자기다움을 유지한 채 인생의 설계를 할 수 있을거야.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어. 세상에 100%는 없다는 거야. 너의 계획과 목표는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 단 자기다움만큼은 잃지 않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자기다움 안에는 이타성이 내포되었으면 더 좋겠고.




덕담 치고는 글이 좀 길었네. 은퇴를 준비하는 너의 복잡한 심정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람으로 쓴 글이야. 그리고 나중에 은퇴를 준비할 나에게도 던지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해.


솔직히 축구선수라서 사회생활을 잘 할거라는 주장은 헛소리일 수도 있어. 될놈은 되는 세상이니까. 내가 너에게 전해주고 싶은 진짜 메시지는 이거야.


너는 될놈이야


나는 너가 무조건 잘 될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 그리고 너도 네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어. 그 믿음의 근거가 내가 언급한 축구 인생에서 시작된다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쓴거야. 18년 간의 경험은 분명 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거라는 것은 확신해. 너의 은퇴 소식이 나에게 여명처럼 어두움으로 다가왔다고 했었지? 가장 어둠이 짙은 여명을 견뎌내면 일출을 보게 돼. 즉 너에게는 해가 뜰 날만 남았다는 말이지.


낙엽귀근의 사자성어의 의미처럼 은퇴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시기이고, 떨어지는 낙엽은 네 인생의 자양분이 되어줄거야. 축구선수 출신이게 더욱 너의 다음 행보가 기대가 된다. 응원할게.







#낙엽이 된 상엽에게 쓴 멘토랍시고 조언하는 상필이 형이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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