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락재 Sep 01. 2022

애틋한 마음

오늘 아침, 아끼던 BIC 볼펜이 수명을 다했습니다. 내 이름이 적힌 견출지를 떼어내고 나니, 이제 안녕이구나 싶어 애틋한 마음이 들더군요. 언젠가 병원에 볼펜을 두고 왔을 때, 전화를 걸어 챙겨달라 부탁하고 며칠 뒤 찾으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병원 사람들은 값비싼 만년필도 아니고, 이 흔해빠진 볼펜을 굳이 찾으러 온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눈치였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는 부드럽고 뭉침 없는 데다 저렴하기까지 한 이 볼펜이 세상 제일이니, 애지중지 아끼고 챙길 밖에요. 무생물에게 무슨 애틋한 정을 갖느냐 타박하는 이도 있겠지만, 가슴 무너지던 날도 벅차게 행복했던 날도 이 볼펜을 쥐고 또박또박 일기장에 적어 내려갔었습니다. 친구들도 모르는 내 깊은 속마음을 오랜 시간 나누었으니, 무생물이지만 내게는 애틋한 지기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여전히 새것 마냥 깨끗한 그 친구를 재활용품 수거함에 넣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고마워"


애틋한 이별에 또 하나 떠오르는 이가 있습니다. 성은 달, 이름은 구지. 달구지라는 이름의 내 첫 차입니다. 서른 살이 넘도록 차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에게 아빠는 가족의 세컨드카였던 모닝을 안겨주었습니다. 중고로 팔기에는 터무니없이 헐값이라, 차라리 네가 타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구지가 내게 오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아빠에게 차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월리가 뇌수술의 후유증으로 실명했기 때문이지요. 아직 초보였던 내 운전 실력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월리를 치료해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야 했습니다. 구지는 그런 우리를 싣고 성남으로, 서초로, 여의도로 달렸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눈에 띄게 느려지고, 여름철에는 에어컨을 켜면 시속 60킬로 이상 달리지 못하는 꼬마차였지만, 언제나 구지가 사력을 다해 우리를 지켜주는 느낌이 있었지요.


하지만 도로 위 무법자들은 그리 젠틀하지 않았습니다. 초보운전 딱지를 만만하게 여긴 그들은 위험천만하게 끼어들거나 구지를 위협하는 행동을 일삼았지요. 결국 우리는 도로 위에서 비명횡사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크고 안전한 중형차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중고차 업체에서 구지를 보러 오던 날, 거래가를 깎으려 이리저리 구지를 흠잡는 말에 어찌나 마음이 상하던지요. 4년 간 사고 한 번, 고장 한 번 없이 동서남북 어디든 데려다준 구지였는데, 이렇게 험한 소리까지 듣게 하는 것이 못내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구지를 깎아내리지 않는 점잖은 업체를 만나고서야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덜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떠나가는 구지의 뒷모습이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해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내 인생 가장 어둡고 막막했던 4년을 말없이 지켜준 친구를 더 아껴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남았습니다. 더 근사한 이름을 지어줄 걸, 자주 세차해줄 걸, 고맙다고 한 번 더 말할 걸, 가기 전에 한 번 더 쓰다듬어 줄 걸. 아직도 구지를 떠올리면 고맙고 애틋한 마음입니다.


구차스러워서 아무에게도 기대고 싶지 않던 그 시절, 구지는 내가 마음 놓고 의지해도 부끄럽지 않은 유일한 대상이었습니다. 월리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안 보이려 애썼던 내가 목놓아 울 수 있었던 유일한 곳이었지요. 그때마다 구지가 나를 품어주고 다독여주었음을 나는 압니다. 모든 사물이 의식을 갖고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우리가 앉아있는 의자도 앉은 이가 누구인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는지 다 인식한다는 것도 구지와의 교감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지요. 그러니 이 애틋한 마음이 생명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해서 그보다 못한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나보다 살뜰한 주인을 만나 힘차게 달리고 있기를 바라는 이 마음은 멀리서나마 내 벗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니까요.


혹 새 주인이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면, 내가 대신 멋진 이름을 지어줄까 합니다. 장난스레 지었던 이름이 못내 미안했거든요. 성은 달이니, 이름은 타냥이 좋겠습니다. 신의 있고 용맹한 이의 이름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이름이라는 건 생각보다 큰 힘을 가졌나 봅니다. 달구지라 부를 때보다 훨씬 더 힘차게 질주하는 달타냥의 모습이 연상되니 말이지요. 그렇게나마 모두의 안녕을 빌어봅니다. 힘찬 맥박소리 없이도 다정한 마음을 주고받았던, 애틋한 내 벗들의 안녕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