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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an 25. 2017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만난 그대

생각해보니 아무도 몽마르트르 언덕이 크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내 안의 몽마르트르는 크고 거대했어요. 

수많은 화가들이 여기저기 터를 넓게 잡고 그림을 그리는 곳,

높낮이가 다른 수많은 길, 울창한 나무들과 넓은 공원,

파리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언덕이니 당연히 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몽마르트르라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단어, 

쉬 가보지 못할 곳이니 마음속에서 키다리 아저씨처럼 커졌을지도 모르겠어요.  

하기는 크기처럼 상대적인 것 있으려고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살던 우산리를 가보면

글쎄 아래 동네 샘 까지 참 길고 먼 길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가보니 그저 손바닥만 한, 몇 발자국 거리예요.

어린 시절의 <크다>가 어른의 <작다>로 된 간극 속에서는

언제나 <그리움>이 존재해 있곤 하지요. 

크기의 변환보다는 <지나감>의 마술이 흩뿌린 판타지일지도 모르겠군요. 

지난가을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만난 그대, 

내 그대에게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아주 잠시 스쳐 지나왔건만

현악기들 속에서 아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플롯의 소리처럼, 

현악기가 나무 꽃의 숲이라면 플롯은 요정처럼,

그렇게 몇 장의 사진 속에서 잠들어 있는 그대를 향한 그리움을 생각해보니 말이지요. 

파리의 기차역에 내릴 때는 이미 어두워진 다음이었어요.

목까지 내려오는 구불거리는 머리에 약간의 수염을 매단 가이더는 

말로만 듣던 파리지앤(?)처럼 보이더군요. 

로마의 가이더는 우스개처럼 그런 말을 했어요. 

유럽 투어는 일종의 고려장이다. 

나이 드신 부모님을 버리고 싶거들랑 유럽 투어를 시켜라.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지요. 

밤늦게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시 이른 새벽에 서늘한 아침 도시락을 들고 버스에 오르는,

프랑스라고 예외일리는 없었어요. 

서둘러 버스를 타고 버스에서 내려서서는 거의 달리다시피 하여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지요. 

공간 지각력이라고는 정말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에게 바라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래되어 먼지 낀 누우런 담뿐이었어요. 그런 담을 돌고 돌아가니 벌써 길게 늘여진

사람의 행렬에,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군요. 

줄 짧은 입구를 찾으러 가이더를 따라 이곳저곳을 달리다 보니 넓디넓은 궁전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달리기 하는 운동장처럼 여겨지더군요. 

언제나 그렇지만 그런 발자국 찍는 여행 속에서

이게 뭔가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번다하기 그지없는 에펠탑을 지나 몽마르트르 언덕에 이르렀을 때는

새롭고 낯선 장소들이 주는 신선한 매력도 곰삭아서....

맛을 잃어갈 한계점에 다다른 무렵이었지요. 

버스는 우리를 조그마한 길가에 내려주더군요. 

우리나라 조그마한 소도시의 길거리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사람으로 가득 찬 골목길은 마치 명동거리 한 토막처럼 보이더군요. 

언덕 위 거대한 성심 성당의 둥근 아취가 보였고 

계단 몇 개를 걸어 올라가면 펼쳐지는 비스듬한 경사의 푸르른 풀밭, 

바로 거기가 몽마르트르 언덕이라는 거예요.

유럽 몇 나라를 지나오면서 하두 거대한 성당을 보아온 터라

그래도 일행은 다들 언덕을 지나 성당을 향하는데 

가이더가 우리에게 할애해준 삼십 분을 

그냥 그곳에 우연히 앉아서 보내리, 마음먹었지요.

파리 사람들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담소를 즐겼고

여행객들은 사진을 찍거나 흘러지나갔지요.

그러니 나도 삼십 분 정도는 나그네가 아닌 파리 사람이 된 거지요. ^^* 

그대는 내 발 조금 아래쯤 누워 있었어요.

푸른색 줄무늬 셔츠를 입고 잠을 자고 있더군요.

아니면 자는 척하며 세상을 향해 눈을 감고 있었는지도..... 

글쎄 그런 생각이 들만큼 그대의 모습이 편안해 보이지 않았던 탓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그대 곁에는 아주 똘망한 눈초리의 아이가 그대와 같은 방향으로 누워 있더군요.

사실 그대보다는 그대의  아이가 먼저 눈에 띄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기에는 아주 힘든 나이지요. 

엄마랑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풀밭 위에 가만히 누워있는 아이는 지루해 보였어요. 

그래서 더욱 착해 보이기도 했고요.

그대는, 

비록 딸이 지루하고 심심해한다 할지라도 

그런 딸이라도 곁에 두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깊은 외로움이 있었겠지요.

날이 아주 맑지는 않았어요. 

마치 파리의 오래된 건물들처럼 하늘도 약간 흐릿하더군요. 

편안히 침대 위에 누워 있기가 더 쉬울 텐데

그것도 토요일 오후에 저렇게 풀밭 위에 누워 있다는 것은

사람의 눈초리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비록, 아는, 사랑하는, 정겨운 눈빛이 설령 아니더라도

아무것도 담지 않는 무심하고 지나쳐가는 눈길일망정 

차가운 날씨의 겨울 햇살이 미미한 따스함을 품고 있듯이

그런 작은 따스함이라도 느끼고 싶어......

나와 몇 번 눈이 마주친 그대의 딸도 잠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는 듯했고....

그대의 풀밭 위의 잠이

편안하라......

아마 그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거예요. 

동양의 한 여자가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그대를 보며

그대의 위로를 빌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생각 없이 살아가던 사람도 인류의 미래가 홀연 걱정되듯이

아마도 나그네의 정한이었겠지요. 

그도 아니면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하늘의 위로를 바라는, 

하늘을 생각하는 고독한 말러를 흉내 냈을지도........  

일행들이 내려오자 옷을 툭툭 몇 번 턴 후에 길을 따라 내려왔지요. 

나그네가 좋아하는 골목길을 여기저기 뒤적이면서 말이지요.

자그마한 골목길에 유별난 눈길을 던지는 나그네는 거의가 다 소심증을 지닌 

환자라고 보면 될 거예요.

그렇게 내려오다가 문득 

그 골목길 어디쯤에 나는 그대를 그대의 딸과 함께 세워놓아 보기도 했어요.

신비한 일이지요. 

이제 몽마르트르 언덕은 그대와 함께 내 안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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