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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Feb 28. 2019

 입동 정릉 서재에서

황현산



아주 사소한 것에 꽂힐 때가 있다. 꽂힌다는 것은 시선이 저절로 고정된다는 피동사로 내가 보다는 무엇이나 타인이 주체가 되는 경우다.  

그 무엇인가가 나를 사로잡는다는 다른 표현일 수도,  

그렇다고 그 사소한 것들만이 온전히 나를 사로잡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2015년 입동 정릉 서재에서’

이 문장은 황현산 선생의 글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책의 서문 마지막에 적힌 글이다.

책의 서문을 아주 주의 깊게 읽는 편이다. 책에 대한 전체적인 방향을 아우르는 점도 있지만 작가의 모든 것을 순간에 보여주기도 하니까, 

선생의 문장력... 평범한 단어로 비범한 상태를 나타내 주는.... 은 여전하구나... 생각하면서 

읽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2015년 입동 정릉 서재에서’를 보았다. 

하도 볼만해서 봄이라 했던가, 그러니까 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읽는 순간보다 보는 것이 좀 앞서지 않을까) 서늘했다.  

마치 문장에서 서늘한 바람이 피어올라 내 품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삼 년 전이구나... 이때만 해도 이분 살아계셨었구나....

 입동 즈음이니 날씨는 차가웠을 것이다. 이 서문을 쓸 때는 아마 밤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이른 새벽이거나 조용한 아침일 수도 아니면 마음 차분해지는 시간 저물어가는 하늘가를 바라보는 늦은 오후였을지도 모른다.

서문의 중간쯤  시는.... 이 책은 한국일보에 연재된 詩畫들이다..... 늘 우리에게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닌 것 같은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이 구절을 쓸 때, 어쩐지 그즈음에서 글을 계속 이어갔을 것 같지 않다. 

그 문장은  선생이 평소 생각해온 시에 대한 개념을 일목요연한 형태로 나타냈지만

고단한 그 문장을 위해서는 좀 더 쉬운 적절한 문장이  필요했을 것 같다.

그래서 선생은 잠시 타이핑을 쉬거나 펜을 만지작거리지 않으셨을까, 

그러다가 그는 다시 글을 쓴다.

즉 다른 시간을 경험하는 그것 = 시적인 무엇= 은 결국 나란 존재가 하찮은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는 것, 

나를 꽂히게 한 것은  즉 서성이게 했던 것은 그 글을 쓰는 순간 선생은 

시가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닌 것 같은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고 했지만

이 세상이 아닌 세상은 사실은 정말 이 세상이었을 거라는 것이 눈물겹게 다가오더라는 것이다.

선생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 

선생의 다른 세상은 어디일까?

선명한 이야기지만 그곳이 시가 지닌 세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시가 아무리 아름다워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한다 하더라도 시는 이 세상의 것이다.

물론 선생이 다른 시간으로 표현했다 해서 그게 이생이 아닌 죽음 뒤의 세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더욱더 진한 생을 느끼게 하는 삶의 어느 부분을 지목한 것이리,

그것을 알면서도 선생의 부재 앞에 나는 논리와는 다른ㅡ왜 모든 사항들이 논리라는 이름으로만 엮어져야 하는가, 부재는 논리가 아닌데, 부재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논리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일들 투성인데ㅡ 사소한 정경 앞에 목이 메는 것이다.     

큰오빠의 이 주기 추도식이 다가온다. 작은 오빠는 큰오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산 위에서 들었다고 했다. 

나는 규서의 결혼 식 때문에 간 마사지 샵에서 들었다고 했다. 나는 설마 했다고 했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경화가 전화해서 아빠가  깨어나지 않으면 사망이 선고된다고, 그때  내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가 나와서  어떡해 어떡해..... 했다고 했다. 작은 오빠와 나는 약간 울먹이며 커피를 마셨다. 그러고 보니 오빠 떠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처음이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인가? 슬픔을 되새길 만큼....

큰오빠의 부재는 언제나 공동空洞이다. 아주 커다란 비인 동굴을 만들어놓고 큰오빠는 떠났다. 

황현산 선생의 부재 앞에서 아까움이 승하다면 큰오빠의 부재는 그저 슬픔이다.     


사진은 청주 정복동 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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