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국제 다큐영화제
11회 DMZ 국제 다큐영화제는 나만의 은일한 축제였다. 세계 각국 감독들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편안하고 안락한 의자에서 느끼고 생각하니 이런 멋진 축제가 어디 있으랴, 소소한 일들을 과감히 제치고 일주일 동안 관심 있는 영화 16편을 진지하게 관람했다.
다큐 시작 전 영화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다큐 도슨트 강의를 삼 개월 정도 들으며 지평이 넓어지기도 했다. 나도 영화를 좀 본다고 생각해왔는데 인생도처 유상수라고 강의를 들을 때마다 고수(강사)들의 시선 앞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다큐 영화에 대한 미덕은 무궁무진하다. 극영화와 달리 실제의 삶이 펼쳐지니 몰입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감독이 카메라를 들이밀 때부터 감독의 연출이 시작되긴 하지만 연출하지 않는 연출의 매력이 다큐멘터리이다. 다큐의 시선은 살아 있으며 진실을 응시하며 약자의 편에 서서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사라져 가는 문화에 대해 아련한 시선을 갖게 한다. 사람과의 관계의 결을 주목하게 하고 자연과 그 소리를 풍성하게 담아서 우리 앞에 펼쳐주며 서정의 강물에 몸을 적시게 한다. 네 시간 삼십 분 동안 방 한 칸에서 거의 이루어지는 할아버지 미학자의 삶 이야기를 한 장면 한 목소리로 듣기도 했다. 물론 그 삶 속에 어린 정치 예술 한계와 슬픔은 도저하지만 그래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괴테의 말처럼 ‘그리움을 아는 이야말로 괴로움을 알리를 생각하며 보았다.
거친 나눔이긴 하지만 다큐는 진보 편에 설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권선징악이랄지 해피엔드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만 하는 날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 묻는 생에 대한 깊은 질문이다.
<애국자 게임 2- 지록위마>의 제목은 내겐 마치 설익은 고구마처럼 설컹거려서(근데 이 설익은 고구마가 하룻밤 지나고 난 뒤에 먹으면 매우 오묘한 단맛과 식감이 생겨나 있다) 썩 호감이 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란혐의자인 이석기에 대한 인터뷰라니.... 참고로 나는 정치에 관심을 잃은 지 이미 오래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무력감과 나라면?이라는 ‘위치 뒤바꿈’을 자주 하는 탓에 침을 튀길 수가 없는 것이다. 대신 아주 맨맞한(만만한) 나무나 바라보며 작은 꽃들에 대해서나 나뭇가지에 걸린 말없는 달이나 별을 두고 침을 튀기곤 한다. 그도 들어줄 사람이 별로 없긴 하지만,
그러니 <애국자 게임 2- 지록위마>와의 만남은 문득에 의한 우연이다. 우연히 시간이 알맞았고 도대체 진보란 정확히 무엇일까?라는 궁금증도 문득 생겼다.
전형적인 다큐멘터리의 증상(?)처럼 사람들이 모여서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전 앞뒤 주제를 이어주는 단어가 크게 화면에 나타난다. 소소한 장면이었지만 <애국자 게임 2- 지록위마>라는 제목과는 달리 신선하고 섬세한 컷이었다. 생각해보면 사람을 홀리는 것은 어떤 거대한 것보다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대화를 하거나 어느 때는 혼자 무대에 서서 (실제는 의자에 앉았지만) 회고를 하기도 했고 자신의 현재 생각을 바꿔야 하는가? 아니면 고집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침묵의 시간도 드문드문 보였다. 홍세화가 인터뷰 속에서 이석기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화면 속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순간 경순 감독이 날카롭게 물었다. 그 빌미에 지나친 것 아니냐는,..... 당황한 표정의 홍세화는 한참 생각하고 또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는 듯해 보였으나 여전히 자신의 생각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감독은 캐물었고 다시 또 느린 생각 속에 빠져 들었으나.... 홍세화는 자신의 생각을 접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결국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말했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시간에 내가 말했다. 좀 더 들이댔으면 어땠을까? 경순 감독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십수 년 전 인터뷰할 때의 홍 선배와 현재의 홍 선배가 너무나 달라서....
인터뷰 외에도 가끔 텔레비전 화면이 적절한 타임에 나타나 차진 조연 역할을 했다. 우리가 봐왔던 익숙한 화면들이었다. 평범한 언어들은 사람의 생각을 예단하듯이 방향을 조종해내고 있었다. 있었던 사실이긴 하지만 그 선후와 좌우를 어떻게 배치하냐 어디쯤서 자르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달라지는 사안들과 이미지가 선명하게 보였다. 여무진 듯 똑똑한 듯 미소를 지으며 혹은 당연한 듯이 맞장구를 치며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듯이 그 몇 마디 말들은 세치 혀로 사람을 잡는 학살의 현장이었다.
경순 감독은 이석기 사건에 대한 다큐를 찍었지만 이석기 개인에 대한 관심보다 이석기 사안이 만들어진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 보였다. 그래선지 이석기에 대한 한 챕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도 인간 이석기에 대한 느낌은 오리무중이다. 아 대화시간에 감독이 생각하는 이석기란? 질문을 했어야 했는데 아쉽다.
운동을 진두지휘 하는 인터뷰이의 흐리멍덩한 표현이 거슬렸다. 마치 신발 위로 가려운 발등을 만지듯이 그렇게 두루뭉술한 표현을 두루뭉술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저렇게 해야, 운동권 리더가 될 수 있는 건가? 생각을 할 무렵 경순 감독이 콕 찔렀다 좀 더 분명하고 선명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래서 나온 이야기. 촛불 집회 때 세월호 사건을 이야기하지 말라, 이석기 사건도 이야기하지 말라는 의견이 있었다. 촛불은 오직 박근혜 하야로 모여져야 한다는 의견은 놀라웠다. 그렇다 모든 단체 속으로 들어가면 결국 어떤 선의의 단체라도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는 것이다. 실제 운동권 내에서도 이석기와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의심하는 시선들이 있었고, 녹취 한 장소에서 강연을 들은 사람조차 회의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 이 시대의 언론이었다.
<애국자 게임 2- 지록위마>의 방점은 여전히 그 사건 속에서 남편을 감옥으로 보낸 채 살고 있는 아내들의 인터뷰였다. 영리한 경감독은 우선 그들의 마음을 명상으로 안정시켰다. 그리고 천천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나부터도 이석기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단어 뒤에 그녀들이 그의 아이들이 살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압수수색 시간에서 아이들을 깨워서 이모네 집으로 보내고 극심한 트라우마 속에서 아내들의 변형된 삶의 모습이 나타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들은 골목길에 서있다. 그녀들 남편을 기다리는 것인가? 오지 않는 새 시간을 기다리는 것인가, 두려움 속에 웅크린 듯하면서도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시선은 가슴을 저리게 했다.
그리고 천천히 이어지는 오규원의 시.......
아주 짧은 시간 속에서 딱딱한 인터뷰로 점철된 다큐멘터리를
감독은 순식간에 아름답고 서정적인 영화로 만들어 버렸다. 강추!