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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28. 2019

정발산 小景

(봄)

     




화가들은 그림을 그릴 때 어디에서 시작할까?    

정발산 입구를 걸어 들어가며 피어나기 시작하는 개나리를 보며 든 생각이다.      

갑자기 작품 하는 시간들도 궁금해졌다.  시간의 양만큼 그림이 커질까?(깊어질까?)     

그 양을 측정하는 것은 어떨까?      

시간은 우리네 삶속으로 들어오면 그 자신을 가장 먼저 잊어버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영화만 해도 겨우 두 시간여를 보지만 그게 어디 영화의 시간인가,     

만들어진 시간만큼 또 생각하게 한다면...    

시간의 개념은 바둑수보다 더 무수할 것 같기도 하다.     

시간 생각은 정발산 입구에서 만난 젊은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맑은 피부에 수수한 얼굴이었는데 입을 약간 벌리고 있는 품새가,    

아이고 저런 모습으로 남자를 만나면.....     

전에 엄마 아파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같은 병실에 입원    

해 있던 장애소녀가 생각났다.  

나쁜 사람을 만나면 그 즉시 이용당할 것 같은.     

그런데 어쩌면 저 나이까지 저렇게 순순한 모습을 지닐 수 있다는 말인고,  

그러다가 나이든 차갑고 냉정한 나의 무표정을 생각해내고......     

며칠 전 규서랑 예당에서 서울시향 연주회를 갔는데     

지휘가 성시연이었다.  나는 그녀를 왠지 장군으로 여긴다. 성장군. 사실이기도 하고,

연주회장을  나오면서 규서에게 얘, 성시연이 결혼 했을까?   했더니 규서왈

엄마 아저씨 같아.....  

이런 산만한 오지랖이라니...나이 생각이 나고 이어 시간 생각이 났다.   

          

개나리 위로 낙엽이 가득 쌓여 있어서 그 사이로 개나리꽃이 피어나 있었다.     

이것 참 소나무는 이발 시키더니 바로 그 옆의 개나리 위 낙엽들도 좀 걷어주지    

좀 흔들어 봤는데 의외로 나무들은 단단하고 낙엽들은 무거워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얼른 걷어줘야 할텐데.....    

생각하다가 그래 저 개나리 몇 송이 안 핀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랴,     

열아홉 살짜리 다섯 명이 한순간에 죽어도 

세상은 여전한데....... 마음을 대범하게 묵었다.      

그렇다면 점점 우리는 무참한 세상에 살아가니 무참해져야 하는가....? 나는 모르겠다. 사실,   

      

진달래가 저쪽 숲에 피어나 있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까이 다가선다. 

연분홍빛.....그리고 다물고 있는 꽃봉오리는 진분홍이다. 

살짝 햇살의 반대쪽으로 서니 연분홍은 더 옅어지며 흰분홍으로  바뀐다.     

빛이 색이여,     

만 번도 더했을 생각이 또 떠오른 것은 머릿속에 든 것이 없기 때문에     

반복되는 현상일 것이다.     

가만히 그 이파리를 만져 보았다.     

부드러운 종이처럼 제법 여무진 느낌이 있지만 대신 종이가 품을 수 없는 습기를 머금고 있다.     

다섯 잎의 꽃잎의 생김새.... 그 알맞은 조화로움은...그 어여쁜 자연스러움은..... 

세상에 저 꽃술들은 어쩌면 저렇게 명료하다냐,     

저 아무것도 없던(이 말이 꼭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맹숭한 가지에서 저 여린 것이 솟아나다니.....     

여림의 강함 속에 세상의  진리가 꼭꼭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난한자가 천국을 보듯이....  솔로몬의 영화와 비길 수 없는 들꽃의 아름다움 ....   

주위를 연하게 물들이는 것은 진달래만이 아니다.     

생강나무.... 가지 끝에 그다지 탐스럽게 피어나지 않았어도 나무 주변을  연노랑으로 변화시킨다.     

사람도 저렇게 주변을 물들이겠지......   

  

연두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나있다.     

아주 작은 새순들은 순이 아니다 꽃이다.     

아니 어디 꽃 보다 더  아름다운 단어 없을까,  

나는 그 새순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주고 싶다.         

소나무 있는, 살짝 휘어서 분위기 있는 길에 나무 벤취가 있다.     

바람도 선선하고 미세먼지가 있어선지 사람도 거의 없다.     

콩(KBS 앱)  볼륨을 조금 더 키우니 세상에 음향시설 아주 좋은 음악당이다.     

이어폰은 귀에도 나쁘고 소리도 그래서 헤드폰을 괜찮은 것으로 장만한지 수년전이다.     

걸으러 나갈 때 마다 필수 품목이다.     

나이에 좀 안맞은 듯 하나...... 그 또한 괜찮다.     

아무 곳이나 어디서나 음악당을  만들어주는데 그깟  사람의 시선이야.....

   

피아니스트 허원숙의 실황이다.      

바흐..... 피아노소리.... 열손가락과 피아노 손가락의 강약 그리고 피아노가 지닌 소리와     

그둘이 빚어내는 흐름이 구슬처럼 햇살처럼 반짝인다.    

내 귀에 스미어드는 것은  내게 와 부딪히는 것은 ....    

가없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혹시 저 어린 새순의 세상이 이러할 까,     

진달래의 흰분홍이 소리를 지녔다면.....이러할 까,     

개나리 종소리 속 세상의 소리일까,     

고수가 되어가는 것은 결국 무채색...무화....기교 없는 상태가 되어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수많은 기교를 배우고 난 뒤 찾아오는 적요. 맑음. 단순.   


벤취에 앉아서 텀블러에 든 보이차를 한잔 따른다.     

차는 물이 아니다. 그가 지닌 색만큼 생각을 담고 있는 물체다.     

가만 보니 지금 바람도 햇살도 거기 스며들고 있다.     

이런 느낌들은 내가 지니고 있기에는 너무 섬세하긴 하다만, 펙트다.  

   

워낙 물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비타민은 먹지 않아도 물정도는 마셔줘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도 맹물은 마시기 힘들어서  선물 받은 보이차를 아주 순하게~    

차를 순하게 하려면 짧은 시간에 우린다.     

가볍게 산뜻하게 

 드맆 커피 내릴 때 사용하는 파이랙스 주전자에 찻잎을 담고 보이차는 한번 살짝 헹궈내야 한다.     

그리고 가볍게 우리는데 찻잎을 알맞게 걸러준다.      

그리고 두잔 정도의 양이 들어가는 텀블러    

그 두껑이 찻잔으로 되어 있어 어디서나 우아하게 마실 수 있다.     

정발산을 음악당으로 삼고 홀로 박다를 마시는데 

선선한 봄바람 갓난아이처럼 스며드니 

뭘 더 바라랴.  

  

(정발산 소경은 여백 있는 수묵화가 아니네  서툰 손길의 마띠에르 가득한, 서툰 사람이 그린 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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