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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18. 2017

모노노아와레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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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소담스럽게 내린 아침에 
어떤 사람에게 용무가 있어 
편지를 전하며 
눈 내린 것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았더니,
오늘 아침의 눈은 어떻게 보셨는지 등의 인사 한마디도 없는 

멋없는 사람의 말씀은 

유감스럽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정말 실망스럽군요.라는 답장이 왔다.
******
어느 책인들
좋지 않으랴만
요즈음 들어 가만 생각해 보니 
좋아하는 책들 중의 상당 부분이 오래전 사람들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을 다시 정리한 글이라는것을 새삼 생각해 보았다.
서너 가지 이유가 유추가 되었다.

우선은 
나 자신 옛날 책에 대해 눈이 밝지 못함이요. 혹여 아주 우연하게 눈 밝은 순간 있어, 글이 손에 잡힌다 한들 그 내밀한 선까지 다다를 힘이 없다.
내가 바라보는 방향이 동쪽 붉은 해 떠오를 무렵이었다면
그는 서쪽 일몰의 숲을 바라보고 있어
그 다름의 차이가 주는 기이한 묘미가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닦여진 길을 가는 손쉬움이 있기도 하고
내 앞서 가는 이는 전문 조경 사이니 가지 치기도 잘하고 나무를 가꾸어 내는 힘이 놀라울 정도다.

길을 헤치노라 혹은 만드노라 소비될 힘을 정경 속에 녹여 내리니
그 녹아지는 힘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는 것.

땅과 나무를 유심히 바라보는 시간이다. 여린순들의 힘을 생각하는 시간,.

그 처연함과 가벼움, 적멸 속에서 보여주는 삶의 간극.

글을 읽다가 드문드문 창 밖을 본다. 찻잔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고
식은 차 한 모금을 입에 담고 굴리면서
봄길, 
걸어가는 사람들
저 사람

세워진 외투 깃이 날카로워 보이네.

목에 넘어갈 마지막 즈음에 재스민차는
입안의 따뜻함이 고마웠던지
내게 아주 조금,
오랫동안 앓고 있는 이의 창백한 미소처럼
단맛을 준다.

어쩌면 차의 가장 소중한 맛이 이맛이 아닐지....
다기나 물이나, 혹은 차종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체화된 茶 말입니다.
글에 대한 사념도 혹 이 비슷한 것 아닐까?
다시 식은 차 한 모금 마시면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예전에 신석정 시인도 그랬다.
"갓 핀 청매(靑梅) 일렁이는 향기에도 자칫 혈압이 오른다 "

제일 위에 적은 글은 요시다 겐코의 도연초에 나오는 글이다.  

1330년 전후이니 무려 700여 년 전의 사람. 

700여 년 전의 그가 함초롬이 걸어 나와 내 앞에 선다.  

그 사람의 얼굴도 생김새도 몸도 모르지만,  오래전에 이미 흙이 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느꼈던 그 단순한 서정이 나를 이렇게 뒤흔들다니. 존재와 비존재에 대해 아는 게 무언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읽으면서 혼절 나게 다가오던 그 미묘한 그림자는 *모노노아와레* 

탐미적이면서 니힐한
우리나라 한의 정서와는 약간 다른,
즉 비애를 주된 정조로 하는 일본인의 미의식.

모노노 아와레, 줄여서 아와레라고도 한다는데 비애.
가까이 다가온 봄스런 단어는 아니지만

아니 그래서 재스민  입안에서 굴리듯
이 단어
아무도 없는 빈 거실에 세워놓고 이리저리 굴려 본다. 

향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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