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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대한필맨 Mar 26. 2020

어느 축구선수의 고백

힘내라 내 동생

올 겨울의 마지막 추위가 온 것일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봄이 벌써 왔나 싶을 정도로 따뜻해지더니 다시 영하권의 날씨로 바뀌었다. 봄을 벌써 꺼내냐는 겨울의 외침처럼 추위가 장난 아니다. 전국적으로 눈도 많이 내렸고 바람도 거셌다. 꼭 내가 아끼는 후배(이하 첨리)의 마음처럼 말이다.


첨리는 나와 같이 축구선수의 삶을 살았다. 나와는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지만 생각도 깊고 성장 욕구도 강해서 나와 코드가 맞았다. 무엇보다 축구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 못지않았다. 우리는 최대한 축구 인생을 길게 이어가자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 다짐이 한 달 채 되지 않은 시점이 은퇴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첨리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느 정도 팀 빌딩이 맞춰진 시점이었던 1월까지 테스트 공지가 뜰 때마다 지원을 하고 테스트를 참여했다. 안타깝게도 테스트 모두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아직 미필이라는 전제가 더 이상의 도전을 허락지 않았다. 


김지수 선수 일러스트


결국 첨리는 부모님과 상의 후 은퇴를 결심했고 빠르게 군대를 다녀와야겠다는 선택을 내리게 되었다. 현재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세계여행을 경험 중이다. 부모님께서는 그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축구만 했었기에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기 전에 세계를 유랑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길 바라셨다. 나도 그가 여행길에서 진짜 자신을 발견하고 돌아오길 기대하고 있다.


아무리 괜찮은 척을 하더라도 첨리의 속은 진짜 괜찮을까. 현재 대한민국의 날씨처럼 눈도 내리고 바람도 강한 한파가 아닐까. 나는 그가 이 순간을 '곧 봄이 온다'는 전조현상이라고 인지했으면 좋겠다.


축구선수들은 은퇴에 굉장히 취약하다. 공부하는 축구선수를 만들기 위해서 제도적으로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일반 학생들도 공부해서 취직하고 잘 살아가기가 힘든 게 진짜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표준화 사고방식에 따른 커리큘럼이 스며든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수능이라는 입학시험을 통해서 원하는 대학을 들어가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단, 경쟁자들보다 잘해야 한다. 시험 문제의 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표준화 사고방식에 부합된 엘리트 학생들이다. 그러나 축구와 공부를 병행하는 청소년 선수들이 공부만 하는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을까. 경쟁 자체가 되면 다행이다. 간혹 돌연변이의 등장으로 축구를 하면서 학습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나타날 수 있다. 돌연변이는 돌연변이 일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부를 잘해서 대학을 가더라도 자신의 충족감을 채워질 직업을 구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과연 공부 시간을 확보해주는 게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일까. 첨리가 공부와 축구를 병행했다면 은퇴 후에도 위험 부담이 적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공부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개개인성에 맞는 학습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학습능력이란 후천적으로 일정한 지식, 기술, 인식, 행동 등을 배워 익히는 능력을 말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축구선수가 은퇴를 하게 되면 보편적으로 지도자를 떠올리게 된다. 최근에는 축구교실 또는 개인 레슨을 차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너무 많아지다 보니 포화상태라고 한다. 지도자도 선수처럼 계약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고액의 급여를 받는 지도자는 파레토의 법칙(20대 80)을 따른다. 돈을 떠나서 지도자라는 직업이 많은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으면 괴로울 수가 있다. 대회 또는 원정 경기로 잦은 출장이 많고 매년 선수 스카우트 또는 진학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코칭 스텝과 선수들을 이끌 리더십, 재무적 관리 능력, 운동장 및 숙소 섭외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솔직히 하는 일에 비해 박봉이다. 


지도자에 꿈이 있다면 이런 과정은 충분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일류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설거지부터 시작해야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선수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는 경우,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경우가 더 많은 같다. 어쩔 수 없이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는데 박봉에다가 할 일이 너무 많다. 심지어 개인 시간도 적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의욕은 떨어지게 되고 현역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다. 여기서 그치면 다행인데 안타깝게도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선수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토드 로즈'와 '오기 오가스'가 쓴 <다크호스>에서는 위의 경우를 표준화 사고방식이라고 말을 한다. 축구선수는 축구만 하고,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는 게 당연히 여기는 사회의 분위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선수라는 옷은 잘 맞을지 모르지만, 지도자의 옷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간과하고 있다. 반대로 개개인성에 따른 선택을 내리는 경우를 '다크호스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다크호스 사고방식이란?

: 개개인성, 충족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축구선수들이 은퇴에 취약한 이유 중 하나가 표준화 사고방식에 따른 커리큘럼과 진로 선택에 있다. 굳이 일반 학생들처럼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들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이 똑같이 갑옷을 입고 칼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것과 같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갑옷과 칼을 벗어던지고 돌팔매를 이용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토트넘이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토트넘 축구를 했기 때문이다. 만약 멘체스터 시티 축구를 했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토트넘 축구의 핵심인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님은 축구 선수들의 개개인성에 대해 포착하셨다. 포착한 '인사이트'를 실제 한국의 청소년 축구선수들에게 적용하는 중이다. 적용의 실체는 바로 '손 아카데미'다. 손웅정 감독님은 일반학생들과 축구선수가 같은 조건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면 당연히 축구선수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판단을 했다. 그래서 축구 대안학교인 손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평생교육',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교육', '실용적 교육'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운영 중이다. 


자기 주도 학습은 축구선수에게도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이 기대되는 것을 넘어서, 은퇴 후에도 지도자가 아닌 자신의 충족감을 채울 수 있는 선택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손 아카데미 출신의 선수들의 미래가 큰 기대가 된다.


다행히도 첨리는 손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개개인성을 파악하고 충족감을 채울 수 있는 선택 했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과 지식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으며, 다크호스 사고방식을 갖추고 자신의 전제에 따른 최적의 방법을 찾고 있다. 첨리 같은 경우에는 축구계에서도 특별한 경우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표준화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공산이 크다. 손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은 대한민국 스포츠 문화에 자리 잡혀야 한다고 나는 자신 있게 고백한다.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 스포츠 사회의 부가가치는 더없이 올라가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흐려지고, 잦은 이직이 당연히 되어가는 현대 시대의 흐름에 맞춰야 하는 것은 축구계에서도 받아들여야 한다. 코로나 사태가 지나간 후에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축구선수가 축구만 해야지'라고 말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답해주고 싶다. 손흥민 선수가 그렇게 말했다고? 만약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표준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손흥민 선수가 될 필요가 없다. 최고의 축구선수가 아니라 최선의 '나'라는 축구선수가 되면 된다. 우리 모두에게 손웅정 감독님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단, 당신에게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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