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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21. 2019

늑구리 은행나무와 교가리 느티나무

삼척





젊음은 그 자체로 눈부셔서 마치 서치라이트처럼 한정된 면만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래서 그 시절은 주위를 세세히 바라볼 여력이 없다.   

세월의 이끼들이  여기저기 덧없이 쌓이면서 광채가 사라지기 시작하면

그제야 주변 사물들을 은근히 식별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다가 오는지도, 

특별히 내겐 산과 숲 그리고 푸나무들이 그러하다.  

나이 들어가며 더욱

자세히 보고 생각하게 하고 그리고 사랑하게 된다. 

사람은 거의가 비슷비슷한 존재라는 가정 하에 

욕망이라는 덩어리도 비슷한 양이 분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 무참한 덩어리를 어떻게 해소하는가..... 에 따라서 삶의 결이 달라지지 않을까,  

욕망 해소법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일은 아마 최상의 위치일 것이다.        

어디를 가든 낯선 도시에 가면 지도를 펼쳐들고 <나무>가 없나를 살피게 된다.

의외로 자그마한 지도마다 그 지역의 유명한 나무들이 당당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청주에 이박삼일을 갈 때도 실제 목표는 미술관들이었지만

오래된 나무들  청주 연제리 모과나무-.무동처사로 불리는- 와 공북리 음나무를 만나서 

여행이 그득해졌다. 

며칠 전 법원에서 가족과 함께 진행하는  딸래미 연수에 참석하노라 삼척 솔비치를 갔다. 

첫날은 예배를 드리고 가노라 그냥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저녁 식사 후 삼척지도를 보다가 나무 두 그루를 발견했다. 

교가리 느티나무와 늑구리 은행나무

다행히 남편과 딸도 나무를 좋아해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의 지론 ㅡ노거수 앞에 서면 그 어떤 장엄한 풍경보다 승하다ㅡ 에 동감하고 있으니     

교가리 느티나무는 아늑한 동네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몸통이 범상치 않아보였다. 

고요하게 순응하며 사는 나무의 삶이라 해서  그 모습조차 순하지는 않다. 

노거수들은 거의가 강하고 거칠며 험난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늙은이들 주름진 얼굴에 삶의 굴곡이 엿보이듯이 나무도 그만의 모진 풍상을 몸에 품고 있다. 

물경 천살이 넘은 노거수다. 

신목에 정자목이니 설왕설래 스토리들은 즐비하고

나뭇잎 나는 속도로 풍년 흉년을 츠측해내는것이야 기본이고‘

 밤에 나무에서 우는 소리가 들리면 동네에 좋지 못한 일이 생겼다는 스토리도 있다.

 지금이야 느티나무 가지가 바로 옆에 있는 집들로 들어서고 있지만 옛날이야 어디 그랬겠는가, 

몰래 연애하는 사람들 약속 잡기에 하마 적합한 곳이었겠지, 

연애란 이루어지지 않기에 더욱 아련한 것이라, 

그러다가 사단이 났을 것이고 여자가 울었을 것이고 

그 정도면 동네에 좋지 못한 일이 생겼을 터,

(겨우 이정도의 상상력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 ㅎㅎ)  

동네이름조차 마을에 느티나무가 있어 서로 相交한다 하여 교가리 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니

이 나무가 미치는 영향이 자못 짐작 된다. 

거대한 주 줄기가 벼락 맞고 부러져 키가 작아진 채 몸통만 거대하니

약간의 기형적인 미도 발산한다. 

옛날에는 매년 말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황소 한 마리를 바치는 동제를 올렸다고 하니 

그래서 저리 탐욕스러워 뵈는가, 라는 생각도 설핏 들었다. 

하긴 그게 무슨 나무의 탐욕이랴, 사람의 탐욕이지

외로워서 기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늑구리는 늪이 아홉 개가 있어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고사리라는 간이역을 지나는데 

이름이 이뻐서 고사리가 많이 나는가? 했더니 오래된 선비라는 뜻의 고사....리역

좁은 길을 한참 가는데

길이 가파르다. 중간지점쯤 갔는데 다시 오르막길, 괜히 올라가다 다른 차라도 만나면 복잡할 듯 해서  걷기로 결정.....차를 주차해놓고 보니 

멀리서도 저거닷! 싶은 나무가 하늘을 향하여 곧게 서있다. 

300미터 넘는 짧은 길인데도 차 안가지고 오는 게 잘했네 할 정도로 가파른 길, 

나는 꿈 이야기를 했다.

여전히 지금도 가끔 꾸는 꿈인데

차를 가지고 가다가 길이 점점 가팔라지며 

결국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다 이러다 뒤로 넘어지겠네 하면서 깨는 꿈,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더 높은곳으로 가는 길도 있었지만

1500년으로 추론되는 늑구리 은행나무는 그의 발아래 천하를 두고 서있었다.     

거칠 것도 없다.

숨길 것도 없다.

관계도 필요 없다. 

의미도 묻지 마라. 생명 앞에 무슨 의미가 필요하리, 

이유도 묻지 마라. 이유 같은 것은 호사가들이 하는 어린아이 짓이니 

그저 이렇게 나는 살아왔다. 나 홀로 긴 세월을 이리 살아왔노라. 

그저 견뎌왔노라.

견딤은 

살아냄은 그 자체로 위대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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